2016 안녕, 촛불

냉이로그 2017. 1. 2. 17:55

 

 감자네 식구에게 2016은 어떻게 남을까. 뭐니뭐니 해도 품자가 지구별에 찾아온, 감자가 동생을 맞은, 감자네 식구에게 이천십육년은 품자의 해였다. 그리고 하나 더, 시월부터 석 달을 꽉 채우면서 주말마다 촛불을 밝혀온 제주시청 앞. 감자네 식구에게 2016은 품자와 촛불, 이렇게 새겨지게 되려나. 

 

 

 제주시청 앞 촛불이 한 시간 앞당겨 시작된 데다가, 이날은 더욱이 시청 앞으로 나오기 전에 제대병원에 들러 또치 이모야 병문 인사를 하고 오느라, 아직 어둡기 전부터 광장에 닿을 수 있었다. 이즈음 들어, 어둠이 내릴 무렵 차를 타고 나올 때면, 감자가 차 안에서 잠이 들어, 잠이 모자란 채 내리는 감자가 안아달라고만 했더랬는데, 이 날은 아주 가뿐하게 마당에 내려 ^ ^ 그러고는 집회 리허설 방송차 소리에 감자는 촛불부터 찾으며, 얼른 저리로 가자고 서두른다. 잠깐만 감자야, 품자 유모차에 태우고, 기다렸다 같이 가자.

 

 

 감자네 식구의 2016, 품자와 촛불. 이제 아홉 달박이일 뿐이지만 품자는 석 달 주말을 꼬박 촛불 거리에 있었다. 점점 날이 추워져 걱정도 많았지만, 고마웁게도 아가는 그 추운 길바닥에서도 감기 한 번 들지를 않아.  

 

 

 이날, 집에서 나서면서는 왕종이컵을 하나 더 만들었네. 지난 번 만든 품자 촛불은 크리스마스 버전이어서, 그걸 다시 든다는 게 좀 맞지를 않는 것 같아서, 또 하나 급조해서 만든 2016 마지막 날에 밝히는 새해맞이 촛불 ^ ^

 

 

 감자는 오늘도 역시 광화문 갔던 때부터 들어온 감자촛불.

 

 

 감자는 올 한 해가 또 어땠을까. 아빠가 더 많이 놀아주었으면 좋았을걸, 다른 친구들처럼 진작에 어린이집엘 보내주었더라면 친구들하고 놀 줄도 알게 되고, 어쩜 그게 더 좋았던 걸까. 품자가 태어나고, 엄마 손이 감자에게 닿지 못할 때가 많아지던 삼월 봄부터 하던 고민을, 엄마아빤 여지껏 끝내지를 못하고 있네. 고마웁게도 감자는 품자에게 멋진 형아였고, 품자가 잠들고 나면 여전히 두돌박이 아가로 엄마 품 아빠 품을 번갈으면서 그 품들을 독차지하는 행복한 아기이곤 했어.

 

 

 품자는 또 어땠을까. 삼월, 봄에 찾아와주었으니 품자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겨울인데, 품자의 첫 겨울은 이렇게 길 위에서 촛불로 맞이하고 있었네. 감자 형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제 막 기어가는 걸 시작해, 침을 흘려 배로 밀고 닦아가면서, 달아나는 감자 형아를 쫓아다니는 걸 보면, 엄마아빤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단다. 감자 형아가 만지는 거면 뭐라도 좋아, 감자 형아가 하는 거라면 뭐라도 좋아. 그렇게나 귀찮다고 달아나곤 하는데도, 품자는 형아가 무어 그리 좋은지.    

