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감자

감자로그 2016. 3. 13. 00:43

 

 열여섯 달박이 아기감자는 형아가 되었다. 형아가 되었다는 거, 엄마가 나 말고도 다른 아기를 품에 안아야 한다는 거, 나보다 갓난 어린 것, 엄마아빠할머니 이젠 감자네 집에는 감자말고도 아기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 감자는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운 마음일까.  

 

 

 감자로서는 모든 것을 처음 겪어야 하는 일들. 스물네 시간을 엄마아빠와 언제나 붙어 있었건만, 어느 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없는 집에서 할머니하고만 하루를 보내어야 했어. 그림책을 함께 보아주던 엄마도, 미끄럼을 태워주던 아빠도, 잘 때 함께 누워주던 엄마아빠가 없이, 할머니하고만 그림책을, 미끄럼을, 그리고 이불 속 잠자리까지.

 

 

 출산과정에 첫째 아기가 함께 할 수 있으면 더 좋다고. 엄마가 배에 힘을 주고, 엄마의 찡그린 얼굴 끝에,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오는 과정을 언니나 형아가 같이 보는 게 더 좋다고. 자연출산을 하는 쪽에서는 그렇게들 말하곤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도, 품자의 탄생 순간을 감자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람. 하지만 출산이 임박해오면서, 아직 우리로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달래의 진통이 남달리 길다는 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아직 감자는 누군가가 케어해주지 않으면 그 오랜 시간을 혼자 기다려줄 수가 없는. 엄마는 기진맥진한 채로 그 기나긴 터널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아빠는 오로지 엄마의 몸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게다가 달래는, 엄마가 그토록이나 고통스러워하는, 그 길고긴 모습을 아직은 감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다 해서 언제 나올지도 모를,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그 시간을 할머니와 감자가 문 밖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 그러니 감자는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는 걸로.

 

 

 밤 아홉 시, 십분마다 진통이 시작하면서 달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 밤 혹은 새벽에는 품자가 나오게 될까. 얼마나 오랜 진통을 건너야 할까, 걱정이기도 하였지만, 달래는 감자 생각에 눈물을 쏟아버려. 감자가 할머니랑 잘 있을 수 있을까, 잠들 땐 엄마를 찾진 않을까, 엄마아빠 없는 낯선 상황을 감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물론 감자보다 더 어린 것들도 일찍부터 엄마아빠랑 떨어져 있기를 시작하곤 하지만, 어쨌든 감자로서는 여태껏 한 번도 그 비슷한 경험이나 훈련을 해본 적이 없어. 감자 어떡하지, 조산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달래는 내내 울음을 차지 못해.

 

 

 열 시간의 터널을 지나, 다음 날 아침 품자를 낳았다.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품자의 소식을 전하자마자, 감자가 어떻게 지내었는지를 물어.

 

 "신기해. 무슨 애기가 이럴까. 처음에는 이방 저방으로 돌아다니는 거야. 칭얼대는 거 하나도 없이. 그런데 그게 꼭 엄마 어디에 있나, 아빠 어디에 있나 숨바꼭질을 할 때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지슬아, 엄마랑 아빠랑 아기 나으러 갔어.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거든, 동생낳고 올 거니까 지슬이는 할머니랑 잘 놀고 있자, 그랬더니 얘가 고개를 푹 떨궈. 그러더니 말없이 그림책들을 주섬주섬 하나씩 들추지 뭐야. 그러다간 할머니랑 한참 숨바꼭질을 하고, 하하하하 실컷 재미나게 놀다가, 기저귀 갈아야지? 하면 저 자는 방으로 아장아장 걸어가서는 이불 위에 발랑 드러누워. 싫다고 몸을 비틀고 달아나고 그런 거 하나 없이 가만히 누워서 기저귀를 갈아달래. 그러고는 또 한참을 놀다가 지슬이, 이제 코오 잘까? 하니까 할머니 품에 와 앉아 있다가 고개를 떨구네. 아침에 일어나서도 방긋이 웃고 나와서는 맘마 떠주는 거 잘 받아먹고. 무슨 애기가 이렇게 이쁜 짓을 하는지, 할미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칭얼대고 보채는 거 하나 없이 잘 놀고, 잘 자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휴우우, 다행이다 정말. 감자야, 고마워! 고맙다, 감자야!

