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이 제주 말로 감자를 뜻하는 줄 알지 못했다. 꼭 보아야 한다는 그 영화 지슬도 아직 보지를 못했어. 강정 평화상단에서 이번엔 감자를 판다고 하는 웹자보를 보고 주문을 해두었더랬다. 그런데 현지 사정으로 배송이 좀 늦어진다 하더니, 또 어쩌다 보니 발송을 하다가 누락이 되어 더 늦어지게 되었다 하더니, 지난주말 저 멀리 서쪽으로 흐르는 강과 바다 앞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 저녁, 문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어. 제주에서 온 감자, 지슬.
한동안 이 애들을 밥상에 올리며 그곳 안부를 묻게 될까. 그러나 강정에게는 안부를 묻는 일조차 미안하다. 이렇게 감자나 사 먹고, 귤이나 사 먹으면서 구석에서 평화를 빌어. 이번에는 강정평화상단에 감자를 시키면서, 눈물 속에서 자라난 평화를 함께 주문했다. 제주 토박이 글쟁이들이 강정 마을의 어른들 이야기를 받아적은 글모음집이 나왔다는 얘기야 지난겨울 듣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일은 자꾸만 제일 나중 일이 되어버려. 이 책도 아마 나는 단숨에 읽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읽는 일에 자꾸만 그러고 있으니. 잠깐 겉장을 넘겨 고권일 위원장이 쓴 머릿말을 보는데, 어느 한 구절에 잡혀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를 못하고, 나도 모르게 몇번이고 되뇌이게 되어.
"해군기지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지만 해군기지가 아니었어도 저 자신부터 물질문명에 찌들어 이웃하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참 소홀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새삼 떠오르곤 했습니다."
해군기지가 아니었어도, 해군기지가 아니었어도, 해군기지가아니었어도해군기지가아니었어도아니었어도아니었어도, 아니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