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자가 나오던 목요일 아침, 그날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보고 돌아와서는, 금토일은 자체휴가를 두었다. 지금 있는 현장 일이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이때를 대비하면서 미리 일을 해놓기도 해. 토, 일 빼면은 금요일 하루 쉰 거 아니냐지만, 현장에서는 사실 주말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어쨌건 그렇게 사흘 동안은 내내 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

 

 감자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맘마를 함께 먹고, 할머니와 함께 감자 목욕을 시키고, 그러다가 준비가 되면 "감자야, 엄마한테 가자!" 하면서 조수석 카시트에 감자를 앉혀, 감자와 나란히 둘이서 엄마한테로. 마침 첫날은 감자 콧물이 흘러, 엄마한테 가기 전에 한의원에 들러 침도 한 방을 맞았고, 그 다음 날에 갈 때는 감자 장난감 대여해주는 곳에 기간이 다 되었다 해서 그거 반납하러 들러 가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장을 보러 한살림엘 들렀다, 마트엘 들렀다, 그러면서 감자를 카시트에 앉혔다, 내렸다, 여길 들렀다 하면서 아빠랑 감자 둘이서만 온전히 데이트를.

 

 카시트에 앉아서는, 감자는 꼭 한 손에 아빠 손을 쥐어. 운전 중에 전화를 받거나 하느라 손을 놓거나 하기라도 하면 어서 손을 내놓으라고 휘저어대. 그래, 미안. 아빠랑 손잡고 가자.

 

 그렇게 엄마한테 가 있다가, 엄마하고도 스킨쉽을 하다가, 아기감자보다 더 어린 아기품자를 보다가, 조리원 그 조그만 방에서 몇 시간을 있기에는 감자가  힘이 들어, 감자랑 아빠 둘이서만 도서관 마당에 나가 놀다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온전히 감자하고만 단 둘이, 그러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 엄마랑 품자는 조리원에, 할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아빠랑 감자는 집과 조리원을 오가며. 그런데 걱정이었다. 월요일부턴 다시 현장으로 나가야 할 텐데, 어쩌나. 감자를 엄마한테 데리고 다닐 수나 있으려나. 아빠가 퇴근할 때까진 엄마한테 가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하루종일 감자를 보려면 할머니도 많이 힘이 드실 텐데, 품자에게 젖을 물린 채, 달래는 감자를 기다릴 텐데.

 

 

 

 화요일인 오늘 아침, 출근할 때까지도 감자는 깊이 잠들어 있어. 눈을 뜨면 아빠도 엄마도 없을 텐데, 할머니하고 둘이만 있어야 할 텐데.   

 

 간밤에 감자품자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품자가 나오기 직전 며칠 동안 감자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괜스레 또다시 울컥. 엄마아빠랑 이렇게 좋아라 했는데.

 

 

 

 

 1. 품자가 나오기 나흘 전  

 

 

 

 

 

 

 

 2. 품자가 나오기 사흘 전.  

 

 

 

 

 

 

 

 3. 품자가 나오기 이틀 전.  

 

 

 품자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하고도 이틀이 더 지나던 날. 이상하다, 품자는 언제 나오려고 아직도 신호를 내지 않는 걸까, 하고 기다리던. 이날은 저녁에 엄마아빠에 할머니까지 함께 제주 시내엘 나갔더랬네. 할머니 이에 때워넣은 게 떨어져나가 치과에도 가보아야 했고, 목부터 허리다리까지 날마다 아파하는 할머니 몸에 뜸자리를 찾으러 뜸떠주는 데를 가보기도 해야 했어. 뜸자리만 알면은 아빠가 날마다라도 떠드릴 순 있을 텐데, 그 자리를 몰라 어쩌나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할머니가 서울에 지낼 때 다니던 구당 할아버지네 제자들이 한다는 뜸사랑이라는 데가 시내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리고 감자네 집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시내에다 맡긴 것도 찾아와야 했고, 이 모든 걸 엄마가 품자를 낳기 전에 해두어야 했으니. 품자가 나오고 나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를지도 모르니.  

 

 할머니가 뜸을 뜨러 들어간 사이,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고, 엄마랑 같이 어딜 좀 걸었으면 좋겠는데, 시내에서는 마땅이 걸을만한 곳이 없어. 그래서 간 데가 대형마트. 딱히 살 건 없었지만, 그냥 구경삼아 걷자 하고 갔던 거기엘 들어가 아이들 장난감 파는 층으로 올라가니, 감자 눈이 휘둥그레. 온갖 요란한 것들, 번쩍번쩍 유혹하는 것들에 혼을 빼앗길 것처럼 정신이 없어. 다음부턴 이런 데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 그 가운데에서 감자는 제일 싸구려 같은 장난감 하나를 손에 쥐고 신나게 밀어대네.   

 

 

 이야아아, 잘한다, 감자야!  

 

 월요일이 되어, 나는 다시 출근을 준비했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감자를 뒤로 하고 폭포 현장으로 나섰다. 주차장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폭포 아래에서, 레미탈을 개고, 흙손을 들고, 자갈을 깔고, 시멘트를 나르고.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어, 이날따라 밥 생각도 없어 커피 집엘 들어가 앉았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감자는 잘 놀고 있는지, 달래에게 전화를 걸어 품자는 잘 먹고 자는지, 이리저리 전화를 넣으면서 감자와 할머니 생각에 품자와 달래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러고 있는 내 모습에 낯설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새벽바람에 출근을 하고, 집에 있는 할머니와 첫째 아기를, 조리원에 있는 아내와 둘째 아기를 걱정하며, 폭포에 들어가 온몸이 다 젖어서도, 흙손으로 몰탈을 펴 바르면서도, 내내 마음은 그리로만 가 있는.

 

어제 아침 출근길에 돌아다본 감자.

 

 그런 건 다 남의 얘기인줄만 알았다.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질 줄이야, 내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니. 다행히 감자는 할머니와 신나게 놀고 있다고 하였고, 달래는 어제와 또달라진 품자 사진을 보내왔다. 품자가 이젠 표정을 짓는다며, 배냇짓을 시작했다며. 

 

 이상한 기분, 낯설기만 한 내 모습. 이렇게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가고 있어. 점심은 무슨 점심, 얼른 일을 마치고 감자한테 달려가자. 감자하고 손을 꼭 잡고, 달래한테로, 품자한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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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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