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침은 그 길을 셋이 함께 나서. 어젯밤 영동선 기차를 타고 내려온 스무 살 동생 녀석이 한 주일동안 집에 머무르게 되어. 밤부터 쏟아진 장맛비에 거품을 물고 흐르는 동강을 따라 그 산자락 아래로 들어가. 이 오지에서도 엘티이가 빵빵 터진다는 그 산자락 밑의 학교에 달래를 내려주고, 우리 둘은 저 멀리 보이는 구름마을로 더 들어가.
사진으로는 실감이 제대로 나질 않는가. 우리는 벌써부터 입이 쩍쩍 벌어지며 몇 번이고 길 위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점점 가까워지는 구름 마을을 멀찍이 올려다보곤 했다. 저기 저 구름, 그 속에 파묻혀 있을.
큰 길에서 돌아들면서, 저 구름 속으로 올라간다. 구름을 따라 오르는 출근길.
여기는 어디 쯤이더라. 아직 마을에 다다르려면 한참인데, 이미 저 아래는 구름이 겹겹으로 펼쳐져 있다. 나처럼 대책없이 입을 쩍쩍 벌리지 않던 요 녀석도, 이 고갯마루 앞을 지날 땐 한 마디를 뱉었다. 개쩐다, 진짜 개쩐다!
몇 굽이를 더 돌고, 몇 개의 고갯마루를 더 올랐을까.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또 한 번 저 아래, 이미 까마득한 구름의 산수가 펼쳐졌다. 마침 그 앞엔 비옷에 삽자루를 들고 밭에 물골을 내던 아저씨 한 분이 있어. 저 산과 구름을 아래에 두고 일구어가는 밭이라니. 세상에, 이게 다 모야. 이제부턴 산신령 놀이.
이내 마을에 접어들었고, 거기에서도 또다시 한 참을 더 올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 올라서니, 구름이 저렇듯 휘감고 있었다. 그 속을 지날 땐 먼 데의 구름만 하얗게 보이더니, 우린 이미 저 구름 속을 지나며 올라왔던 거. 그리고 저 아래를 내려다 보던 그 자리도 저 멀리서 보면 하얀 구름 속.
여기다. 처음엔 모운동에서 이사나갈 집이 있다고 하여, 그 집이 비게 되면 거길 빌릴 수 있을까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더랬다. 나보다 더 급하게 그 집에 들어올 사람이 있었고, 아주 들어가 살 사람이니, 내가 양보할 밖에. 그래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어야 하나 싶었는데, 지난 주말 행운처럼 이장님을 만나게 되어, 이 집을 빌려쓸 수 있게 되었다. 나야 그저 알록달록 동화 그림 벽화가 있는 산기슭 마을의 방 한 칸 조그만 집이라도 족하겠다 하였는데, 이렇게 멋진 집과 인연이 될 줄이야. 그 전엔 광산 회사의 사무실이자, 간이 숙소로 쓰였을 법한 이 집이, 이 고립무원의 산 중에 이렇게 온전히 홀로 남아 있었다니.
집 마당에서 내려다본 저 너머 산자락. 함께 간 동생도 더 이상은 과묵하지 못하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쩐다에 개쩐다를 연발. 무협 소설에 나오는 그림 같다며,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엄청나다며 감탄에 감탄. 이 녀석, 지난겨울은 학교이공일삼에서 남순이로 활약하더니, 이즈음은 너목들에서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소년 수하로 나오고 있어. 그러니 그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은 녀석과 눈을 맞추지 말아야지, 하하.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보려 해도 실제로 보는 그 감동을 온전히 담기에는 너무도 모자라기만 해 ㅜㅜ 종일을 쏟아지던 장대장맛비가 고맙게도 한 번씩 잦아들면서 내다볼 수 있게 해주어.
어머나, 나비다, 나비. 그 여린 날개로 이 높은 산꼭댁에서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니. 저 아래에서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듯한, 너무 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곱디고운 무늬를 가진 날개. 내가 찍어놓고도 마치 씨지 작업으로 나비를 가져다놓은 듯한. 그러나 저 나비는 씨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이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저 가녀린 날갯짓.
이장님 말씀으로는 비가 그치고 구름이 빠져나갈 때가, 여긴 가장 아름답다는데, 글쎄야 장맛비가 얼마나 더 이어질는지. 그러고나면 또 얼마나 놀라운 풍경을 보여주게 될지. 그러나 그 풍경에 마음 급할 일이야 없다. 이젠 날마다 이 산등성의 외딴집에 올라 있을 테니.
구름이 모이는 마을, 이라는 이름은 정말로 그러한. 그저 멋부리려고 가져다 붙인 그런 이름이 아니었어.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던지, 이내 학교종이땡땡땡 저 산 밑 학교가 파할 시간이 되었고, 고남순이이거나 박수하인 동생 녀석과 나도 퇴근길을 준비, 저 구름 속을 뚫고 내려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