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던 일요일, 그날 하루는 작업이 없었다. 그나마 제주시 쪽에는 비가 그리 세게 내리지 않았지만, 소길 마을 산간을 지나는 평화로, 그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보름 전 쯤, 사잇골 노미 샘에게 연락이 있었고, 제주에 있으면서 강정에 들를 수 있으면 후원금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더랬다. 그러고는 통장으로 꽤나 큰 돈을 부쳐주었어. 그걸 받아놓고도 한 주일 내내 잠깐의 짬도 낼 수가 없어, 묵직한 지갑으로 주머니만 무겁게 지니고 다니다가, 비가 와서 틈이 난 일요일, 그날 강정으로 내려갔다. 그냥 찾아갈 수가 없어 신부님께 편지 한 통이라도 쓰고 가자니, 이미 해군기지 공사장 앞 미사시간은 지나버렸어. 그래도 마을에 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야 있겠지 싶어, 지난 번 하룻밤을 묵고 오던 미량 님 게스트하우스 앞에 차를 대었다. 그러고는 마을을 한 바퀴. 장대를 꽂듯이 죽죽 쏟아지는 비에 공사장도, 마을도 다 젖어있었고, 강정천은 물을 잔뜩 품어 굽이치며 흘러.
신부님이 서각을 시작하셨다는 얘기는 벌써 오래 전부터 들어오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솜씨 좋게, 그렇게나 많은 칼질을 해오셨는지는 몰랐다. 그 칼질 하나하나가 가르쳐주는 절실한 마음과 그 오랜 시간들.
이렇게 어디를 가나 서각도로 새겨놓은 평화의 기도들.
공사장 버려진 빠레트에도 평화의 기도.
누구라도 아는 이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평화센터 쪽으로, 그 옆 평화상단 문을 두드려보다가, 안으로 돌아서는 어느 집에 평화지킴이 한 사람을 만났다. 이미 내 전화기에는 번호 저장이 다 날아가 있어. 두희 샘의 번호를 얻고, 조약골의 번호를 물어. 그렇게 하여 번호를 눌렀더니, 조약골이 바로 쫓아나왔다. 긴머리로만 몇 해를 기억했는데, 어느 새 단발로 짧아진 머리. 반갑게 웃는 얼굴, 이렇게 제주에서 만나다니.
조약골을 따라 평화센터 건너편의 평화책방으로 들었다. 이야아, 이렇게 아늑한 공간이 꾸려져 있는지를 몰랐어. 지난 가을, 작가들이 뜻을 모아 인천에서부터 책을 싣고 내려오던 '강정 십만대권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는 건 들어 알았지만, 그 뒤로 해서 이렇게나 아늑하고 예쁜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구나. 아아, 그때 책을 싣고 내려오던 그 배도 세월호였다던가.
암튼 그 책방에 들어 따뜻하게 내어주는 차를 마셨다. 용산 남일당에서 보던 게 끝이었으니, 조약골 얼굴을 보는 것도 삼사년 만의 일. 훌쩍 건너온 그 시간의 이야기들을 다 나눌 수는 없었지만, 얼마 전 강정에 다녀갔다는 캐쉬캘리 할머니의 얘기며, 강정 지킴이로 지내면서 시작해오고 있는 핫핑크돌핀스에 대한 얘기들을 토막토막 들려주어. 하긴 얼굴을 보는 거면 되었지, 목소리를 듣는 거면 되었지, 그 웃음이면 되었지, 말로 하기에는 다 채울 수 없는 시간들.
핫핑크돌핀스 얘기가 나오니, 조약골이 잠깐만 있으라며 공책 한 권을 내왔다. 그러고는 공책 제목의 빈 자리에 이름을 써넣으래. 그러니까 "OOO는 돌고래 쇼를 보지 않겠습니다!" 라는 제목에 이름을 써넣고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거를 하고 있다는데, 그거를 하나 하라는 거. 요즘은 그렇게 인증샷으로 sns를 활용하는 캠페인을 많이 하는가 보다. 암튼 그리하여 찍은 인증샷. 내 이름만 딸랑 적어넣기가 썰렁하여, 달래와 감자도 함께 ^ ^
짬을 낼 수 없었다는 건 아주 좋은 핑곗거리였지만, 더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나는 강정에 가는 거에 어떤 겁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풀어 말하기에는 편치 않은 어떤 부담이나 불편, 부끄러움, 자괴 같은 것. 그런 못난 마음은 이제 그만 털 수 있기를. 조약골 환한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몹시도 고마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