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품자로그 2016. 3. 11. 05:56

  

 삼월 십일 아침, 일곱시 사십일분. 짐승처럼 몸을 비틀고 온몸의 핏발이 서던, 열시간 사십일분, 품자가 나왔다.

 

   감자 때의 서른다섯시간 오십분에 대면 그보다는 나았지만, 몹시도 힘겨운 난산이었다. 속골반이 좁아 아기를 낳을 때마다 애를 먹었다는 장모님, 엄마를 쏙 닮아 감자를 낳을 때부터 그 모진 고생을 하던 달래. 그래도 한 번 길이 열린 둘째 때는 쉽게 나올 거라고, 몇 번 힘주지 않아도 쑤욱 나을 거라고, 사람들이 하는 말에 기대를 두기도 했다. 감자에 이어 품자를 받아주는 조산사 할머니도, 둘째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달래의 몸을 보면서도 자궁문이 이렇게나 열렸으니 이제 다섯 번만 더 힘을 주면 나오게 될 거라고, 안심스러운 말을 하더니, 끝내 조산사 할머니도 진이 다 빠져버리고 말아. 삼십사년 아기를 받아왔지만, 초산도 아닌 아기를 이렇게 애를 먹으며 받기는 처음이라며.

 

 

 품자가 나왔다. 이쩜오 키로로 나오던 감자 때도 그리 고생을 하였는데, 이 아기는 삼쩜사오 키로그램. 감자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부터 순둥이에 얌전이, 울음소리가 없어 오히려 언제 울까를 기다리게 하다간 아주 조그맣게 이앵이앵 몇 번 소리를 내는 게 다였는데, 품자는 우렁차다. 아아앙, 아아앙.

 

 

 고생했다, 아가야. 엄마가 힘든만큼 너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니.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 싶어, 그 좁은 길을 열고 나오느라고.

 

 

 다행스럽게도 달래와 품자 모두 건강해. 아기가 나오자마자 남산만하던 달래 배가 푸욱 꺼지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안에서 품자는 이렇게나 자랐구나. 나오는 순간까지, 실신 직전까지 가 있던 달래는, 아빠가 아기를 안아 보여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웃음이 돌아. 반가워, 아가야 하는 마음이 반, 이젠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반. 감자 때는 오히려 낳자마자 움직임에 불편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훗배앓이가 심해 아직 많이 힘들어가면서도.  

 

 

 열 달을 꽉 채우고도 사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궁금하기만 하던 품자가 그렇게 와주었다.

 

 

 처음으로 엄마아빠랑 떨어져, 할머니랑 집에 남겨져 있던 감자는, 온 가족 울음을 쏟게 할 정도로 찡한 모습을 보이더니, 엄마와 아가에게 데려가 주니까 좋아서 눈이 반짝반짝. 동생이라 말해주는 아가 얼굴을 보여주니 그 아가를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아가야, 여기에 이렇게 형아가 있어. 토닥토닥 가만히 만져주는, 품자보다 조금 더 큰 아가.  

 

 

 열 시간의 진통 끝에 아가를 받고, 품자를 안고 달래의 곁에서 얼마 간을 있다간 바로 회사엘 출근. 출산일을 점칠 수가 없었으니, 적어도 이날 오전까지는 처리해주어야 할 일들이 있었어. 츄리닝 바람으로 회사엘 나가 몇 가지 일들을 해놓고는, 하가리에 있는 감자네 집과 달래품자가 있는 시내의 조산원, 집에는 왠지 엄마아빠한테 버림받은 것 같은 감자가 있고, 조산원에는 아직 훗배앓이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달래와 제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갓난장이가 있고, 여기저기 모두 손을 써야 했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꼬박 밤을 새우고도 다시 한밤중이 될 때까지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어.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세상의 하늘이 새롭게 보였다. 길가의 나무를 보면 나무가 달라 보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세상이 또 한 번 달라졌음을,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내 몸이 또 한 번 달라지고 있음을. 한 목숨이 세상에 나오는 일, 그리고 그 한 목숨을 세상 속에서 지어가는 일.

 

 감자도 품자도 잠든 밤. 달래는 감자를 생각하며 여러차례 눈물을 쏟았고, 간밤의 힘겨웁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언젠가부터 나는 달래에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거 그거 말고, 존경하는 마음 같은 게 생기고 있다는 걸 알아. 감자를 키우는 걸 보면서, 그리고 나같으면 견디지 못했을 그 순간을 이겨내는 걸 지켜보면서. 

 

 품자가 왔다. 단순히 갓난아기 몸 하나 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것을 함께 데려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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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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