 

 

 아침 일곱 시 사십일 분, 품자를 낳고난 뒤, 어떻게 시간이 지났더라. 모진 진통으로 품자를 낳고난 달래는 훗배앓이까지 시작해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고, 그 핏덩이는 아빠가 안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바로 젖이 돌기 시작해 달래가 품자를 않아 초유를 먹게 하였고, 그날 아침 회사에 처리해줘야 할 일이 있어 나는 회사엘 나가야 했어. 조산원에 들어갔던 츄리닝바람, 그 차림으로. 잠깐이면 될 것 같았지만, 일처리를 하다보면 잠깐이 한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되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마쳐놓곤, 달래가 필요하다 한 산모용품 몇 가지를 챙겨 다시 조산원으로. 달래는 아직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고, 조산원 이모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 그때는 아기를 부탁할 수도 없었으니 아빠가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아기를 낳으면 할머니랑 감자를 데리러 바로 가겠다고 했지만, 그럴 새가 없이 오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즈음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와. 이미 울먹이기 시작하는 할머니의 목소리.

 

 "얘, 언제 올 거니? 그래? 그러면 좀 더 있어야겠네. 근데, 얘야, 지슬이가 안쓰러워. 어젯밤,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할머니랑 둘이 그렇게 잘 놀고 그랬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얼굴색이 달라지고 있어. 아니, 그렇다고 보채지도, 떼를 쓰지도, 울지도 않아. 그 노래만 나오면 움찔움찔 춤을 추고 웃던 애가, 노래를 틀어줘도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얼굴엔 웃음이 없고, 미끄럼을 타자 하거나, 그림책을 보자 하면, 잘 따라하긴 하는데 안색이 영 달라. 그래서 지슬이에게, 지슬아, 지금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많이 아프대. 그래서 엄마가 쉬어야 하니까 그때까지만 잘 기다리자, 하고 얘기를 하면, 할머니 눈을 뚫어져라 보다가는 고개를 툭 떨구곤 장난감 상자 앞으로 가서, 장난감을 하나하나 꺼내놓기만 해. 울지도 보채지도 않으면서, 얼굴에는 한 겹 가득 쓸쓸하고 슬픈 빛이. 얘야, 지슬이가 너무 안쓰럽다. 빨리 좀 와줄 순 없겠니."

 

 이 얘기를 전해듣는 달래는 다시 울음이 터져. 안되겠다 싶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품자는 젖을 빨다 잠이 들었고, 산모와 아기 상황에 대해서는 조산원 분들께 도움을 청해놓은 채.

 

 

 집에 닿아 문을 열자마자, 아빠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입이 터져라 웃으며 달려나오는 감자. 감자야, 미안해. 이제 엄마한테 갈 거야. 어서 준비해서 할머니랑 아빠랑 엄마 만나러 가자. 

 

 그런데 할머니는 앞서 전화통화를 하고 내가 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감자와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을 하나 더 들려주어.

 

 "니가 다시 전화하고 나서 지슬이한테, 지슬아 옷입자, 했거든. 지슬아, 지금 아빠가 전화해서 지슬이 데리러 온대. 아빠가 집에 와서 지슬이 데리고 엄마 있는 데로 데려다 준대. 지슬이 이제 엄마 만나러 가자. 엄마랑 아기랑 보러 같이 가자. 좋지, 지슬아. 그랬더니 얘가, 내가 얘기하는 내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그러다가 눈물 한 방울이 뚝. 무슨 애기가 그러니. 눈물이 뚝 떨어지니까 주먹쥔 손을 눈에 들어올리면서 눈물을 훔쳐. 다 알아듣더라. 그동안 엄마아빠 찾으며 우는 거 한 번 안 하더니, 아빠가 온다니까, 엄마한테 간다니까, 그제서야 맺힌 게 풀리듯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면서."

 

 할머니가 다시 울먹였고, 그 얘길 듣는 나도 어쩌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얘길 전해듣는 달래는 폭포처럼 울음을 터뜨려.

 

 

 김순선 자연조산원, 일년 반 전에 감자가 태어난 곳. 이젠 감자는 아장아장 걸어 그 골마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엄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는, 마치 바다를 보고 입이 벌어지던 것처럼, 햇살 가득한 마당에 나설 때 경이로운 얼굴이 되던 것처럼, 입을 함박 벌리며 엄마에게 달려들어.

 

 감자야, 엄마야! 

 

 이내 감자는 그 방 안에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감자 뿐 아니라 또다른 어떤 존재가 있는 걸 알아챘다. 저보다 더 어린 목숨,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는 아기, 감자의 동생.

 

 

 조심스레 손가락 하나를 펴, 품자의 얼굴을 닿을듯 대어보는 감자.

