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운동 산방으로 올라가는 밤길. 어젯밤에도 여지없이 토끼를 만났다. 그 깜깜산길을 오르다보면, 그 산의 원래 주인이라 할 짐승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만나는 애들이 이 산토끼들이다. 가까운 산에서는 다람쥐나 청솔모 같은 애들이 흔했지만 토끼 만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는데, 이 산에서는 거꾸로다. 이 길에서는 잰 걸음으로 나무를 타고 다니는 다람쥐, 청솔모 같은 애들은 아직 본 일이 없어, 하지만 이 길을 오를 때마다 토끼들이 어디에선가 톡톡 튀어나오곤 했다. 이제는 어느덧 그 길을 오르다 얘네를 만나지 못하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해.
숭례문 현장에는 대륙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이가 있었다. 성곽 일을 하던 노반장님과 나는 그애의 웃음소리를 따서 '와하하'라 부르던. 여고생 때부터 전통건축에 마음을 두었다는 이 아이는 전공을 그리 하고, 중국으로 넘어가 문루 건축을 주제로 석사를 마치고 돌아와,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보고서 쓰는 일에 참여하고 있어온. 웃음소리가 얼마나 호탕한지, 성곽 등성로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도 그 웃음만 듣고서도 덧집 안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알아차릴만큼. 언제쯤이었더라, 지난여름이었을 텐데 어느 하루 내가 그만 이 아이에게 찔찔 우는 걸 들킨 일이 있더랬다. 그렇다고 모, 정말로 찔찔 짜고 있던 건 아니고, 눈물 고여드는 걸 애써 눌러 참아 들키지 않으려 하던 참이었는데, 이 녀석이 대뜸, 냉이 아저씨, 왜 울어요, 하면서 알아채버렸다는 거. 하하, 눈물이라는 게 사람의 어떤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어 그런 걸까, 아직은 서먹하던 현장에서, 고맙게도 서로가 어렵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처음 들킨 건 나였지만 엉엉, 펑펑 울음보를 터뜨리는 건 주로 이 녀석이었다. 그러면서 위로를 얻은 건 이 아이였을까, 나였을까. 그러던 아이가 숭례문 일을 마치고, 다시 공부를 준비하여 이제 며칠 뒤면 박사 공부를 하러 중국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떠나기 전, 모운동에는 꼭 한 번 다녀갔으면 한다던 차에, 어제오후 강원도에 입성. 장릉을 답사하고, 영월 서부시장에서 전병에 막걸리를 치고, 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토끼 궁둥이를 보며 모운동 저 깜깜산길을 올라가 출국 전 환송을 겸한 힐링캠프를. 아쉽게도 날씨가 받쳐주질 않아 구름 머무는 그 풍경도, 깜깜하늘의 쏟아지는 별들도 다 보여주지를 못했으나 그래도 좋아라 하는 모습 보이니, 그에 고마웠다. 울보 잉잉이면서도 맨날 자기는 의지가 강하다며 씩씩함 충만이라, 몇 해가 걸릴진 모르겠지만 하고자 하는 공부 씩씩하게 잘 하고 돌아오길 응원한다. 그래서는 끝내 학위보다 더한 생의 기쁨들을 채우는 시간이 되기를. 그러고보니 저 산길을 종종거리며 뛰던 그 토끼가, 현장에서 노란 안전모 덮어쓰고 뛰어다니던 그 모습이랑 꼭 닮은 것도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