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냉이로그 2013. 7. 19. 22:02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닌데, 어따가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전화기가 먹통이 되더니 켜지지가 않아. 할 수 없이 제천에 있는 수리점까지 나가 전화기를 고치는데, 모가 어떻다는 건지, 무슨 프로그램 오류로 안에 있던 데이터는 다 날아가게 되어. 그래서 전화번호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물건 같은 것도 주인을 닮는 건지. 기르는 짐승이 주인을 닮고, 심지어는 뜰에 심은 나무마저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는 소리를 듣기야 했지만 이런 물건까지도 주인을 닮을 줄은 몰랐다. 하여간 이눔의 전화기 주인 잘못 만나 멍청이가 되기라도 한 걸까. 

 
 어차피 평소 걸고받는 번호가 열을 넘지 않으니 당장이야 그렇게 불편할 일도 없고, 한동안은 오는 전화나 받았다가 차곡차곡 새로 저장을 해가면 되기야 하겠지만, 한 가지 걸리는 건 그런 때다. 띠링띠링 문자가 들어와, 정이 담뿍 담긴 말로 안부를 묻거나 할 때, 거기에 대고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하고 물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다. 이미 전화기를 몇 번이나 잃어버리기도 했고, 망가져보기도 해본 터라 그래야 했던 적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더욱 난감한 건, 그렇게 누구냐고 되물었을 때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 ㅠㅠ 아무튼 이리하여 전화기가 텅, 주소록이 텅, 저장한 전화번호가 텅 비어버렸다. 그러니 혹 이거 보게 된 사람은 귀찮더라도 내 전화기에다 문자 한 번 보내주시라. 그냥 번호만 보내면 알 수 없으니 이름이든 닉넴이든 뭐라도 알아볼 수 있는 표시와 함께. 포미닛이 부릅니다. 이름이 모에요, 저나버노 모에요. 헐,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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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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