 

  이 쪼꼬만 애는 누구지, 누군데 엄마 품에 안겨있을까, 저 품은 내 자린데. 꼬물꼬물 움직이는 어린 아가, 할머니는 이 아기가 내 동생이라는데, 동생이라는 게 모지, 엄마는 집에 오질 않고, 엄마는 이 낯선 곳에서 이 낯선 아가를 안고 있어. 여긴 어딘지, 이 아가는 누구인지, 엄마는 감자엄마인데, 엄마는 왜 이 아가를 안고 있는지.   

 

 감자는 어떤 마음일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엄마의 부재, 전에 없던 존재의 출현, 이 낯섬과 상실과 혼란.  

 

 

 이틀 째였던가, 조리원엔 달래와 품자, 아빠와 감자 둘이서만 집에서 자고 일어난 날. 할머니와 함께 감자 아침을 챙기고, 감자 목욕을 시키고, 그 다음엔 아빠랑 둘이서 엄마를 만나러 조리원으로. 그래도 그 날은 회사엘 나가지 않았기에, 시간이 있을 때 출생신고며 이런저런 볼일들을 해두자 싶어, 감자도 품자도 잠든 사이 읍사무소엘 나갔더랬다. 출생신고며 출산축하금 신청, 양육지원금 신청 등 신고서를 써야하는 것만 해도 네 가지나 되었으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려. 서둘러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달래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아직이야? / 어, 근데 왜 울어? / 아니야, 감자 때문에. / 감자 깼어? / 어, 깼는데. / 왜, 무슨 일인데? / 아니야, 와서 얘기해. 어서 와줘.

 

 감자도 울고, 품자도 울고, 달래도 울고, 셋이서 다 같이 울음이 터져버린 상황. 잠에서 깨어난 감자는 조심스레 아기를 들여다 보았고, 가만가만 손으로 아기를 쓰다듬기도 하다가, 엄마가 감자에게 해주던 것처럼 쓰담쓰담, 토닥토닥을 해. 그런데 힘조절이 되지 않기에, 감자의 토닥토닥이 품자에게는, 아직 여물지 못한 그 몸을 툭툭 때리듯 전해질 것도 같아. 게다가 때로는 가만히 만지거나 쓰다듬는 것만이 아니라, 아기 얼굴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올라타려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러자면 십키로가 넘는 감자의 몸으로 아가 몸 위에 올라타는 상황이 되기까지. 아빠 몸 위에 올라탈 때도, 꾹꾹 누르며 기어오르면 아프기까지 했으니, 아가 위로 감자가 기어오르면 그 여린 몸은 짓뭉개지듯이, 감자의 무게를 견디기가 어려워.  

 

 감자의 쓰담쓰담과 토닥토닥, 그리고 아기 몸으로 기어오르려 하면서 품자가 울음을 터뜨려. 아가의 울음에 놀란 감자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더 큰 울음을 터뜨려. 감자가 품자의 몸 어딘가를 짚었을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지러지는 품자를 달래가 안아들자, 놀라서 울음이 터지는 감자는 엄마에게 매달리며 더 크게 울어.

 

 얼마나 서러웠을까. 감자는 그저 아가가 예뻐서, 아가를 예뻐해주려 그런 것 뿐인데, 아가가 울음을 터뜨렸어. 품자만큼이나 감자도 놀라 울음이 터진 상황에서, 엄마는 감자를 안아주질 않아. 아무리 엄마에게 매달려도 엄마는 다른 아가를 안고서 어쩌지를 못하는 상황의 그 서러움.

 

 

 그랬다. 둘째 아가가 나오는 건, 첫째에게는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거라고. 그 말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실과 충격이 배우자를 잃는 거에 있다 했고, 그 다음이 동생의 출현이라던가. 가족이라는 우주, 집이라는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을 보아주고, 나만을 안아주고, 나만을 위해주던 식구들이 달라진다는 것. 게다가 어느정도 상황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지도 못한 채, 그대로 닥쳐버리게 된.

 

 분야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얘기하곤 했다. 아직 형아가 아가인 상태에서, 더 어린 아가가 태어나더라도 형아의 충격이나 혼란, 상처를 최소화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절대로 큰 아기 앞에서 둘째 아기를 더 예뻐한다거나 둘째 아기를 더 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세상에 없던 존재가 나타나 무언가 내 것이었던 것들을 많이 가져가버리는 듯하더라도, 별 것 아닌 존재가 나온 거라는 식의 안심을 주어야만 한다던.

 

 그런데 첫날, 감자가 그렇게 처음으로 엄마아빠의 부재를 겪은 끝에, 끝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며 엄마를 만나러 오던 날. 할머니는 좋은 뜻으로 감자에게 얘기하곤 했다.

