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쌈

냉이로그 2013. 4. 23. 09:23




 주말에 집에 올라갔더니 책 몇 권이 놓여있다. 한 권은 상추쌈이라는 이름의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 제목보다 출판사 이름에 마음이 먼저 끌려, 어떤 곳인지가 궁금했다. 요즘에야 이처럼 소박한 생활의 분위기를 내는 맛깔스러운 이름을 단 출판사들이 제법 여럿이라, 이름에만 그런 멋을 부린 건가 싶은 생각도 잠깐. 그런데 책 뒤에 있는 출판사 주소를 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아. 경남 하동 악양, 그 깡촌에 출판사를 두고 있다니. 편집자 이름에 둘, 그 중 한 사람이 펴낸이로 되어 있어. 아마도 촌에 사는 부부가 조그맣게 책을 만드나 보다 싶었다. 가볍게 넘어가는 새 종이 냄새가 참 좋았다. 

 책 사이에 끼워놓은 엽서 한 장. 언젠가 한 번 본 일이 있다 하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 분의 이름도, 얼굴도 아리까리하기만 해. 거기에 다닌 분이었다니, 그러면 아마 그 즈음 파주에 들렀을 때 그 사무실에서였나 보다. 그 뒤로 목수 일을 배우러 나섰다는 얘기를 들어, 그 때 그 기억으로, 이 책을 보내주려고, 강원도 주소를 물었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두 분은 아이가 생긴 뒤로 고향에 내려가 조그맣게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기르며 틈틈이 책을 만들고 지내고 있다고. 그 말만으로도 따스한 풍경이 절로 그려져, 좋아 보였다.

 <<나무에게 배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선가, 잡지에선가 리뷰가 올라있는 걸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즈음도 역시 책이건, 신문이건 문자로 되어 있는 것들에는 너무 쉽게 건성건성이라, 아마 그 기사도 두어 문단 정도만 읽고 지나쳤을까. 그렇게 지나치면서 아마 그 책을 쓴 분이 뒤따라 낸 책이 아닌가, 하고 갸웃하는 정도로. 책꽂이에서 그 책을 찾아 꺼내니, 기억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그 책의 책등에는 이시오카 츠네카즈, 새로 받은 이 책에는 니시오카 츠네키즈라 써 놓았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니 이건 그 책의 후속이거나 뒤따라 나온 다른 책이 아니라 그것과 같은 것. 절판이 되어 이제는 구할 수 없게 된 그것을, 그 책을 아끼던 젊은 부부가 정성껏 다시 펴낸 것이었다. 진작에 전우익 선생은 평생 이 책만 읽어도 된다, 하는 말까지 했다던가. 또 누군가는 이미 이 책에 좋은 목수의 조건에 대해 다 말해놓고 있다, 고 했다던. 그런가? 그런데 실은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목수 일을 배우러 한옥학교에 입학할 무렵, 인천의 작은엄마가 부쳐주었던 그 책. 나이든 학생 다섯이 한 방을 쓰던 학교의 그 기숙사에서, 더듬더듬 읽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쇠귀에 경읽기라고, 아마 그 때 나는 무얼 말해주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눈만 껌벅이는 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늙은 대목장의 이야기를 귀하게 받들어 한 자 한 자를 정성스레 고르며 새로 펴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며 이 책을 다시 읽으려 한다. (2013.4.22)





 저 위는 어제 아침 책상에 앉아 끄적거리다 만 거. 오늘, 일하러 나오기 전 새벽 도서관에 들러 책장을 넘기다 왔다. 한 줄 한 줄 읽다보니, 전에 읽은 기억이 살아나기는 해. 여든이 넘은, 삼 대를 이어오는 법륭사의 대목이 손의 기억을 살려 전해주는 이야기, 그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들어온 이야기들. 이제 삼 분의 일 쯤을 읽었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감동이라기 보다는 괴로웠다. 그 노목수가 말하는 것들에 나는 정 반대로만, 등을 돌리고 가는 것만 같으니. 그 목수 할아버지를 한 번 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니, 그 목수 어른은 됐고, 이 책을 너무 좋아해, 아기를 재우고 난 밤이면 아무 곳이고 펼쳐 소리내어 읽곤 했다는 그 집 식구들이 더 궁금해지기도. 그래서 검색 페이지로 몇 개 찾아보게 된 거.  


[한국일보] 상추쌈


[행복이 가득한 집] 상추쌈

[전라도닷컴] 상추쌈

[경향신문] 나무에게 배운다


[블로그] 봄이네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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