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다. 맑기만 하던 동강이 거품을 물고 황톳물이 된지 오래. 처음엔 그게 낯설더니, 이젠 무섭기까지. 산이 높으면 물이 깊다더니, 울뚝불뚝 솟은 산들이 그 사면으로 내려받은 빗물들을 한 데 쏟아붓는다. 그 좁은 강폭에 불어난 강물이 돌격, 앞으로! 하듯 폭포수처럼 내달린다. 수직으로 서 있는 그것이 아닌 누워 굽이치는 폭포.
진별리 쪽은 길이 잠겼다. 김삿갓에서 읍내로 들어오다 길이 막혀 차를 돌려. 거꾸로 더 남쪽으로 내려가 산등성을 넘어 예미로, 녹전으로, 석항으로, 멀리 함백 이정표를 보고 연당으로 돌아야 집에 올 수가 있어. 달래가 가르치는 가재골 아이들은 이미 사흘째 섬처럼 고립. 모운동 산방으로 오르는 길에도 돌덩이가 무너져내려 오늘은 올라가기를 그만두었다. 여기가 이 정도이니, 이보다 우량이 두세 배 많다는 춘천홍천가평은 얼마나 차고 넘칠까. 그리고 저 꼭대기 철탑, 종탑으로 올라 있는 사람들.
우울이 찾아들어, 이 지리한 장마를 탓하고 있었다. 장마 때문일 거라고, 눅눅꿉꿉한 이 놈의 날씨 때문인 거라고. 그러나 사나흘 전부터는 그 우울도 싹 가셔버리고 말아. 무서운 기세로 쓸고 가는 강물에 질끈 겁을 먹게 되면서, 한가로이 우울 타령이나 하고 있을 수가 없어. 장마는 아직 끝이 나질 않았다는데, 다음 주까지도 이 비가 이어질 거라는데. 장마 탓으로 돌리고 있던 우울이, 이 장맛비에 겁에 질려 달아나고 말았다. 정신이 바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