 

 지슬아, 지슬이 동생 우슬이야. 이야아, 아가가 참 예쁘지? 지슬이가 이렇게 우슬이 예쁘다, 아이 참 예쁘다, 해줘. 엄마아빠한테 하는 것처럼 아가 예쁘다, 우슬이 예쁘다 쓰다듬어 줘.   

  

 아니, 그렇게 하면 아가가 아프니까 살살 해야지. 옳지! 그렇게, 우슬이 예쁘다, 하고 만져주는 거야. 아아니, 그렇게 세게 하면 아가가 아파서 안 돼.

 

 어어? 지슬아,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아가가 아파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지슬이에게 우슬이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은, 앞으로 서로 예뻐하며 우애있게 지내기를 바라며 가르쳐주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하는 말들. 그러나 감자에게는 그 모든 말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었다. 감자 앞에서 자꾸만 감자 아닌 다른 아가를 예쁘다, 고 말을 하는. 게다가 감자에게도 그 아가를 예쁘다 하고 말을 하라고 하는. 감자가 아가를 예쁘다 해주고 있는데도,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며 무언가 자꾸만 이 아가만을 위해주는 것만 같은. 

 

 감자는 이내 아가에게서 돌아서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렸다. 조리원의 낯선 방에 있던 전화기며 리모컨, 옷장 같은 것들에. 

 

 

 그날 밤, 달래와 둘이 얘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께 조심스레 잘 말씀드려보기로. 어머니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자칫 어머님이 잘못하셨다고 질책처럼 느끼시지 않게, 우리도 잘 몰랐는데, 교육받으면서 들은 얘기인데, 그게 그렇다대요, 하는 식으로.

 

 그날 밤, 엎드려 있는 엄마 등과 허리에 뜸을 떠드리며,

 

 엄마, 지슬이 앞에서 우슬이 예쁘다 하는 말 자꾸 하지 말으래. 아까 조산사 할머니도 그 얘길 해주고 가더라고. 무조건 지슬이 최고, 지슬이 예쁘다, 해야 한대. 동생 예뻐하란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하면, 얘가 누군데 자꾸 얘를 예뻐하래지? 안 그래도 이 애가 내 걸 다 빼앗아가는 것만 같은데, 왜 내 앞에서 자꾸만 이 애를 예쁘다고, 나보고도 예뻐하라고. 그렇게 서둘러서 동생 예뻐하란 말을 할수록, 큰 애가 엄마아빠 안 볼 때 동생을 꼬집고 때리고 그렇게 되는 거래. 우슬이 예쁘다, 할 때도, 지슬이 닮아서 동생도 예쁘네, 하는 식으로 말을 하라고 그러더라고.

 

 감자가 품자 만져줄 때, 부드럽게 만질 줄을 몰라서, 지딴에는 토닥토닥하는 게 자칫 갓난애한테는 아프게 때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냥 두래요. 감자 잘한다, 하면서 오히려 추어주래요. 우리가 보기에는 애기가 너무 아파 보이더라도, 지슬이가 토닥토닥해봐야 얼마나 아프겠냐면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안 된다고 막아서면, 그게 더 지슬이에게 상처가 된대요.

 

 어떤 상황에서도 감자가 우선, 특히나 우슬이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 그래야 한다면서.

 

 다행히 엄마는 그 얘길 들으며 마음 상해하거나 그러시질 않았다. 아아,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하면서, 알겠다시며. 

 

 

 감자, 품자가 잠이 들고, 달래하고 셋만 남겨둔 채 내가 읍사무소에 나갔던 때. 그때도 그런 상황이었다. 감자는 품자가 신기하고 궁금하고, 예쁘다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러는 걸, 달래는 그대로 두고보며 흐뭇해하였어. 때로 감자의 토닥토닥이 품자가 못견딜 정도일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감자가 좋아서 그러는 걸, 굳이 안 된다고 떼어놓질 않으며.

 

 그러다 발생한 상황. 감자가 품자 몸 위로 타고 오르면서, 품자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었고, 품자 울음에 놀란 감자도 울음이 터져버려. 달래로서는 품자부터 안아들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에게 매달리며 서러운 눈망울로 눈물콧물을 흘리는 감자의 얼굴. 달래는 품자를 안고 달래며, 감자에겐 어찌해주질 못한 채 함께 울음이 터지고마는.

 

 어쩌지, 감자야? 엄만 감잘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엄만 감자 옆에서 감자를 재울 수도 없는데, 나흘 전만 해도 감자 옆에 꼭 붙어, 무얼 해도 감자와 함께였지만, 이젠 그러질 못하는데.

