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냉이로그 2013. 6. 24. 08:52




스무 살 


 저녁 어스름 콜렉트콜 전화가 왔다. 며칠을 영월에서 함께 지내다 올라간, 스무 살 아이. 누구보다 부침 많은 성장기를 지났지만, 어느 한 구석 모가 나거나 얼룩이 지지 않은 순둥이. 알바를 시작했다. 속초에 있는 닭집. 가을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하지만, 기숙사비와 용돈은 방학동안 벌어놓아야 한다고. 꽤나 많은 돈을 받기로 했다기에, 얼마나 일을 시키는 곳이기에 그런가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크고작은 엄살은커녕 도통 힘들다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전화를 걸어와 너무 힘들다, 안부를 전한다. 하루 열한 시간, 내내 닭을 튀긴다고. 같이 들어간 다른 아이는, 하나는 하루종일 포장 박스를 만들고, 또 다른 하나는 하루종일 반죽하는 일을 맡았고, 저는 하루종일 닭을 튀긴다는데, 그 뜨거운 불 앞에서 열한 시간이라니, 숨이 턱턱 막히고, 기름이 튈 때마다 여기저기 화상 얼룩이 생길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같이 더운 때,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느라 가스렌지 앞에서 잠깐 서성여도 목줄기로 땀이 흐르곤 하는데, 이제 더더 뜨거워질 여름 휴가 한 철을, 아이는 그렇게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서 일을 한다. 어제오늘, 이틀 일을 하고도 벌써 더위를 먹은 것 같다는, 너무 힘들다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박스 접는 친구, 반죽하는 친구랑 돌아가며 해보자고 그래라, 어떡하면 좋아, 아직 제대로 된 여름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아이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러겠냐고, 물론 나도 안다. 네가 그런 말 할 아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아이는 이미 알고 있어, 그 누군가에게 기대려 하는 마음같은 것도 놓은지 오래다. 아이는 이렇게 제 앞에 놓인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를 배워간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려 하거나 달아나려 하지 않는다. 그 대견함이 눈물겨워. 두 달 알바를 마치면, 친구들을 불러 모운동 산꼭대기 산방에 하루 놀러가고 싶다고, 그래도 되느냐고. 그럼 물론이지. 아무 때고 좋지. 기왕이면 한 며칠 실컷 놀고가라. 얼마든지 좋으니. 

 



열일곱 살 


 깜깜 밤중, 콜렉트콜 전화가 왔다. 문경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 기숙사에서 옷가지까지 다 챙겨 나와 점촌 터미널 앞이라고 . 삼촌, 나 지금 갈 곳이 없어. 학교를 나왔는데, 양양가는 버스도, 수원가는 버스도 다 끊겼어. 차비도 없어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어. 무슨 일인지를 물었지만, 그 사연들을 다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백 가지도 넘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최근에 학교 선생님하고 겪은 얘기를 하는데, 도저히 학교에서는 숨이 막혀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통화상 아이의 얘기로는 그 힘들다 하는 게 구체로 어떤 것인지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건 아이의 목소리에 담긴 어떤 절박함. 전화기 배터리도 없어 곧 끊어질 거라 하니, 길게 붙잡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도 되지가 못해. 몇 차례 더 물어보기는 했다. 그 백 가지 이유 가운데 제일 힘든 게 어떤 거였냐고, 오늘 학교에서 나오기 직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러면서 잠시동안의 갈등. 거기에 기다리고 있어라, 삼촌이 데리러 나갈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거두절미 어떻게든 학교로 돌아가라, 하는 것이 좋은지. 어쩌면 아이가 하는 얘기들에는, 제 잘못은 숨기면서 학교 탓에 선생님 탓, 그렇게 남탓만으로 일관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은 별 일 아닌 것에도 참지를 못하는 못된 버릇 탓일 수도 있다. 망설임 끝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묻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백 가지도 넘는 이유가 있다는 말로, 아이는 이미 제 할 말을 다 했는지 모른다. 누구도 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설사 아이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형편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을 해줄 수 있다 한들, 굳이 그걸 내가 다 알아야 할 까닭은 없다. 어쩌면 그건 내 면피용이고, 내 이유를 찾고 싶은 마음일는지 몰라.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묻는다 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을 때 말하도록 집요하게 묻는 건 상담도 무엇도 될 수가 없어. 말하자면 그건 취조와 같은 것일 뿐.  어쩌면 내가 아이의 버릇을 나쁘게 들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싶었지만,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약속한 역 광장에서 아이를 만나, 우동 한 그릇을 먹이고, 영월로 돌아오니 새벽 두 시. 설령 아이의 말에 거짓이 섞여 있을지라도, 오죽하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러할까. 그 나이 때 내 거짓말들을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이 아이는 그 나이 때 나보다는 더 착실히 학교를 다니고 있지를 않나. 이렇게나마 지금 나를 있게 한 건, 그 시절 내 잘못과 거짓말들을 따끔하게 일깨워준 어떤 가르침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믿어주던 어떤 마음, 그럼에도 받아주던 그 가슴이, 어느 순간 내게 부끄러움을 가르쳤고, 더는 나를 내 멋대로만 내던지지 않게끔 해주었으니.



 스무 살 아이가 닷새를 자고 간 그 이부자리를 다시 펴 아이에게 깔아주었다. 아이는 방에 들자마자 제 보물 일호라는 아이바네즈 쨈 쎄븐 브이라는 이름도 요상한 기타를 꺼내. 그러곤 지난겨울 까페 드럭에서 공연을 했다던 곡과 자기가 곡을 만들었다는 기타 솔로의 멜로디를 징징징. 즉흥 잼 연주를 보여주겠노라고 코드 하나를 엠알로 틀어놓고는 거기에 느낌이 가는대로 멜로디를 붙이기도 해. 이 때 보여지던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저 집중력과 에너지는 과연 어떤 걸까 싶어 놀랍기만 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시간 가까이, 아이는 하드락이니 프로그레시브락이니 얼터내티브락에 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서, 너바나와 커트코베인, 딥퍼플과 블랙사바스, 기껏해야 나는 밴드의 이름과 대표곡 한두 개 밖에 모르는 그 세계에 대해 쉼없이 떠들었다. 그저 아이가 떠드는 얘기에 그게 모야, 그게 몬데, 하며 묻고 들을 뿐. 학교 얘기같은 건 더 하지 않았다. 그거야 지가 하고 싶어지면, 하지 말라 해도 하소연을 쏟아내듯 하게 되겠지. 누구에게든 저 깊은 마음 속 얘기는 억지로 물어 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보드라운 멍석을 깐다 한들, 지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다음에야. 그러다가 저 사람이 내 얘길 들어줄만 한 사람이다 싶으면 비로소 그때. 적어도 나 같은 경우는 그러했으니. 




         *                                *                                *                              *  




 스무 살 아이와 열일곱 살 아이. 한 아이는 내게 형이라 부르고, 한 아이는 나에게 삼촌이라 부른다. 전에는 그저 친근하기만 한 친구같은 형, 친구같은 삼촌으로만 지내면 된다 싶었는데, 이제 아이들도 제 삶을 고민해야 할만크 성큼 자라 있고, 나도 마흔을 넘어, 때로는 어른 역할을 해야 할 때.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인 어른 역할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야 당근, 여지껏 나 자신도 만날 헤매고만 있으니. 그러나 아이 앞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마다, 맨 마지막에 생각하는 건 그 한 가지. 나는 어땠더라, 내가 저 나이 때, 내 모습은 어땠더라,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게 무어였더라. 스무 살 그 때, 그리고 열일곱의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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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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