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

냉이로그 2014. 6. 12. 21:11

 



 그 삼다말고 다른 삼다. 육지에서는 보기 어렵던, 이 섬에서는 너무도 흔하게 만나곤 하는 짐승들. 말과 노루, 그리고 까마귀.   


 

 새미소라는 새벽 호수를 보러 갔던 이시돌 목장에서 만난, 말들.  


 말이야말로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웁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는. 처음에는 그 낯설음에 신기해 눈이 번쩍 뜨이곤 했지만 점점 이 아이들을 가둬둔 곳 앞에서는 크게 가슴이 뛰지 않는다. 아무리 저렇게 넓은 풀밭에 풀어놓고 있다 해도 야생의 것이 아니기에 그런 걸까. 물론 숨죽여 그 아이들 가까이 가면, 안 보는듯 곁눈질로 겁을 내어 눈치를 보는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슬프고도 멋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만남이 아닐 바에야 가둬진 저 아이들과 구경하는 나 사이에는 너무도 분명한 목책이 가로놓여 있어. 하물며 장사치들에게 고삐를 붙들려 오천 원씩 돈을 받아 등에 태우고 돌기만을 하는 그 아이들임에야. 암튼 이 섬에서 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아주 예사로운 일이다. 조선시대였다던가, 그 때 이 섬 전체로 둘러 쌓았다던 잣성들. 해발 백오십에서 이백오십 되는 곳으로 해서 섬을 빙 둘러 쌓은 겹담. 그리고 훗날에는 해발 사백오십에서 육백 사이에 다시 돌담을 쌓아, 아래는 하잣, 위에는 상잣이라 하여 말들을 키웠다던데. 해안가를 빙 둘러 쌓은 환해장성이라는 건, 남아있는 흔적을 더러 보곤 했지만은, 아직 잣성은 눈으로 보질 못했다. 아주 다 없어지지는 않아 지금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는데, 오히려 그 잣성이라는 걸 보면서 이 애들이 뛰놀던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다면 더욱 가슴이 설렐 것 같아.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오르고 내려오던 길에 만난, 노루.  


 노루. 제주 중산간은 노루들의 천국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이리로 내려오기 전 우연히 보게 된 케이비에스 스페설이던가,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노루 개체수가 너무 많아 농민들에게 포획과 사냥까지 허락을 하게 된 사정을 보여주기까지 하여 놀랐더랬는데. 이 섬에서는 인적 드문 산길에서 뿐 아니라, 밤길 자동차가 질주하는 곳에서도 드물지 않게 모습을 보이곤 했다. 고요한 숲에서 만나게 될 때는 더할 나위없이 설레곤 하지만, 질주하는 자동차 길에 나타나곤 할 때는 조마조마해지는. 그게 어디 노루들의 잘못일까. 그 아이들이 뛰노는 산간마저 가만두지 못하고 후벼파듯 길을 내고 점령해들어가는 침입자들. 이 별 어느 구석도 인간만을 위한 땅은 없을진대, 인간들은 당연하게도 이 별이 통째로 인간만을 위한 곳인 양, 인간들의 것인 양 해오고 있었어. 땅 문서라는 것만 해도 그래, 개발 허가라는 것만 해도 그래, 그런 거야 인간들끼리의 약속이고 계약일 뿐. 언제 한 번 그 땅에서 살고 있던 노루다람쥐까마귀뱀과개구리들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지, 그 곳에 목숨을 붙이고 사는 더 많은 주인들에게 허락을 받은 일이 있는지.



 영실코스로 한라산에 올라 윗세오름과 남벽분기점까지 다녀오던 길, 절벽 바위와 오백장군 바위 앞에서 만난 까마귀. 


 까마귀는 또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되는지 몰라. 육지에서도 까마귀떼가 날아오르는 장관을 종종 보기는 했었지만, 이 섬에서는 숲으로 드는 길에는 어김없이 까마귀를 쉴 새 없이 만난다. 이 녀석들 먹성은 얼마나 좋은지. 영실 산간의 존자암에서 번와공사를 하면서, 일을 하다가 밥먹으러 나올 수가 없으니 매번 중턱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곤 했는데, 너댓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치면 어느 새 이 녀석들이 머리 위를 맴돌아. 그러면서 까옥에 꾸루루륵, 까마귀소리로 떼창을 하는데, 그럴 땐 사뭇 섬찟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육지 짐승이 사냥으로 배를 채우고 있을 때 그 위를 맴도는 독수리들처럼. 머리 위로 얼마나 가까이 나는지 녀석들 그림자가 거뭇거뭇. 그러곤 사람들이 도시락에 반찬 한 가닥이라도 남겨 한 쪽으로 모아주면, 아주 깨끗이 비워놓곤 하던. 심지어는 새참으로 사다놓은 카스타드 빵을, 봉지도 뜯지 않은 걸 그대로 물고 달아나기까지 하는. 이 까망새들이 장엄한 그 모습처럼 자존감을 지켜준다면 더 좋을 텐데. 암튼, 한참 일할 때야 점심시간 모여드는 그 녀석들이 조금은 성가시기도 했는데, 윗세오름을 돌아 내려오던 길, 절벽을 이루고 선 병풍 바위에서 오백 장군 바위들 사이로 날아오르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마치 장산곶에서 둥지를 깨뜨리고 날아오르던 매의 그림처럼.  


 이렇게 꼽아놓고 이 섬에 많은 짐승 셋이니 삼다수(獸)라 해도 되겠구나, 하려다 보니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제주 어디를 가나 식당 간판에 숱하게 붙어 있는 글씨와 그림. 이 섬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짐승들. 말과 노루, 까마귀 그리고 불판 위로 올려지기 위해 사육당하는 슬픈 꺼멍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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