 

 

 하지만 더 마음이 아픈 건, 점점 감자가 무언가를 체념해가는 듯한 얼굴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시무룩히 돌아서서 영혼없는 표정으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거나 그림책을 넘길 때. 차라리 떼를 쓰고, 보채고, 엄마아빠를 찾아 울어댄다면 더 나았을까.

 

 감자를 오래 보아온 이들이 해오던 말, 감자는 쪼꼬만 게 응시할 줄을 한다고. 저 어린 게 무얼 안다고 저렇게나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눈빛을 하느냐고.

 

 무언가를 가만히 응시하는 감자의 눈빛이 늘어갔다. 무얼 생각하는 거니, 감자야. 엄마의 부재, 동생의 출현,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만 여겼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그 상실감과 혼란스러움의 충격.

 

 

 어쩌면 나나 달래가 자꾸만 그런 쪽으로 보려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라. 감자 얼굴에 비춰지는 쓸쓸함, 웃음기 없는 응시의 표정, 그런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감자는 여전히 넘어가도록 웃고, 즐겁게 지내기도 하거든. 할머니 말을 빌자면, 이렇게 순한 아기는 처음이라며, 얼마나 이쁜 짓을 하는지 얘하고는 하루종일을 있어도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아빠하고 같이 엄마가 있는 조리원엘 가면, 감자는 침대 위가 궁금해. 여전히 아기가 궁금하고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

 

 

 그 중에서도 감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 품자의 발.

 

 

 그런데 감자야, 품자 발도 귀엽고 예쁘지만, 아직까지 아빤 감자 발이 더 예쁘거든.

 

 

 달래는 나보다도 더 감자가 안쓰러워. 하루 네다섯 시간, 감자가 조리원에 와있는 동안 달래는 감자에게 최선을 다한다. 품자가 깨어 젖을 찾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품자를 안고 젖을 물려야 하지만, 품자가 잠들고 나면 감자에게 온전히 모든 에너지를 다하려 하면서.

 

 

 그래, 감자야. 엄마랑 빨래 널고, 빨래 개고 그러는 거 좋아하지? 이야아, 우리 감자 잘한다!

 

 

 엄마 침대 청소해줄래. 집에서 엄마가 걸레질 할 때마다 쫓아다니며 밀던 돌돌이. 그래, 감자야, 감자가 엄마 침대 청소해주고 있네 ㅎ   

 

 

 이제 겨우 열여섯 달, 아직도 아기이기만 한 감자는, 조리원에 가 있어도 낮잠에 빠지기도 하는. 감자는 침대 아래에서 잠에 들고, 엄마는 침대 위에서 품자 젖을 물려.

 

 

젖을 먹던 품자가 잠이 든 사이, 감자가 깨어나고 감자도 맘마를 먹어야 할 시간. 달래는 굳이 자기가 먹이겠다지.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자를 안고 젖병을 물렸지만, 품자를 낳고나서는 그러질 못해. 여기에 와 있는 동안이라도, 감자를 안고 먹이고 싶다고.

 

 감자 좋겠네, 엄마가 맘마 주니까 좋지, 엄마가 안아주니까 좋지.

 

품자를 안고 젖을 물렸다가, 감자를 안고 맘마를 주었다가, 이렇게 달래는 두 아가의 엄마가 되어.

 

 

 

 두 평도 되지 않는 조리원의 작은 방. 엄마를 만나 좋기는 하지만 그 좁은 방 안에서만 있기에는 감자가 힘들기도 해. 방이 조그만만큼, 감자 손에 닿는 것들 중에는 만져선 안 되는 것들, 손에 닿는 것마다 안 된다 말해야 한다는 것도 얼마나 속상한지.

 

 감자야, 아빠랑 밖에 나가서 놀다 올까.  

 

 다행히 조산원 길 건너편엔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에 가면 제법 너른 마당에, 나무들이 많은 오솔길이 있기도 해.

 

 

 그렇게 감자는 엄마의 조리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더는 감자만을 보아줄 수 없는 엄마대신, 아빠랑 둘이서만 놀기도 하며,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둘이서만 보내기도 하며,  

 

 

 감자야, 아빠랑 음식쓰레기 묻어놓고 엄마한테 가자! ^ ^

 

 

 감자야, 엄마한테 잘 다녀와! 할머니, 안녕!

 

 

 오늘은 감자가 품자 얼굴에 대고, 눈! 하면 품자 눈을, 코! 하면 품자 코를, 귀! 하면 품자 귀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켜.  

 

 

 품자가 태어났다. 

 

 

 아기감자는 형아감자가 되어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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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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