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203

냉이로그 2016. 12. 5. 10:19

 

 놀라웠다. 이 섬에서 만 명이 넘는 촛불. 감자품자와 함께 기저귀 가방에 초를 챙겨 시청 앞으로 나가면서, 이번 주부터는 사람들이 줄지 않을까 싶기도 해었으니. 지난 주말 정점을 찍고 잦아들기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었으니. 하지만 청와대의 담화가 촛불에 기름을 부었을까, 계산기를 두드리며 갈팡질팡거리는 여의도가 하는 꼴을 보며 더 불을 당기게 되었을까. 바닥 민심은 생각보다 더 엄청나.

 

 

 이 섬에서 하야촛불을 처음 밝혔을 때만 해도 천 명이 넘을까, 싶은 정도였건만,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이제는 백만이니 백오십만이니 하는 숫자에 너무 익숙해 만이라는 수치에 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광화문이니 여의도니 전국집회를 연다 해도 만 명이 모이기란 쉽지 않은, 그런 숫자였다. 그런데 이 조그만 섬에서만 만이 모여.

 

 

 길을 가로막아 광장으로 만들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웁긴 하지만, 그 행렬은 놀라울 정도였어.

 

 

 품자와 엄마도 함께 나섰던 길. 이젠 품자도 시청 앞 이 행렬이 낯설지 않아졌을까.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어디로 향하는 걸까. 감자야, 품자야, 우린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거니. 

 

 

 

 누군가 만들어온 촛불 그림판에 들어가 감자도, 끝까지 촛불. 그래, 감자야, 우린 맨 마지막에 남는 촛불이 되자. 더 밝고 커다란 빛이 아니라 맨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촛불. 꿈꿔오던 것들 쉽게 저버린다 해도 맨 뒷자리를 이어가는 촛불.

 

 

 감자에게 얘기를 해놓고도, 또다시 흔들려. 그럴 수 있을까, 아빠는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아빠가 먼저 그 다짐을 거두게 되면 어떡할까. 어쩜 아빠는 이미 그래오고 있진 않았는지.

 

 

 감자와 품자가, 그리고 엄마가 곁에 있는 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감자품자 앞에서, 엄마 곁에서, 아빠가 먼저, 그러진 않을 거라고.

 

 

 회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 마땅히 유모차를 대어놓을 자리를 찾기조차 힘들었지만, 촛불 마당에 나가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곤 해. 저 멀리 강원도에서 강의를 하러 내려온 별음자리표 큰아빠를 만나기도 하였고, 그 동안에는 같은 광장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던 영화 이모야도. 그리고 매번 주말이면 만나는 선경승민 이모삼촌도. 헤어질 때는 언제나, 다음 주에 만나! 로 인사를 나누는.

 

 

 하하, 이번 주말엔 또치 이모야랑 나명 삼촌을 만나 또한 반가워 ^ ^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또치 이모야가 카톡으로 보내어준 사진. 어느 만화가의 트위터누군가 올려놓은 시청 앞 행진 사진에 감자네 식구가 들어있더라나. 하하, 이렇게 해서 감자품자네 네 식구가 모두 나온 사진을 하나 가지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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