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감자로그 2016. 1. 1. 23:51

 

 

 이천십오년의 맨 끝날, 그리고 이천십육년의 맨 첫날. 게다가 이어지는 주말까지 있으니 새해 연휴를 맞아 제주의 분위기는 제법 성수기. 장사하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될 건데, 그래도 그 두날은 문을 닫기로. 열흘 넘어 보름 가까이, 좀처럼 낫지가 않는 몸이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맨 끝날과 맨 첫날 만큼은 온전히 식구들과 함께 내 것으로 보내고 싶어.

 

 

 

 

 

1. 이천십오년의 맨 끝날

 

 이날은 엄마의 생신이기도 해. 지난 번 천안 북콘서트를 하러 뭍에 갔다가 모시고 왔으니, 내려오신지가 벌써 한 달이 넘고 있었네. 엄마 덕에 나는 부엌떼기 신세를 면해, 아침에도 늦잠이 늘었고 게을러졌다.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된다니까. 아프지 않은 곳 없다는 엄마를 실컷 부려먹고 있어 ㅜㅜ (하지 말라고 그래도 하시는 걸 어떡하라구, 막 이러면서 ㅋ) 결국 엄마 생신의 아침 미역국도 엄마가 끓이게 했네 ㅠㅠ

 

 

 

 점심은 할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랬지만, 결국 감자네 식구가 간 곳은 일주도로 변에 있는 짜장면 집. 워낙에 외식을 즐기지 않으시기도 하거니와 어쩌다 무슨 날이면 먹고 싶어하시는 메뉴가 제주에는 없는 거라.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하시기에, 애써 맛집 요릿집을 찾지 않고 그냥 중국집을 찾아나섰네. 할머니는 짜장면, 아빠는 매운 짬뽕, 엄마는 안매운 짬뽕, 그리고 탕슉. 하하하, 물론 감자야 할머니가 만들어준 이유식을 보온도시락에 담아서.

 

 감자는 차 안에서부터 잠이 들더니 할머니랑 엄마아빠 짜장짬뽕 다 먹을 때까지 곤하게 잠을 자네. 어른들 편하게 밥먹으라고 시간 맞춰 잠들어주는 기특한 센스 ㅎ 잠에서 깬 감자는 이유식을 몇 숟갈 먹더니 바닥에 내려달라네. 요즘에는 아무 데라도 자꾸만 내려달래. 자꾸만 걷고 싶은가봐.

 

 

 촛불 끄기는 집에 돌아와서. 아가들은 케잌에 촛불만 보면 불고 싶어서 좋아한다더만, 아직 감자는 그게 몬지를 몰라, 그래도 엄마아빠 따라서 손뼉을 짝짜꿍, 생일축하합니다, 할머니의 생일축하합니다 ♪

 

 

 감자의 할머니 생일축하 쎄레모니 ㅎ 아직 뽑뽀도 할 줄은 모르고, 할머니랑 축하 박치기 꽁! ㅎㅎㅎ

 

 

 기분좋을 때 나오는 감자의 깍쟁이 얼굴 ㅋ

 

 

 부러 얄미운 체를 하듯이, 입술을 꼭 다물고 턱을 올린 채, 얼굴 너머로 눈을 내려보듯 하는 ㅎ

 

 

 그렇게 감자네 집의 이천십오년 맨 끝날 밤은 저물었다. 아홉 시 조금 넘어 불을 끄고 이부자리로 들어가 누웠던가. 그렇게 이부자리에서 감자가 잠들 때까지 뒹굴뒹굴 하다가 재야의 종이 다 무어냐, 일찌감치 잠에 들어. 고마워, 감자야, 고마워, 달래야 하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그렇게 감자와 함께 한 2015년.

 

 

 

 

2. 이천십육년의 맨 첫날.

 

 이처럼 몸이 힘들지만 않았으면, 이런 날은 혼자라도 한라에 올라갔을 텐데, 셋 다 늦잠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나고 보니 집 안에 떡국 냄새. 생일 미역국도 할머니가 끓이게, 새해 떡국도 할머니가 끓이게, 하하하 맛있게 먹어드리는 게 더 중요한 거다, 하면서, 그냥 잘먹겠습니다! 하는 거 ㅎ

 

 그래도 이건 쫌 심했나? 설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인데 절은 드려야지, 아빠는 히트텍 내복에 츄리닝 바람에, 엄마는 수면바지 차림에, 감자야 모 당근 내복바람으로 세 식구 할머니께 절을 드려. 감자야, 이렇게, 감자도 이렇게, 할머니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옳지, 그렇게!!

 

 

 

 아직은 절하는 걸 따라할 정도는 되질 못해. 하지만 감자가 할 줄 아는 개인기 하나는, 탁탁탁 두드리며 쓰다듬는 거. 요즘 골골대는 아빠가 맨날 감자한테 그걸 시켰거든. 감자야, 아빠 아파. 아빠 아프지 마세요, 하고 두드려줘. 아빠 예쁘다 하고 쓰다듬어줘.

 

 그래서 그걸 감자한테,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해드리라고 시켰더니 알아듣곤 할머니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다간 쓰다듬기를 하네. 배는 뽈록 나와가지구 ㅋㅋ

 

 

 감자도 떡국 국물에 밥을 먹었으니, 벌써 세 살이 되어. 열여섯 달짜리가 벌써 세 살이라니 ^ ^

 

 

 감자는 세 살도 되었고, 또 형아도 되겠네. 두 달 있으면 동생 품자가 나올 거.

 

 

 지금처럼 잘 웃기만 해주면 그거면 된단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올 한 해도 힘껏 살아보자, 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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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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