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냉이로그 2016. 3. 4. 06:52

  

 저녁에 일찍 곯아떨어지니 새벽에는 서너 시부터 눈이 뜨여,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오늘 해야 할 현장 작업들, 만나야 할 사람들, 연락해야 할 곳들, 감독부서의 지시사항, 본사에 제출해야 할 보고, 챙겨야 할 잡자재들. 혹시라도 빠뜨리고 가는 게 있을까 걱정이 앞서고, 만나거나 연락하거나 제출해야 할 그것들을 가지고 또 어떤 문제들이 어렵게 할지 예상을 하면서, 두세 시간 뒤척이는 게 기본. 조금이라도 눈을 더 붙여야지, 하면서도, 그 생각으로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는 못한 채 걱정에 걱정으로 뒤척거리기만.

 

 그러다보니 새벽에 깨어 홀로 있는 시간들이 종종 있다.  

    

  

 <<꽃은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창비

    

 큰이모가 보내어준. 그동안 써온 산문들을 모아낸,  '책'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것만 같은 삼십 년의 시간. 이모삼촌들이 살아온, 아이들이 자라온, 공부방이 밟아온, 공동체가 쌓아온, 눈물겨운 삶으로 이뤄온 한 세계의 이야기. 

 

 살아온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지표가 되고, 버팀이 되고, 위로가 되고, 어루만져주는 그런 책들이 있다. 새벽에 한 편씩을 읽고 있어.

   

 

 감자 녀석이 웃긴다. 그림책이 아니면은, 글자만 가득 있는 어른 책들은 아예 거들떠도 보질 않았는데, 이모야 책은 손에서 놓지를 않고 자꾸만 펼쳐보고 그러네. 날개에 있는 이모야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가, 책 맨 뒤에 있는 공부방 언니형아들 사진을 하나하나 찾아보다가. 엄마아빠가 계속 손에 들었다놓았다 하니까 그래서 더 궁금해져 그러는지.

 

  

 

 그래, 맞아. 감자야. 이거 공부방 큰이모가 쓴 책. 사진들은 새끼개 삼촌이 찍은 거.

   

<<어떤 동네>> 유동훈, 낮은산  

 

 이모의 책을 보면서 동훈 삼촌의 사진에세이를 다시 꺼내었다. 나란히 있어서 더 좋은. 이모가 쓴, 삼촌이 찍은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는 삶.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키며 내 것을 건사하는 것만이 생존의 법칙인 양, 탐욕으로만 질주하는 이 숨막히는 세상에, 그와 같은 삶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 나누고 또 나누어 더 나눌 것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그 오래된 미래가 단지 꿈이 아니라는 걸 당신들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다가 그 가난의 삶이, 행복의 욕망을 억누르는 금욕이나 절제, 헌신, 희생의 그것이 아니라 그 어떤 삶보다 따뜻하고 행복하다는 걸 보여준다. 힘겨움과 아픔에 날마다 부딪히고 있지만, 그걸 끌어안고 넘어서는 날들에 따사롭고 눈물겨운 감동이 이어지고 있음을. 그러니 달래도 한 번씩 얘기하곤 했더랬다.

 

 이모삼촌들 곁에, 공부방 아이들 속에 살면 참 좋겠다.

 

 활동에 가까운 신념 따위이거나 당위에 가까운 가치만으로는 결코 달래에게서 나오지 않을 말. 그 삶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알기에, 행복을 쫓고싶은 자연스런 바람. 

   

 

 감자야, 공부방 이모들 기억나지? 감자 돌잔치 해주러 인천에서 강화에서 잔뜩 내려왔던 이모야들. 

 

 

 그리고 그때 만난 친구들, 형아들. 겨울에 하룻밤 자러 갔을 때 만난 누나들도 모두.

 

 

 아참, 요사이 다음 싸이트엘 보면 스토리펀딩인가 하는 곳에 가끔 공부방 소식이 올라오고 있더라. 반가워서 들여다보니 솔비, 연수, 단비 셋이서 쓰고 있는가봐.

 

 외로울 틈이 없다 '기찻길옆작은학교'

 

  

감자는 책 맨 뒤에 있는 공부방 형아, 누나야들 사진을 꼼꼼히,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있어.  

 

 

아, 그리고 이건,

   

 

 연말에 감자네 식구가 인천에 올라가 하룻밤을 자고 내려온 뒤에, 동훈 삼촌이 만들어 보내어준 거. 그날 아침 삼촌이 찍었던 사진을 나무판에 입혀. 이걸 받아들곤 얼마나 놀라하며 기뻐했던지.

 

 감자야, 감자도 그 동네에 살아라, 감자더러 그 오래된 미래를 살아라, 하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하준예준이하고는 오랜 친구로, 그리고 형아누나들하고도 가까이, 이모삼촌들이랑 자주 만나며 그렇게 지내자. 엄마아빠가 그럴 거니까, 감자도 품자도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다가 언젠가 감자도 큰이모가 쓴 책이랑 새끼개 삼촌이 만든 사진책이랑 하나씩 읽어봐. 그땐 아마 엄마아빠보다 더 마음이 찡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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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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