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0223

냉이로그 2016. 2. 24. 21:15

 

  

 중문 쪽으로 일을 다니다 보니 평화로를 타고 넘어가다 보면 늘 강정이 어른거린다. 게다가 자재 조달을 위해 서귀포 건축 현장들을 넘나들다 보면 강정마을 이정표 아래를 그대로 지나치기도 해. 마음으로야 벌써 몇 번이나 좌회전을 받아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차에 모래를 싣고, 드라이비트 빈통들을 싣고, 삽과 빠루, 함마를 싣고, 드릴비트와 앙카를 챙겨 현장으로 가는 길에,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속을 푹푹 끓게만 하는 골아픈 하자보수 현장.

 

 오늘은 마침 네비에 '강정동'을 찍고 갈 일이 있었어. 내가 속한 회사는 문화재수리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거야 왠지 곁다리에 두고 있는 것 같고, 대형 건축과 토목이 중심인 곳인데, 강정동에도 호텔을 짓는 현장 하나가 시작되어. 그 현장으로 짜투리 자재를 얻으러 가는 길.

 

 실은 엊그제 승민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내일 강정에 갈 거라고, 26일 해군기지 준공식을 앞두고, 마을에서 지킴이 친구들과 걸개천막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부러, 강정동으로 자재를 조달하러 가는 걸, 어제 날짜로 맞추고 일부러 그렇게 움직였던 거. 지나는 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네비에 찍을 주소가 강정동이니, 그 길에라도 마을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모기장을 커다랗게 이어붙이고, 그 위에 글씨 모양 천을 바느질해서 만든 걸개천막. 모기장을 이용해서 걸개를 만드는 건 처음 보았는데, 아주 기발했다. 게다가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야, 걸개가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구멍숭숭 모기장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심하게 펄럭일 일도 없어. (승민선경에게 들으니 그렇게 모기장 걸개를 처음 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지.)

 

 아, 그런데 어젠 승민선경을 만나진 못했다. 걸개 만들 준비가 덜 되어 다음 날로 하루를 미루게 되었다면서. 강정에 가는 길에 친구 얼굴도 보려 했던 건데, 그러진 못했네.

 

 

 

 그대신 아주 깜짝 놀랄 만남이 있었다. 평화센터 방향으로 길을 건너려는데, 누군가 저기요, 하며 부르는 거라. 조그만 눈, 더 조그맣게 감으며 웃는 그 얼굴, 그런데 나는 바로 생각이 나질 않아, 십 초도 더 넘게 멍하고만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다가 터져나온 소리, "타잔! 타잔이다!"

 

 이천칠년 십이월, 그리고 이천팔년 일월. 유조선이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온통 시커멓게 되어버린 태안 바다. 거기에서 기름닦는 일을 하며 지낼 때 만나 함께 지내던. 그 때 인연을 맺은 다른 후배들은 더러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난장이공 카페를 찾아오기도 하고 그랬지만, 타잔만큼은 연락이 닿질 않고 있었다. 다들, 타잔은 어떻게 지내지? 타잔 누나하고는 연락돼요? 하고 묻기만 하였는데, 그 타잔을 강정에서 만나게 되다니.

 

 당시 타잔은 그 조그만 몸, 방제복이 나풀거릴 정도로 꼬꼬마였지만, 누구보다 거침없이 일을 쳐나가는 야생마 같았다. 나중에는 환경운동연합에서 타잔을 찾아 방제 전략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강정에서 만난 걸 신기해하였더니, 타잔은 오히려 그런다. 아마 만나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이런 데 다니다보면 거기에 아저씨도 있을 거 같아서.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려 평화센터 사무실 딸기를 찾아갔는데, 아마 그 시간 즈음엔 신부님이 방에서 눈을 붙여 쉬고 계실 것 같다던가. 그래서 그냥 딸기와 마주앉아 마을 이야기며, 해군기지 움직임, 신부님 안부 등 이런저런 얘길 듣고 나오는 길. 다시 타잔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꼼지락 공방의 들꽃님이 콘테이너 안으로 차를 내어주었다. 몇 차례 공사장 정문 미사 때 본 기억은 있지만, 얘기를 나누기는 처음. 실은 타잔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가 궁금하고,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리 들어간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그 콘테이너 안에서 두어 시간을.

 

 

 

 그러다보니 평화센터 앞으로 지킴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걸개천막을 만드는 건 내일로 미루었다지만, 그거 말고도 더 만들어야 할 펼침막들이 있는 모양. 다후다 천이 들어왔고, 페인트와 신나가 들어왔고, 박음질을 할 미싱을 책상 한 켠에 올렸다. 그러면서 승민선경을 통해 인사를 나누던 개똥, 반디 같은 강정 친구들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못뵙고 가겠구나 싶던 신부님께도 인사를 드려.

 

 

 

 

 강정 해군기지는 이번 주 금요일 준공. 마을에서는 이 날 저녁부터 다시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열면서, 준공식이 열리는 그날은 부대 정문 앞에서 '생명평화마을 선포식'을 준비하고 있어. 페인트에 붓을 적셔 펼침막을 준비하는 강정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에 잠겨들다, 몇 번이고 과속단속기를 피하질 못했던 것 같아.

 

 강정은 외롭고, 평화는 아프다. 그런데 나는 겨우 이렇게 쓸쓸하고 애잔한 풍경으로나 강정을 보고만 있는 건가, 싶은. 그렇다고 당장 무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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