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냉이로그 2016. 2. 28. 03:46

 

 

0. 반가운 손님.

 

 

 다녀가기 훨씬 전부터 제주에 다녀갈 거라는 연락은 있었지만, 전처럼 어떤 준비를 하기 어려웁다는 게 안타까웁기만. 아빠는 휴일이라 해도 현장에 나가게 될지를 예측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엄마는 오늘내일이라도 품자를 낳을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었으니. 사흘을, 나흘을 제주에 다녀간다지만, 어느 날 함께 만나자라던가, 어느 저녁에라도 밥을 함께 먹자, 하는 약속조차도 미리 할 수가 없어.

 

 그 반가운 얼굴들이, 제주엘 다녀간다는데, 감자만이라도 꼭 보고 가려 한다는데, 오면은 연락해요, 정도밖에 어떤 약속도 하질 못했다.

 

 

 

 

 

 1. 동희 형님.

  

 

 

 

  불국사에서 함께 일을 하던, 그 뒤로 정말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동희 형님이 형수님과 함께 제주엘 다녀갔다. 이광복 도편수 팀에서 일을 하던 한옥목수, 몸이 좋질 않아진 뒤로 형님도 문화재보수기술자 준비를 하면서, 수험준비를 할 때 한 교실에서 알게 되었던. 그러나 공부하던 중, 형님은 뇌경색으로 아주 위험하기도 하였고, 몸을 회복하면서 경주 불국사 팀에 들어가 함께 일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기술자 자격을 얻어 불국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형님은 4년 째 여전히 토함산 자락에서 석가탑 공사를 하고 있었어. 그 사이에도 합정에서 그꿈들 원화전시를 하거나, 군포에서 그꿈들 북콘서트, 그리고 부산에서 또 그 콘서트가 있거나 할 때면 일부러 그 멀리까지 찾아와 주곤 하던. 늘 소식을 궁금해했고, 감자를 낳은 뒤로는 감자를 보고싶어했다.

 

 십 몇 년만에 제주에 다녀가는 거라고 그랬던가. 길지 않은 이박삼일, 형수님과 둘이서는 그야말로 특별하고 오붓할 여행일 텐데도, 형님은 감자 얼굴은 꼭 보고가겠다며 아주 잠깐 짬을 내어 감자네 집엘 들러가. 여유롭게 밥 한 끼, 술 한 잔 함께 할 시간을 낼 수 없던 게 얼마나 아쉬웁고 안타까웁던지.

 

 

 

 

 감자는 불국사 큰아빠네 앞에서 그동안 늘어온 온갖 애교에 개인기를 맘껏 선보여.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다들 손뼉을 쳐주지, 저도 기분이 좋아 함께 손뼉을 치고 좋아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면서부터 손뼉을 시작해.

 

 석가탑 해체보수공사는 오년 째 접어들고 있고, 전체해체를 한 뒤에 다시 재조립까지, 이제 거의 모든 공정을 마치고 있다 했다. 공사를 마치면 석가탑 팀은 해산하게 될 거고, 형님도 이제 그만 불국사를 떠나게 되려나 하였는데, 어쩌면 형님은 불국사에 아주 머물게 될지 모른다 했다. 불국사에는 사찰 내 목공일을 맡아보는 할아버지 목수 한 분이 계셨는데, 어쩌면 그 자리를 형님이 이어받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아, 상상하니 형님하고는 너무나도 잘 어울려. 정말로 그렇게 되면 형님은 그야말로 불국사와 함께 살아가게 되겠구나. 스님들 좌탁도 손보아주고, 사찰에 있는 전각들의 문짝이며 마루판 같은 간단히 손볼 수 있는 것들도 돌아보며 손을 보면서, 그 토함산 자락 아름다운 경내에 목수간 하나를 맡아 하면서.

 

 감자야, 이젠 언제든지 경주엘 가면 불국사 큰아빠가 있겠네. 아빠도 잠시 머물며 일을 하던 곳,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철에 가더라도 아름답고 멋스러운 그곳. 나중에 감자가 다 커서 수학여행을 가더라도, 불국사에 가면 큰아빠가 맞아줄 거야 ^ ^

 

 밥 한 끼 같이 못해 아쉬웠다. 고맙고도 좋은 인연.

