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0606

냉이로그 2008. 6. 10. 15:11

모란공원

아침 일찍 나섰다. 서울로 올라가 거기에서 마석으로 거슬러 오는 게 어쩜 시간은 덜 걸릴지 모르지만 부러 기차길이 있는 춘천으로 갔다. 양양 버스터미널에서 춘천으로, 남춘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마석으로. 버스가 춘천에 닿는 시간하고 남춘천역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하긴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 달려! 숨이 목까지 차올라 겨우 기차에 올랐고, 숨이 가라앉아도 이상하게 뛰는 마음으로 마석으로 갔다. 서울을 벗어나 처음 살던 곳이 마석 가까이였으니 그 동네야 지금도 손바닥 보듯 알 것 같아. 기차역에서 내려 금남리, 대성리로 빠지는 길 언덕 길을 걸어 올랐다. 조금만 더 가면 모란공원이야, 래전 형이 누워 있는 곳. 늦었을까 싶어 그 길에서도 걸음을 재촉해. 공원 무덤들 가운데에서도 위 쪽에 있는 형의 자리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랐다. 무덤가로 사람들이 흩어져 군데군데 앉아 있는 것이, 혹 벌써 추모식이 끝난 건가 싶기도 했는데 몇 걸음 앞에 아는 얼굴들이 있다. 래군 형이 있고, 그 곁으로 이소선 어머니, 박정기 아버님이 있어, 그리고 어느 새 아가씨가 다 되어버린 성아랑 수빈이. 성아, 수빈이가 삼촌! 하고 반갑게 불러주는 목소리, 그 얼굴이 너무 좋아. 장난치기, 놀려먹기 좋아하는 래군 형이 얌마, 다 끝났는데 이제 오냐, 해서그만 속고 말았지만 다행히아직은 아니었다. 외려 학교에서 모여 떠난 버스들이 닿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는 거. 십오 년만에, 십년 만에, 칠팔 년만에, 그리고 아직도 집회에 나가면 먼 발치서 얼굴 보고 헤어지곤 하던 선후배와 동료,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들 반가워. 형의 무덤 앞에 절을 했고, 그 무덤가 풀밭에 둘러 앉아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었다. 당근 막걸리 잔도 돌고 돌아.

숙연하고 진지한 얼굴들, 래전 형보다는 래전 형을 기억해 모인 이들에 더 반가워 웃음짓는 얼굴들, 그리고 어느 시기 이 무덤가에서 함께 약속하고 다짐했던 서로의 모습들에서 얼마만큼씩 멀어져온 지금의 모습들이 어색한지 그 낯섬과 불편함을 애써 돌리려는 듯 그 표정에 웃는 얼굴들…….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받고 있을 때 종숙이 누나 곁으로 와 쪼그려 앉으며 그러네. 야, 니가 왠일이야, 이렇게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려 밥을 다 먹고. / 무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언제 안 그랬나? / 너 맨날 이런 날은 안 오고 그랬잖아. 아니면 사람들 다 가고 난 뒤에 혼자 오거나 아니면 그 전에 미리 왔다 가고 그랬지. 어쩌다 이 날 와도 한 쪽 구석에서 숨어 있으려고나 그러고……. 아아, 그랬나?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나 보다. 꽤 한참이나 그랬어. 몰라, 그 때는 무에 그리 부끄럽고 힘들었는지 사람들 얼굴 볼 자신이 없었나봐.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마 가장 그립고 그리운 이들이 모이는 자리가 바로 거기일 텐데도 나는 그 얼굴들을 보기가 왜 그리 두려웠나 몰라.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날짜에 맞춰 찾아가면서도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어.

