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224

냉이로그 2016. 12. 27. 16:00

 

 크리스마슨지 몬지, 대여섯 날 지나면 이 해도 다 가고마는 건지, 그러곤 새해가 되는지, 정신없이 지내는 통에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어. 물론 아주 생각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새벽에 깨어 오늘 날짜 작업일지를 사무실 직원에게 문자로 보내면서, 아 벌써 며칠이구나, 벌써 며칠,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며칠만 있으면 올해도 끝.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잠깐 생각이 들 뿐, 종일 현장에 있거나 컴퓨터 앞에서 실정보고, 설계변경 작업을 하다보면 집으로 달려가기 바빠. 훌쩍 늦어버린 저녁을 먹고나면 바로 감자를 재우러 들어가, 감자를 토닥이며 눕노라면 이미 아빠가 먼저 곯아떨어지고 마네. 그러곤 또 다음 날 새벽을 맞는 쳇바퀴.

 그래도 크리스마슨데. 윤종신은 이 슬프고도 아픈 시절에 '그래도 크리스마스'로 희망을 노래해주었지만, 나는 그런 것도 되질 못하고, 그래도 크리스마슨데 감자품자에게 모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생각조차도 막막하기만 해. 요즘 들어 도리, 도리 하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물고기 도리를 입에 달고 있으니, 그 애니메이션 씨디라도 미리 사놓을까 했지만, 자막 아닌 더빙 버전은 찾을 수가 없고, 그러던 끝에, 알라딘 서점에 들어가 사천원짜리 도리 캐릭터 스티커북이라는 거 하나를 주문해놓았다. 아직 감자는 크리스마스도 몰라, 산타도 몰라, 선물이라는 게 몬지도 모르니, 어쩜 그 선물이라는 것도 엄마아빠의 자기만족일진 모르지만, 암튼 감자의 세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단돈 사천원짜리 물고기 스티커 책 한 권 ㅎ 그나마 감자한테는 그거라도 있지, 품자에겐 암 것두 없어. 

 예정한 거라곤 저녁에 있을 시청 앞으로 나가 메리 캔들, 하야 크리스마스! 촛불을 들기로 한 거 뿐. 그거 말곤 암것도 준비를 못하고 있었는데, 약속에 없이 라다 이모야가 산타가 되고, 빵군 삼촌이 루돌프가 되어 감자 품자를 찾아주었다. 산타 초콜렛이 웃고 있는 케잌 하나를 들고 ^ ^

 

 

 

 그래서 이날은 촛불 종이컵 하나를 새로 만들었어. 안 그래도 광화문 때부터 써오던 '감자 촛불' 하나만을 들고다니던 터라, 품자 촛불을 하나 더 만들어야지 했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크리스마스버전으로다 종이컵을 만들어 ㅎ 케잌에 꽂혀 있던 장식들을 하나하나 떼어다 종이컵에 붙이고는.

 

 

  

 감자 형아 촛불이랑 닮은 품자 촛불을 만들어. 하야 크리스마스, 메리 캔들!

    

 

 날이 다소 추웠지만, 감자도 품자도 엄마도 등에다 배에다 핫팩 하나씩을 붙이고는 똘똘 싸매고 시청 앞으로.

 

 

 날이 날이어서 그랬을까,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 지난 주 지지난 주에 대면 반 수 이상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기를 안고 나온 엄마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 삼삼오오 함께 오는 교복 소녀들이 많아. 아! 이 날은 회사 빌딩 관리소장 아저씨랑 관리소 직원분들, 청소하시는 이모님이 다들 함께 나와 계셔서 더욱 반가웁던. 지난 번에도 멀찍이서 뒷모습을 보기만 했었는데, 이날은 가까운 자리에 있게 되어 인사를 나누게 되어. 왠지 앞으로는 사무실로 출근할 때 그 분들과 인사를 할 때면 몬가 남다른 기분이 더 들 것만 같은 ^ ^

 

 

 감자는 사뭇 진지한 얼굴.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함께 부를 때면 팔동작을 따라하곤 하다가도 무대 위에서 누군가 격앙된 목소리로 발언을 해댈 때면, 감자도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이 되곤 해. 아마도 알아들을 말은 하나 없을 텐데, 그런데도 감자가 진지해지는 건 무얼까. 사람들의 낯빛이나 목소리에 묻어나는 느낌들, 그 분위기를, 감자만의 언어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걸까.   

 

 

 집회를 마치고, 12월31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며 헤어질 무렵, 감자네 식구를 붙잡으며 방송 카메라와 마이크가 다가섰어. 모라더라, 올 한 해를 결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기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와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제주 케이비에스라던가, 오는 28일 수요일, 저녁 일곱 시 반 프로그램의 맨 끝부분, 그러니까 여덟 시 쯤 나가게 돌 것 같다고 그러는데, 하하하, 그날은 일찍 들어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서 엄마가 나오나 기다려볼까나.

 

 

 이렇게 촛불집회에 나오면서 바라는 게 모냐는, 새해를 맞으면서 바라는 게 모냐는, 제주에 살면서 바라는 게 모냐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하고싶은 일들을 마음껏 자유로이 하며 살 수 있는, 특권과 독점에 배제되지 않는, 누구나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 더이상 힘없는 이들, 약하고, 아픈 이들이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세월호, 여전히 그 슬픔의 바다에서 건져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주에서는 이 섬에서 가장 아픈 곳, 강정의 군사기지가 이미 지어지기는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삶과 마을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되돌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얘길 하고 싶었지만 아마 인터뷰 당시에는 무지하게 버벅거렸던 거 같아 ㅠㅠ)  

 

 

 감자품자네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감자야, 품자야,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던 날, 감자처럼 품자처럼 아기 모습으로 와준 예수님 생일을, 우리는 이렇게 축하해주었네. 감자가 맞은 세번째, 그리고 품자의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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