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대신 감자

감자로그 2016. 2. 21. 08:14

 

  

 아빠는 바빠요. 새벽엔 내가 눈뜨기도 전에 일하러 나가고, 집에 들어왈 때는 옷에다 더러운 걸 잔뜩 묻히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아빠가 문열고 들어올 때 막 달려나가 안아달라가ㅗ 해도, 아빤 더러워서 안을 수가 없어, 그러면서 옷을 다 벗고, 털어낸 뒤에야 안아주고 그래요. 그러곤 씻고, 저녁 먹고, 저녁 먹으면서 술먹고, 그러다가 술에 취해서 꾸벅꾸벅 졸거나 그러면서 전축에다가 음반 몇 장 돌려 듣다가는 그대로 골아떨어지곤 해요. 지난 주에도 소파에서 그냥 쓰러져 잠들었다가 엄마한테 몇 번이나 혼이 났더랬어요. 아니, 이러면 엄마가 내가 언제 혼냈냐고 그러겠다. 엄마는 그냥, 들어가서 자라고 아빨 깨우는데, 아빠는 내가 언제 잤냐면서, 깨워주는 엄마한테 혼이 난다고 생각했나 봐요. 암튼 아빠는 맨날맨날 그래요. 엄마는 아빠를 안쓰럽게, 혹은 위태롭게 보는 것 같고, 아빠는 맨날 엄마한테 미안하다 그래요. 내가 이렇게 못나서 미안해, 이렇게 약해서 미안해.  

 

 그럼, 아빠를 대신해서 감자가 지난 열흘 동안 찍은 사진들을 올립니다. 감자 사진 보러 왔다가 그냥 가는 분들이 있다고 그러는데, 암만 그래도 아빠만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빠는 속을 끓이며 일을 하다가도 엄마가 보내주는 감자 사진들에 기분이 맑게 좋아진다 하니까요.

 

 

 

 

 

 

 

 

 

 지난 주엔 조산사 할머니를 만나러 다녀왔는데, 품자 나올 때가 이젠 다 되었대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다 내려왔다며, 오늘내일 나온다 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다면서요. 병원에서 알려준 예정일은 삼월 여섯날이지만, 내가 태어날 때도 예정날짜보다 일주일을 먼저 나왔는데, 품자는 어쩜 나보다도 더 일찍 나올 것 같다며 말예요.

 

 품자는 나랑은 많이 다른가 봐요. 아직 엄마 뱃속에 있는 품자는, 내가 나올 때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있대요. 몸만 그렇게 큰 게 아니라 눈도 크고, 코도 크고, 입도 크고 하는 걸 보면 얼굴도 나랑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엄마 뱃속에서 움직이고 발로 차고 그러는 것도 나때하고는 아주 다르다고, 많이 움직이고, 크게 움직인다면서 엄마가 깜짝깜짝 놀란답니다. 이 녀석, 감자하고는 아주 다른 애가 나오겠구나, 하고 엄마아빠가 얘기하곤 하는데, 어떤 아기가 나올지, 많이 기다려죠요. 빠르면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 주, 이젠 감자는 형아가 될 거예요.

 

 

 

 

 

 

 

 

 

 

  아참, 아직도 엄마아빤 내동생 품자 이름을 짓질 못했나 봐요. 아빠는 이게 어때, 이건 어때 하고 얘길하곤 하지만 엄마 마음에는 쏙 들지가 않는가 봐요. 내 이름을 지을 땐, 태명도 한 방에 감자, 이름도 한 방에 지슬, 엄마랑 아빠가 둘 다 흡족해하면서,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감자에 지슬이라 지었다는데, 품자 이름을 짓는 데는 애를 먹고 있어요. 

 

 

 

 

 

 

 

 

 

 아빤 아직도 회사 다니는 일을 힘겨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감자를 보면 힘이 난대요. 엄마가 있어 힘이 난대요. 할머니가 있어 힘을 낼 수 있대요. 어제는 갑지기 비가 쏟아져, 폭포 아래로 시멘트에 자갈돌들을 그 빗속에 등짐을 지어 내리고 와서는 감기가 오는 것 같다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불 속에 들어갔어요. 감기가 오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감기에 걸려서는 큰일이라며.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었어요.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었어요. 그렇게 긴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선 다행히 감기를 떨어뜨린 것 같다며 마음을 놓았어요. 아빠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프면은 안 된다고, 내가 아파서는 안 된다고.

 

 이제 곧 감자네 집에는 품자가 나올 거고, 할머니도 품자 맞이할 준비를 하러 서울 집엘 일주일 다녀왔어요. 챙겨오지 못한 봄옷이랑, 앞으로 오래 감자네 집에서 함께 지낼 짐들을 챙기러.

 

 감자네 집 마당에도 이제 곧 봄이 올 거예요. 품자가 올 거예요.

  

 

 

 

 

 

 

 

 

 아빠, 감자 잡아보세요 ^ ^

 

 

 그래, 감자야. 감자가 아빠를 일으켜 뛰게 해주네.

 

 

 낮은산 큰아빠가 얘기하곤 했대요. 감자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다 된다고, 니가 닥쳐있는 거, 고민하는 거 감자가 다 정리해줄 거라고. 아빤 그 말이 자꾸만 생각나곤 하나 봐요. 정말 그런가 보다 하면서. 나는 그게 뭐라는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암튼 감자는 이렇게 달려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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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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