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 십자가

냉이로그 2015. 9. 9. 19:54

 

 

0. 돌덩이.

 

 

 며칠 전 피네 아저씨 블로그에 노랗게 칠한 돌, 거기에 붓으로 쓴 간절한 글귀가 올라 있었어. 

 

 

 짧은 두 문장의 그 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그러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 세월호가 바다에 잠겨들고 그 뒤로 오백 일이 넘는 시간을 온 마음으로 겪어내며 몸에 남은 말. 여리고 나직한 목소리이지만 그 어떤 말보다 단단하고 울림이 큰.

 

 그야말로 돌덩이처럼 가슴을 쿵, 내려치는 것만 같아. 한 글자, 한 글자 돌에 새기듯 붓으로 쓴 저 눈물겨운 고백이자 당당한 선언.

 

   

 

 병수 아저씨에게 연락을 받았다지. 팽목항에 설치한 십자가 아래로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 돌을 보내어 부활의 돌무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1. 십자가.

 

 

 지난 팔월 초, 정의구현사제단의 제안으로 병수 아저씨는 팽목에 삼미터 높이 슬픔의 십자가를 세워. 바닷속에 잠겨있던 희생자들을 하나둘 찾아 건져올릴 때마다 맨 처음 뭍에 눕히곤 하던 그 자리.  

 

 

 

 

 

2.  돌무지.

 

 

 팽목항 십자가 아래로는 세월호를 아파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망을 담은 돌덩이로 돌무지를 만들어가고 있어. 거기에는 아직 수심 삼십사 미터 아래에서 찾지 못하고 있는 아홉 목숨을 부르는 돌이 먼저 놓였고, 그 곁으로 그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들이 하나둘.

 

 피네 아저씨의 저 노란 돌 또한 병수 아저씨 연락을 받고 보낸 그것. 돌에 쓰거나 그린 마음 한 조각은 팽목식당으로 보내면 된다고 한다. 받을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 가족식당'.

 

 감자야 그리고 품자야, 우리도 엄마랑 아빠랑 같이 저 십자가 아래 돌무지를 이룰 돌멩이를 준비하자. 그때 감자랑 함께 기억의 벽 타일을 그려보낸 것처럼, 이번에는 돌멩이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저 바다에 잠겨든 언니들이 왜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 저 바다 깊은 곳, 거기가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의 골고다.

 

 




3. 솟대들.

 

 

 팽목항 십자가 작업을 하고 있는 병수 아저씨 소식이 궁금해 아저씨의 그림방엘 들어가.

 

 

  아저씨는 그동안에도 십자가 뿐 아니라 철판을 오리고 구부리고 용접봉에 불을 당겨 묵묵히 솟대들을 세워놓고 있었다.

 

 

 촛불을,

 

 

 조각배를,

 

 

 

 노란 리본을,

 

 

 그리운 편지를.

 

 

 그리고 철판을 오려내어 만든 세월호라는 필터. 

 

 

 

 "나는 나의 슬픔을 믿어요.

 돈이나 권력 따위 믿지 않아요." _ 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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