 

 

 

 

 

2. 래군 형네.

 

 

 

 

 아, 좋다! 지난 여름 난장이공 카페엘 다녀갈 땐 래군 형이 빠진 채 세 식구 얼굴만 있는 사진보며 못내 마음이 아프고 쓸쓸했는데. 이렇게 형이 있어 네 식구가 환하게 웃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난 여름과 가을을 또다시 철장 속에 들어가 지내던 래군이 형. 석방 운동이 한참이었지만, 평택과 용산에 이어,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구속이라, 게다가 공안정국에 가까운 미쳐버린 정부에서, 어쩌면 나오기가 쉽지 않을지 몰라, 하는 걱정스런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옥방 안에 형을 보내고, 두 아이와 함께 내려온 누이. 내내 웃는 얼굴로 그 아픈 속을 감추고만 있던 게, 더 아프고 슬퍼보이던. 석방되고 나면 형이랑 같이 제주도에 올 거라며, 면회가면서 여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형도 꼭 그러자고 했다며, 나오고 나면 그때 감자네 카페에도 가보고 다같이 만나자던.

 

 기쁘게도 형은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옥중 약속처럼 바로 제주엘 내려올 수는 없어. 형이 나온 세상에는 여전히 형이 지켜야할 '곁'들이 있었어.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자리며 유가족들  곁을 시작해, 그리고 이즈음엔 테러방지법을 막아내는 일들까지.

 

 기왕이면 감자네가 난장이공 카페를 정리하기 전에, 내가 일터로 나가기 전에, 달래 몸이 지금만큼 힘들어지기 전에, 그 때 다녀갔으면 좋았겠지만, 해를 넘기면서 소식이 없기에, 아무래도 제주 여행은 무리인가 싶었다.

 

 그러다 연락을 받아.

 

 "기범아, 우리 갈 건데. 지금 할 일들이 너무 많아 가족여행 간다는 게 마음 편친 않지만, 그래도 제주에 며칠 다녀올 건데. 아기도 나올 거 같다 하고, 괜히 우리 챙기느라 신경쓸 것 같아서 가서 연락 안하고 그냥 우리끼리 잘 다니다 갈게."

 

 역시 사정이 어찌될지 모르니 어떤 날, 어느 저녁 시간도 약속을 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래도 오면은 연락은 꼭 하라구. 연락도 없이 그냥 가면은 정말 서운할 거라고. 얼굴 못보더라도 전화는 꼭 하라고.

 

 

  

 

 형은 달래와 감자를 궁금해했지만, 달래는 그 전날부터 몸이 조금씩 더 달라지고 있었어. 아쉽지만, 그래도 얼굴은 보고가자며, 형네 식굴 우리집 가까이로 불렀어. 집 앞 어디에서 저녁밥이라도 먹구 가라고. 서귀포에 숙소가 있다지만, 그러니 제주공항에 내려 렌트카 빌리고 나면 감자네 집 가까이에 들러 가라고. 조금 돌아가는 거긴 하겠지만, 콩밥 먹다나온 형한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주고 싶어. 네 식구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내가 스무 살 때부터였으니 짧지 않은 인연. 그 사이에 저 두 아이가 태어나는 걸 보았고, 그 사이에 한 녀석은 벌써 대학을 졸업해, 또 하나가 3학년에 올라가고 있으니. 물론 그 사이 형이 감옥에 들락거리는 것 또한 수차례.

 

 운전으로 서귀포까지 가야했으니 술 한 잔까지는 차마 하질 못했어. 서둘러 밥 한 끼를 후다닥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주에서 형을 만났네. 형이 빠진 세 식구가 아니라, 형까지 함께 한 네 식구를.

