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감기

감자로그 2015. 12. 20. 19:57

 

 

 사흘밤 사흘낮을 앓았다. 이렇게 감자가 아파보기는 처음. 그렇게 애가 아프고 괴로워하는데 두고만 보고 있다니, 참 대단도 하다 얘기를 들었지만, 속은 속이 아니었다.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한 차례씩 걸리고 지난다는 감기였지만, 아기가 아파 밤새 잠을 못이루고 얼굴에 피가 몰려 울어대던 시간은 보고 있기가 힘들어. 잠을 못자 눈이 감겨들었지만, 코가 막히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했고, 그전에 약하게 다녀간 감기랑은 달리 걱걱 가래가 가득, 기침조차 시원하게 하지 못한 채 죽겠다고 울어대었다. 다행히 침을 놓아 열은 떨어뜨렸지만, 가래가 꽉 막은 가슴에선 기침마저 힘겨웠고, 힘이 들어 울어댈수록 목구멍은 뻘겋게 부어, 그렇게나 아무거나 잘 먹던 먹보가 보리차조차 넘기기를 괴로워했다. 잠을 자지 못했고, 먹지를 못했고, 기침이 시작하면 피가 얼굴로 거꾸로 쏠리듯. 그렇게 사흘 밤을.

 

 

 

 소아한방을 한의원에 두 차례 쫓아갔지만, 열만 겨우 잡았을 뿐 가래로 꽉 메인 감자의 기침은 좀처럼 나을 줄을 몰랐다. 게다가 하필이면 아프던 그 사흘 가운데 이틀이 제주에는 흔치 않은 굵은 눈까지 내려. 한의원에 나가다 보면 어쩔 수없이 다시 찬바람을 맞혀야 했고, 그때문에 더 낫지를 않는가 싶지만, 지난 밤을 생각하면 그조차 하지 않을 수가 없던.

 

 "아현이네 아이는 병원에서 주는 시럽을 먹이니까 뚝 떨어졌다는데……."

 

 달래도 병원에 가보자는 말을 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아기키우는 동생 얘기를 전하며 말끝을 흐렸다. 사흘 째 되던 밤, 감자는 여전히 그렁그렁 가래기침에 밤새 괴로워했고, 어쩌지 못하고 몸을 뒤집으며 울어대대는 감자를 안고 달래 역시 함께 울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 아마도 내가 지금 그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쥐뿔도 없이, 한의학이니 민간의학이니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그저 들은 풍월로만 병원 발걸음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던 건 아닌가 싶은.

 

 "그래, 내일은 병원에 한 번 가보자. 항생제 안 쓰고 처방하는 데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토막잠으로 새벽을 겨우 보내고 일어난 아침, 잘 주무셨느냐고 어머니께 아침 인사를 건네니 그러시네. 어떻게 편히 잘 수 있었겠냐면서. 지슬이 우는 소리, 기침 소리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안타까워 겨우 눈만 붙였다시며.

 

 "너희가 너희 방식대로 병원 안 다니고 애기 키운다니까 얘기하고 싶어도 못하고 그랬는데, 병원 한 번만 다녀와라. 병원 한 번 가면 금방 뚝 떨어뜨릴 거 가지고, 애기 생고생시키는 거 아니니."

 

 엄마도 그간 하고싶어도 못하고, 아끼기만 하던 말을 조심스레 꺼내어. 

 

 병원에 다녀왔다. 들이네 집에 물었더니 항생제 잘 쓰지 않고, 부모 얘기 잘 들어준다는 소아과가 있다 하여 거기엘 찾아가. 항생제도, 해열제도 쓰지는 말아달라며, 몇 가지 당부를 한 뒤에 처방해주는 시럽을 받아와. 기관지에 꽉 달라붙어 있는 가래를 떨어뜨리는 데 도움을 주는 약이라던가. 그렇게 해서 가래를 배출해내면 기침이 편안해지고, 좋아질 수 있을 거라며.

 

 집에 돌아와 감자에게 시럽을 먹이니 달달한 딸기향 때문인지 잘 받아먹기는 했는데, 먹자마자 허연 덩어리를 그대로 토해내. 약이 잘 맞질 않아 그런가? 그런데 조금 지나 알게 된 건 그게 바로 가래 덩어리더라는 거. 그렇게 감자는 그날 밤에, 새벽에, 다음 날에 몇 번을 더 뭉실뭉실한 허연 덩어리를 토해내거나 기침으로 뱉어내어.

 

 

 

 그러고는 감자가 살아났다. 숨소리에 가래 긁는 그것도 이젠 없어. 아프기 전 그만큼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이젠 방긋방긋 웃어 까불기를 다시 시작해. 사흘 너머나 감자 웃는 걸 보지 못하니 아빤 아주 금단 현상이 이는 것도 같았는데, 웃는 거 한 방에 휴우, 이제 살았다 싶은. 

 

 그렇게 이렇게 사흘만에 아빠 일하는 카페에도 다시 나와보았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김미자 샘네 가족 품에도 돌아가며 안겨 보고. 이 누나야는 아빠를 삼촌이라 부르는, 6학년 꼬맹이일 때 만난 유정이 누나야인데, 어느 새 스물다섯 아가씨가 되어 이렇게 감자를 잘 안아주고 있지 모야.

 

 

 

 그리고 그 저녁에는 사흘 째 감자를 기다리고 있던 알모 아줌마들이 읽어주는 <<강냉이>> 그림책을 감자도 보며 좋아해. 감자네 카페 옆에 펜션을 잡아놓고는, 사흘 아침을 난장이공 카페에 나와 아침밥을 먹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저녁이면 다시 난장이공에 들러 차를 마시다 들어가던 일산의 알모 책방 아줌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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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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