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굴 속의 시간 2012. 6. 13. 01:05

여기는 부여,오늘로 이틀 째.

오기를 정말 잘했다.

전통문화학교에 있는 연수원 교육도 너무나 좋지만,

그것말고도 행운처럼 만나는 우연들이 너무나 많아.

이곳에 와 우리나라에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제와장 님의 작업장엘 가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제와장님 아래에서 열네 해, 열세 해 째 제와를 배우고 있는

전수조교, 전수이수생을 만나 친해지게 되었어.

으아, 그렇게나 사람 앞에서 낯가리고 기어들기만 하는 내가

처음 만나는 그이들과 이렇게 마음을 다 터놓고 짧은 시간 속에 친해질 수가 있다니.

지금도, 오늘 저녁은 그 제와장들과 술을 일차에 이차까지 하고선

숙소에 들어가기 전 잠깐 피씨방에 들른 거.

그 한 사람은 쥐띠, 나는 소띠, 또 한 사람은 범띠, 랄랄라.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나처럼 까다롭고 까칠한 놈이.

하여간 스파크가 튀면서 단박에 반해버렸다.

교육을 받으면서 평소 보고 싶던 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분들도 만나게 되어,

지난겨울 고궁박물관 심포지엄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던 선생님하고도 반갑게 만나게 되어,

요즘들어 뻔질나게 드나들던 숭례문의 감독관 님도 여기에 와서 만나게 되어,

이제 겨우 이틀 째인데,

내일, 모레, 글피 일정들을 생각하면

온통 설레는 일들이다.

아하하, 게다가 여기는 부여.

오늘 그 제와장들과 술을 마시러 부여 시내를 걷고,

구드레 강변에서 한 잔을 더했는데,

이곳 부여 시내 구석구석은 어디라도 금성이 엉아랑 걷던발자국이 남아있어.

부소산성, 궁남지, 부여박물관, 부여여고, 그 칼국수집, 그 두부 두루치기집, 그 찻집.

어젯밤은 교육을 마치고 남심리엘 갔다.

축사들을 따라 길을 올라

피네 아저씨가 손을 흔드는데

으아아아아아, 소리가 절로 질러져, 아아, 이렇게 마음이 좋을 줄이야.

권사님 꽃처럼 밝은 얼굴,

우렁 언니가 차려주는 밥상,

그러다 보니 바로 고개 너머 마을 금성이 엉아와 순옥 언니까지 넘어오질 뭐야.

하하하, 이곳 부여보령서천 땅에서 우리만의 후후후백제가 세워졌지 뭐야.

부여에서 사박오일,

오늘은 이틀 째

집 떠나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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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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