 

 

 

 

 래군 형이 자꾸만 삼촌을 구박해 놀리니까 성아랑 수빈이, 두 아이가 삼촌 편을 들며 아빠한테 웃으며 하던 말. "아유우, 안 변해." "변하질 않아." ㅎㅎ

 

 그래, 그래서 삼촌이 아빨 좋아하나보다. 아빠는 변하질 않으니까,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라서.  

 

 

 

 

 

3. 시와 이모야

 

 

 

 

 지난 달, 난장이공에서 함께한 따뜻한 시도 공연. 그리고 하루를 더, 또 하루를 더. 그때부터 얘기를 했더랬다. 2월 말에 다시 내려올 거라고. 그랬으니, 올라가던 그때부터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때 생각엔 시와 달래가 함께 공연도 보러가고,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선 달래는 어디 멀리엘 다니기가 이미 어려워.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강정낭독회, 시와의 노래 순서가 있기도 했지만, 감자네는 가볼 수가 없어. 실은 감자아빠도 한 달 전 쯤 그 자리에 한 순서를 함께 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나 약속할 수는 없는 일. 이미 품자가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님 막 나오려 할 즈음일 텐데, 달래감자와 함께 강정엘 갈 수도, 그렇다고 달래감자를 집에 두고 혼자서 갈 수도.

 

 아쉬웁지만 낭독회에 참여할 수도, 시와의 무대를 보러 갈 수도 없던. 

 

 

 

 

 감자네가 움직일 수 없으니, 승민 선경과 함께 감자네 집엘 찾아주었다. 엄마는 국수를 삶고 녹두전을 부쳤고, 혹시 목이라도 함께 축일 수 있을까, 막걸리를 꺼내어놓고. 감자네가 이사를 하고 난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난 감자 할머니 얘기를 시와가 오래오래 들어주었다지. 엄마도 참 주책이지, 시와 앞에서 울면서 이 얘기 저 얘길 하더래. 그래서 감자 할머니는 시와를 또렷이 기억했고, 그 때 시와가 두고 간 보온병을 챙기기도 해.

 

 그렇게 하여 감자네 이삿날 뒤로 다시 승민, 선경, 그리고 시와와 함께 감자네 집엘 모였다. 녹두지짐을 부쳐 먹고, 국수를 삶아 먹으며 막걸리도 한 잔씩을.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승민도 이 날은 빨간 얼굴을 보여줘.

 

 거문오름에도 현장이 있어, 선흘에 갈 때면 승민선경네 집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 둘이야 밤샘 작업을 하고 나서 아침을 차리는 시간. 번거로움이 있을 텐데도, 선흘에 가는 길엔 언제나 불러주곤 해. 둘이 대충 먹는 상이 아닌 손님 밥상을 따로 준비한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일터 가까이에 두 사람의 공방이며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

 

 지난 달 난장이공 카페 공연으로 인연을 맺은 선경과 이내, 시와는 그날 공연에서 각자 이름 한 글자 씩을 따서 '내시경'이라는 팀을 짜기도 하였는데, 정말로 올 봄에는 내시경의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하였다. 부산, 김해, 진주에서 나흘 동안 네 번의 공연. '따뜻한 시도'는 그처럼 '새로운 인연'을 낳아.

 

 다음 주에 있을 선경의 들불축제 전야제 공연, 그리고 서천의 계순옥 선생님네 인형극 모임의 초청공연, 벨로주에서 세 번이나 있을 거라던 시와의 단독 공연, 그리고 내시경의 봄 공연들. 아마 감자네는 품자를 낳고서 한 동안은 어느 무대도 보러갈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노래하는 친구들의 공연 소식을 듣는 일은 기쁘고 즐거웠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감자 품자 손을 잡고 이모야들의 공연을 보러 갈 날이 머지않겠지.  

 

  

 

 

 

5. 고마운 인연.

 

 

 기껏해야 차 한 잔이거나 밥 한 끼, 어수선한 채로 막걸리 한 잔씩 밖엘 하지 못했네. 더 오붓하고 깊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이렇게 돌아보려니, 그만큼으로도 기쁘고 고마웠다.

 

 문득 이렇게 '인연'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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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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