 

 

 이내 광장에는 어둠이 내렸고, 2016년은 그야말로 몇 시간이 남지를 않아. 벌써 한 해가 다 저무는 거라니, 벌써 감자가 네 살이 되다니. 기껏해야 스물여섯 달밖에 되질 않아, 아직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를 못하는데, 벌써 네 살이라니 몬가 이상해보여. 감자는 네 살, 품자는 두 살, 파하하 아빤 마흔다섯 살 ㅠㅠ 마냥 철부지 같기만 한데 많이도 먹었구나. 감자야, 품자야, 아빠 너무 늙었다고 챙피해하진 않을 거지? ㅎㅎ

 

 

 집회는 점점 열기가 높아져, 무대 위 발언자들도, 무대 아래 촛불의 구호도, 문화공연을 하는 예술인들의 노랫소리도 쩌렁쩌렁 울렸건만, 감자는 아빠 품에 안긴 채 푸욱 곯아떨어져 버렸어. 일찍부터 나와서 실컷 뛰어다니고 놀았더니 불편한 품 안에서도 너무도 깊은 잠을. 이렇게 감자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고, 품자는 달래가 유모차를 밀고 광장 뒤로 나가 살랑살랑 잠을 재워. 2016을 채 몇 시간 남기지 않은, 마지막 촛불 속에, 아가들은 이렇게 광장에서 잠이 들어.

 

 

 혹시나 감자가 불편해질까 싶어, 팔에 쥐가 올라도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꼬옥 안고 앉아 있는데, 촛불들 사이를 휘젓던 방송 카메라와 마이크가 갑자기 앞으로 찾아와. 마침 여기도 케이비에스라, 엊그제 방송된 kbs다큐멘터리에도 저희 가족 인터뷰가 나갔다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아기 아빠 얘기가 듣고 싶다며 마이크를 들이대. 하하, 그래도 이번엔 요 며칠 전 한 번 해봐서 그랬는지, 그때만큼은 버벅거리지 않았던 것도 같아 ㅎ 

 (그러더니, 집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 앞에서 밥을 먹다 보니, 아홉 시 뉴스 지역방송 분에서 아빠 얘기가 나온다. 감자야, 아빠 나온다 ㅎㅎ 지난 번 다큐멘터리가 나갔을 때는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아홉 시 뉴스라 그런가 그 다음 날 회사 사장도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그러지, 좀 전에는 공사 감독관하고 통화를 하는데, 테레비에서 봤다고 그러네. 푸하, 회사에도 감독관에게도 정체가 다 드러나 버리고 말았지 모야 ㅎ)

 

 

 그 방송 불빛이 정면으로 쏘는 속에서도 감자는 여전히 잠이 들어 있었네.

 

 

 집회 말미에 들면서 무대 위로 올라온 싸우스카니발, 오예! 지난 번 4차 촛불 때였나, 그때도 싸우스카니발이 올라오면서 아주 신나게 놀아주었는데, 반갑게도 또다시 무대에 올라섰다. (와우!) 정말 잘 노는 팀이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특히나 신곡이라며 불러준 take off는 무한반복이라도 해달라 싶을 만큼 ㅋ 

 

 

 싸우스카니발의 무대가 시작하자 달래는 유모차에서 손을 놓고 뛰기를 시작하지 모야, 하하하! (물론, 그 사이 품자도 푹 잠에 들어 그 시끄러운 속에서도 얼마나 잠을 잘 자던지 몰라. 감자도 그렇고, 품자도 그렇고, 어느덧 시끄러운 집회장에서도 잠에 푹 들 수 있도록, 최적화가 되어버렸는지 ㅎ )   

 

 

 아빠도 감자를 안은 채 일어나 몸을 흔들거리다 보니 감자도 눈을 떠. 그러더니 감자도 몸을 흔들흔들.

 

 

 2016 마치막 날이었다. 그 마지막 날을 촛불로 밝히던. 우리는 주말마다 이 광장으로 나오며 촛불에 어떤 바람들을 담아왔을까. 감자의 눈망울과 품자의 웃음, 그리고 엄마의 소박한 꿈과 아빠의 지쳐버린 다짐들. 언제 들어도 눈시울이 더워지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의 마지막 구절.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감자야, 언젠가부터 아빠는 포기할 수 없는 아주 구체적인 이유가 생겼단다. 그건 세상의 촛불, 광장의 촛불만이 아니라 꺼뜨리지 않고 살려가야만 삶의 촛불. 감자, 품자가 엄마아빠에겐 촛불이자, 또한 촛불의 이유라는 걸. 어둠이 빛을, 거짓이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이 침몰할 수 없듯이, 엄마아빠가 포기할 수 없는 너무도 뚜렷하고 구체적인 이유.  

 그렇게 2016 한 해를 보내었다. 고마움으로 인사하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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