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이라는 거, 어차피 어느정도의 기준이 되어주는, 그 정도 의미라지만, 그래도 오늘로 예정일에 접어들었다. 감자는 예정일에 일주일 먼저였던 걸 보아, 품자는 아무래도 그보다 더 먼저, 열흘이나 보름은 먼저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아.
엄마 뱃속에 더 오래있다 나오고 싶어 그런가 보다.
할머니가 하신 말씀인데, 그런 얘기를 듣고나니 걱정이랄 게 가시면서 마음이 편안하다. 엄마 뱃속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이라면, 왠지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래, 품자야. 엄마 뱃속에선 오늘로 꼭 이백팔십일. 아직은 엄마 뱃속이 더 좋구나!
지난 주 일요일, 라다 이모야네 집엘 잠깐 들른 길. 아욱을 사러 하나로마트엘 잠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마침 감자가 잠에 깊이 들어, 달래도 함께 나섰다. 농협 가는 길이니 그 근처에 살고 있는 라다에게도 잠깐 들러 그림책 한 권을 주고 오려고.
설 연휴부터 시작한 라다의 독감은 거의 한 달 가까이를 괴롭히고 있어. 응급실까지 실려가고 할 정도로 심하게 감기를 앓고 있었는데, 언젠가 볕이 좋았던 날, 라다의 블로그에 '이 볕들을 고이 모아두고 싶다'는 문장이 있는 거라. 아, 저 말! 레오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서 프레드릭이라는 들쥐가 하던 말이라는 게 떠올랐고, 그래서 그림책을 라다에게 선물하고 싶었어. 햇살을 모으고, 빛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는, 작은 들쥐 이야기.
라다네 잡깐 들러 그림책을 전하고, 그래도 아쉬우니 차 한 잔이라도 하고 가라, 잠깐 집엘 들어가 있다가 라다에게 사진기에 대해 물었거든. 우린 여태 스마트폰 말고는 사진기가 없는지라, 너무 좋은 건 말고, 아기들 사진 정도 찍어줄, 그런 사진기 하나 살까 하는데, 어떤 걸 사는 게 좋겠는지. 라다라면 사진을 전문으로 찍으니 사진기에 대해서도 잘 알까 싶었던 거. 그랬더니 라다는 이런저런 용도를 더 물어보다가 써브로 쓰는 자기 카메라를 감자네에게 준다질 모야. 아이구야, 이것 참. 암튼 그렇게 해서 사진기를 선물받게 되었어.
그러다가 사진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감자 때는 출산 직전까지 마을로. 오름으로, 바다로, 일부러라도 많이 걸으며 운동을 하느라 여기저길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기도 하였거든. 달빛 아래에서도, 노을지는 하늘 아래에서도, 오름 정상에서도. 그러니 흔히들 말하는 만삭사진이라는 걸 자연스레 적잖게 찍게되는 셈이었어. 그런데 나는 일을 나가야 하고, 달래는 감자를 보아야 했으니, 그때처럼 어딜 다니지는 못해. 그러다보니 만삭사진이라는 것도 거의 찍질 못하고 있다는 게, 품자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라.
그래서 즉석에서 사진 몇 컷만 찍어달라 부탁을 했던 거. 그랬더니 라다는 바로 카메라를 꺼내어왔고, 달래는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잘 입고 올 껄" 하면서도 걸치고 나간 외투를 내려놓았다 ㅎ
그리하여 라다네 집은 스튜디오가 되었고, 세수도 하는둥 마는둥 꼬질꼬질 달래는 모델이 되어 품자에게 줄 사진을 준비해.
품자야, 엄마 뱃속에서 이렇게 있었단다.
이날은 품자가 엄마 뱃속에서 이백일흔사흘 날.
한 일주일 전부터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물어오곤 해. 혹시 그게 달래에게 부담이거나 불안이 들게 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달래는 편안하게 기다리는 얼굴.
품자야, 엄마 힘드니까 이제 그만 방 빼라! ㅎㅎ
하고 웃으면서. 뱃속에서 너무 커지면 어떡하나, 얼마나 큰 아기가 나오려 하나, 다른 데는 다 커도 좋으니, 나올 때 힘들지 않게 머리만큼은 작았으면 좋겠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