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0226

냉이로그 2016. 2. 27. 06:47

 

  

 점심을 거르고서 중문에서 강정으로 넘어가. 내가 닿았을 무렵엔 미사를 마치고, 생명평화마을 선포 기자회견을 하기 전 앞풀이를 하던 시간. 저들은 기어이 공룡같은 전쟁기지를 완성시켜 놓았고, 자랑차게 준공 테이프를 끊으려 하고 있어.

 

 

 

 

 구럼비 바위가 살아있을 때부터, 공사장 펜스에 바다가 가로막히지 않았을 때부터 온몸을 던져오고 있는, 신부님과 평화바람 식구들, 평화지킴이 강정친구들, 그리고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그곳에서 농사짓고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온 마을 분들이 정문 앞을 지키고 있어.

 

 이게 끝인 걸까, 아님 시작인 걸까. 평화바람 두희 샘을 끌어안으며 그 마음이 어떻겠는지, 허튼 물음을 던졌더니, 끝이 어디에 있고, 시작이 어디에 있냐며, 끝도 시작도 아니라 웃음에 실어 대답을 해.

 

 끝도 시작도 없다는 말, 그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풍물 길놀이, 굿거리와 삼채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지킴이들, 마을 분들을 보는데 왜 그리도 마음이 저리던지. 신부님의 얼굴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강정에 올 때마다 눈인사를 나누던 그이들과는 어떤 말로 인사를 건네어야 할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모두 한 덩이 눈물방울들 같았다. 수염많은 눈물방울, 머리묶은 눈물방울, 키작은 눈물방울, 얼굴 시커먼 눈물방울, 드러눕는 눈물방울, 매달리는 눈물방울, 소리치는 눈물방울, 그 눈물방울들.

 

 

 

 

 점심시간에라도 가 있어야지 하고 찾아간 자리에서 세 시가 되어서야 일터로 돌아나왔다. 차마 걸음이 떼어지질 않았어. 아직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경찰들에 지킴이 들이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그저 그 자리를 돌아나오며 우리가 지났던 길을 되밟았다. 

 

 저 발자국들. 준공을 앞둔 군기지 앞으로 평화의 발자국이라며 찍어놓은 저 걸음들이, 내게는 어떤 지신밟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을 짓고 나면 땅신에게 보살펴 달라 지신을 밟는 그것, 저 자리에도 전쟁기지라는 어마어마한 새 집을 지었으니, 그 앞을 군홧발들이 밟고 지나기 전에,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먼저 지신을 밟는. 

 

 누구도 이게 끝이라 말하지 않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그 말을, 그래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견고하게 쌓아올린 저들의 성이라 해도, 천년만년 갈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억지로라도 믿고 싶기 때문이다. 끝내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우주의 질서, 생명의 질서를 따라, 구럼비도 할망물도, 강정과 강정 그 너머의 평화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그러나 오늘,  강정은 외로웠고,  평화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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