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자에게 / 박기범
엄마 뱃속에서 사십 주, 이제 이십일 주가 되었다니 어느새 반 너머를 엄마 품에서 살았네. 벌써 반이라니. 그러고보면 아빠는 품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감자 형아가 엄마 뱃속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때는 형아 이름을 참 많이 불러주었거든. 뱃속에서도 엄마아빠 목소리를 듣고 기억한다기에 감자야, 감자야, 건강하니, 감자야 하면서 참 많이도 이름을 부르며 얘기를 나누었어.
감자야, 너도 들리니? 새들이 노래하네.
감자야, 된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어.
감자야, 저기 저 하늘 좀 봐. 달이 커다랗게 떴다.
감자야, 비오는 소리 들리니? 가만 귀기울이면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어.
건강한 몸으로 나올 수 있기를, 잘 웃는 아기이기를.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를. 느려터진 건 아빨 닮아도 좋으니, 기다리는 걸 즐길 줄 아는 아기이기를.
점점 커져가는 엄마 배를 보면서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욕심일지 모르는 엄마아빠 바람을 전하곤 했단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품자가 엄마 뱃속에 온 거를 안 게 벌써 다섯 달인데 품자에게는 그렇게 애틋하게도 살갑게도 못했으니. 아마도 눈앞에서 한참 웃고 노는, 잠시 눈을 뗄 수도, 딴 생각을 하게도 하지 못하는 감자 형아가 있어 그랬을까.
감자 형아를 기다릴 때는 그랬거든. 나이만 잔뜩 먹었지, 엄마아빠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이라 그 기다림이 막막하기만 했어. 이 세상에 없던 목숨 하나가 숨을 쉬는 일. 그 어마어마한 일 앞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건 실감이 없어 불안했고,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게 남아있는 상상 너머의 것들은 도무지 알 수 없기만 하였어.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그 막연한 불안을 씻고 싶어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쉴새없이 얘기를 걸곤 했는지도 모르겠다.
품자에겐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미안해지는 마음, 지금이 처음은 아니. 그때마다 아차 싶은 마음에 앞으론 품자하고도 마음을 기울여 얘기나누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지, 생각하곤 했지만, 한참 지나면 다시 또 그 미안해하는 마음만 되풀이하고 있더라. 아무래도 지금은 감자 형아한테 폭 빠져 있어 그렇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무 것도 없이 뱃속 감자를 기다릴 때랑,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아기감자를 앞에 두고서 뱃속 품자를 기다릴 때랑은 아무래도 같을 수가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품자 얘기를 아주 하지 않는 건 아니. 이따금 감자 형아가 잠들고 난 뒤 엄마랑 아빠 둘이서 품자는 어떤 아가일까 얘기를 하곤 해. 그때마다 엄마아빠가 하는 얘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감자처럼만, 감자를 닮은 아기이기만 하면 좋겠다는 거. 감자 형아처럼 잘 웃는 아가이기를, 보채거나 칭얼대는 거 없이 감자 형아처럼만 잘 놀고 잘 웃고 잘 싸고 잘 자는 그런 아기. 하하, 엄마아빠 바람이 너무 큰 걸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감자를 통해 품자를 본다 여기고 있는 것도 같아. 감자 형아가 웃으면 엄마 뱃속 품자가 웃고 있을 거라, 감자 형아를 포대기로 업어 자장자장 할 때면 엄마 뱃속 품자에게 자장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거라는. 감자 형아와 그림책을 보거나 감자 형아와 짝짝꿍 손뼉으로 놀 때면 엄마 뱃속 품자하고도 함께 그러고 있는 거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은 감자 형아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가까이, 잠시도 쉬지 않고 품자랑 얘기를 나누며 놀아주고 있는 거였네. 어느 책에 보니까 그렇게 써 있었거든. 뱃속에 있는 둘째 아기에겐 엄마아빠가 첫째 아기랑 충분히 교감하며 노는 것 자체가 그대로 전해진다고. 어차피 책에 써 있는 말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니까, 그 말은 믿기로 했어. 하하.
그러니 품자야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품자에게는 형아이지만 감자 형아도 아직 손에 닿는 거면 아무 거라도 입에 집어넣으려 갓난 아기이거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뱃속 품자는 뒷전에 두고 감자만 바라보고 있는 거 같겠지만.
감자 형아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 꼭 한 해. 엄마아빠는 행복했어. 저 멀리에 폭탄 테러가 멈추지 않고, 또 어딘가에선 지진이 일어나 끔찍한 아수라가 벌어지고, 이 바다 저 편에선 아직도 그 깊은 어둠 속에서 건져올리지 못한 슬픔이 지금껏 이어지고, 누군가는 잡혀가고 누군가는 쫓겨나고 누군가는 공장 굴뚝으로 올라가고, 세상 슬픈 일들은 더해가고만 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잡혀간 선배의 탄원서를 쓰다가도 옹알이를 하는 감자 얼굴을 보면 어쩌지 못하고 얼굴이 환해졌고, 낭떨어지 끝에 선 세상이다 싶다가도 아기감자 웃음소리에 그래도 사는 일은 기쁨이었어.
일 년 사이 감자 형아는 참 놀라울만큼 컸고, 또한 아기감자는 엄마아빠를 키우기도 해. 어쩌다 젖먹을 시간을 맞추지 못해 배고프다 자지러지며 우는 아가를 보고 있노라면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던 기아지역 검은 빛 아가들이 떠올라. 얼마나 배가 고플까, 아무 것도 줄 것 없는 그 아가의 어미아비는 얼마나 괴로울까. 감자가 세상에 나온지 한 돌, 그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축하를 받고 있자니, 태어나 일 년을 살아내는 것도 기적같기만 하다는 저 검은 땅 아가들이 모두 또다른 감자인 것만 같아. 그 멀리가 아니더라도 이 바다 어딘가에 아직도 건져 올리지 못한, 빼앗긴 쫓겨난 그 자리에 있을 감자들과 어미아비들.
할머니가 해주신 돌반지는 거기로 보내자.
할머니는 이해해주실 거야. 훗날 감자도 이해하겠지. 네가 받은 사랑은 어느 것도 네가 움켜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받은만큼 나누고, 그보다 몇 곱절로 나눌 때 그거야말로 네 것이 될 수 있음을.
감자로 말미암아 행복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을 다시 배워.
이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품자를 만날 수 있겠구나. 형아는 가을감자였는데, 봄품자가 되어 세상에 나오겠네. 아가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감자 형아 말고도 울림이, 이음이 형아도 만나게 될 거야. 얼마 전에 다녀간 기차길옆공부방의 그 많은 언니형아들이 함께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가까이 멀리에 있는 수많은 큰아빠큰엄마들, 이모삼촌들. 사랑이 흐르는 자리에서 널 기다릴게. 너도 그 사랑을 받아 네 몸을 적셔 더 큰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게.
품자야,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네 속도대로 천천히 그렇게 오렴. (2015.11 글과그림 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