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

냉이로그 2014. 7. 20. 20:49


            
 엘의 만행은 도를 넘고 있고, 우리는 무력했다. 말랴와 나는 애월 한담에 섰다가 금악에 있는 금오름에 올라보기로 했다. 장마가 지나간 제주는 오랜만에 하늘이 파랬고, 파란 하늘만큼이나 바다가 예쁘게 빛났다. 나는 한림 일대를 제대로 다녀본 일이 없어서 금악에 가기 전, 협재며 금능 바다에 먼저 들려줄 것을 부탁했고, 말랴는 길을 돌아 바닷가를 들러주었다.
 
 우리는 간간히 저 멀리 팔의 땅과 엘의 만행을 이야기했다. 만행은 도를 넘어. 아니, 도를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 심지어는 팔의 엄마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어차피 그 아이들은 자라나 테러리스트가 될 테니,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그래야 한다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소리까지, 그 나라의 의원이라는 자가 공공연하게 해대고 있는.

 이 별 위에서 두 발 딛고 사는 짐승들은 정녕 다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걸까. 슬픔도, 분노도, 부끄러움도, 최소한의 가슴저림도. 그리하여 이 별은 정녕 지옥이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어쩌면 팔에서 스러져가는 이들은 엘의 미사일보다, 그 만행을 그저 보고만 있는 국제사회가 더욱 원망스러울지도 몰라. 다들 어디에 있느냐고, 왜 다들 보고만 있느냐고. 




 
 저 바닷길에서 배가 가라앉았어도, 이 별의 어느 한 구석에서 밤낮없이 폭격이 쏟아지고 있어도, 우리는 무력했다. 그러나 무력하다는 말은, 어쩌면 핑계삼기에나 좋은 가장 만만한 말인지도 몰라.   

 



 스타벅스, 코크와 펩시, 맥도널드와 던킨, 리바이스와 캘빈클라인…… 엘의 미사일에 자금줄이 되어주는 자본들. 무력한 우리가 할 수 없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 오히려 자신도 모른 채 그 미사일과 한 패가 되어버리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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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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