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 란

냉이로그 2015. 10. 14. 00:28

 

 

 잘 닿았나 보다. 벌써 열흘 가까이나 되었네.

 

 요르단, 이라크 어느덧 아득해져버린 그 먼 땅에서의 시간. 그곳에서 돌아나오면서 우리는 저마다, 그걸 입밖으로 얘기하건 아님 마음 한 구석에 여미기만 했건, 언젠가 그곳을 다시 돌아가고파 했다. 십 년 쯤 지나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그 먼 기억을 어떤 식으로 대면하게 될까. 그때 눈물을 함께 흘리던 그 얼굴들을 다시 볼 수는 있을까, 감당하기 어렵던 그 순간의 기억들, 그 거리와 풍경들.

 

 그리고 나서 란은 십 년을 준비했다. 아랍어 모임을 꾸려 그것의 말과 글을 더듬더듬 익혔고, 기회가 닿는대로 이슬람 모스크에서 여는 아랍어 강좌에 나갔고, 그 사이에도 팔레스타인을 다녀오면서 그곳의 문화며 사회에 대한 공부와 활동을 놓지 않아.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이 올 가을이었다. 기어이 가는구나. 누구처럼 막연한 바람이나 그리움으로 마음에 품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녀석은 그 긴 시간을 놓지 않았고, 거북이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간절히 바랐던 꿈과 그리움을 삶으로 옮겨내어.

 

 녀석이 출국한지 벌써 열흘 가까이. 잘 닿았으려나 걱정이 되곤 했는데, 다행히 카톡이라는 게 있어 소식을 들을 수는 있구나. 녀석이 보내준 거기 사진들.

 

 

 요르단, 모랫빛의 저 건물들.

 

 그래, 우리가 함께 거닐었던 그 시장.

 

 녀석이 묵기로 한 숙소 옥상에서 찍었다는. (옥상에 올라가면 담배를 피울 수 있어 좋다며 완전 신나하며 자랑하던.)

 

 

 잘 갔다니 다행이야. 나는 그 간절한 바람을 실현하는 네가 부럽고 좋아서, 내 나름의 지지와 응원, 축복의 얘기를 한다는 거였는데, 그게 그만 어떤 걱정이나 충고 같은 얘기가 되고 말았나 보다. 어느덧 나도 꼰대가 되어버렸을까, 아님 아직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나도 모른 사이 꼰대스런 물이 들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렇담 인정해야지 모. 꼰대처럼 굴면서 지는 꼰대가 아니다, 우기는 거야말로 꼰대의 끝판왕일 테니. 적어도 내가 꼰대스러워졌다는 걸 인정해야, 최소한 그 꼰대다움에 대한 경계나 긴장이라도 할 수 있겠지 ㅜㅜ

 

 

 출국 전에 제주에 들러, 금능 해변에서. 

 

 

  잘 갔구나, 혜란아.

  너는 참 멋지다.

  정말 그렇다.

 

  니가 부러워.

  나도 가고 싶거든. 

  거기 있는 시간 동안 하고 싶던 거, 보고 싶던 거

  충분히 마음껏 하고 돌아오렴.

 

  건강하게.

 

 

 

 

 

 

 

 

 여긴 제주도라 그런지, 고개 젖혀 하늘만 보면 비행기가 날아가.

 녀석은 잘 갔을까, 어리숙 힘들어하진 않을까,

 나란히 담배를 피우고 쭈그려 앉던 그 맥도널드 앞 계단엔 가 보았을까.

 

 비행기만 보면 궁금해지네.

 잘 지내고 있으려는지.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정 하룻밤  (2) 2015.11.03
래군 형 카톡  (3) 2015.10.31
품자오름  (0) 2015.10.01
팽목, 십자가  (0) 2015.09.09
기차길편지  (0) 2015.09.07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