이십주 년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그랬는지 가까이 몇 해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그래도 래전 형이 있으니 이렇게들 만나는구나. 래전 형이 있으니 그 오래전 가슴 속 다짐들도, 그 때 함께 외쳤던 구호들도 다시금 되뇌어 보게 되는구나. 글쎄 또 몇 해 뒤에나 그 무덤가에서 얼굴을 볼 수 있어 서로 닿지 않는 자리에서 살아갈지더라도 적어도내 무거운 구두가 꽃 한 송이 밟고 서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살아가고는 있겠지. 아버님이야 막내 내전이를 가슴에만 묻었다 하시지만어머니만큼은 추모식에 빠지지 않으셨는데,올 해는 몸이 너무 아파 오던 길 돌려내려가셨다 한다.이제 생각나 전화를 드리니 받으시질 않네. 날이 환하니 여지껏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계신가 봐.농사 좀 줄이시라, 줄이시라 하던 게 벌써 십 년은 더 되었는데, 몰라, 두 분은 그렇게 일을 하는 것으로 버티어 살고 계시는 건지도.

서울, 촛불 광장

엉덩이를 털어 무덤을 내려오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광화문 촛불시위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이 나와 빌린 버스 두 대 가운데 한 대는시내로 가게 해 준다 했다.나 또한 이 추모식에 오면서 행사가 마치면 저녁에는 광화문으로 가 보려 하고 있었어.많이도 궁금했거든.인터넷 동영상으로, 신문 기사와 방송으로 서울의 촛불집회 모습에 대해듣고 보고 읽고는 있었지만 그 현장의 모습을 몸소겪어 보고 싶어.가까이 눈으로 보고 싶고, 그자유로운 열기에 몸을 담가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 버스는 시청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명동들머리에 막혀 멈추섰다. 이미 행진은 시작되고 있었어.한국은행 앞네거리였나,OOO은 물러가라,소리를 지르는 시민들이정말 커다란강물처럼 물결치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그래, 이건 내가 이전에 보았던 시위대가 아니야,나 어린 학생들이 많다더니 정말로앞뒤로 남학생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야, 어디 쇼핑 타운에서나 봄직한 차림의 아가씨들이어깨에 촛불소녀 캐릭터 스티커를 붙이고 있어. 유모차가 있고, 아빠 어깨에 앉힌아이가아이스크림을 쥐듯종이컵을 씌운 양초를 들고 있어. 누구라도 동을 띄우면 그 구호를 함께 했고, 누구라도또 다른내용으로 소리치면 함께 걷는 이들이 그것을 받았다. 그 가운데 아주 목이 쉬도록 구호 선창을 하는 이가 하나 있어, 얼마나 열정적이던지 얼굴이나 보고 싶어 돌아봤더니초등학교에 다닐짐한 어린아이네. 하하하, 저것 좀 봐. 크레파스로칠해 써 들고 다니는 피켓에 변화의 중심, 무적 초딩! 이라네. 안국동을 지나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길이 막혔고,한참을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광화문 쪽으로 옮겼다. 물론시위를 하던 시민들이 모두 그 자리를 뜬 것은 아니야. 그래서 왠지 그자리를 버리고 돌아나온다 싶은 기분에뒤통수가 살짝 당기긴 했지만,나는 사실 그날만큼은 구경꾼이고 싶었는 걸. 그 대치 상황 말고도 광화문과 시청, 서대문 이곳저곳의촛불 잔치 모습을하나하나 다두드려 보고 싶었어.이순신 아저씨가 서 있는 네거리부터 덕수궁까지는 아주 시민들의 해방구가 되어 있었네.대책위가 준비한 건지 뭔지 하여간 커다란 앰프 시스템을 해 놓고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어. (행진 때부터 해서 나는 계속해 옆에 있는 서울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지. 근데 동영상 같은 데 나오는 자유발언대 같은 거는 언제 하는 거야? 이런 거 말고, 커다랗게 무대 쌓아 놓고 쫙 앉아 있는 거 말고, 막 거리 공연도 하고 그러는 거…….친구 하는 말이 그런 건 대책위문화제가 끝나고 밤이 되면 많아질 테니 기다려 보라네. 암튼,그 자리에만 이십 만이 모였다는 그것의 모습도 장관이기는 했지만내가 정말 보고 싶은 건이렇게 중앙무대가있고, 참가자들이 그 아래에서 앵무새가 되는 그런모습은 아니었거든. 아무튼 좀 더 기다려 보기나 하자…….) 어쨌든 무대가 섰고, 그 앞으로끝도 없는 촛불로 불꽃 바다가 되었으니그 어느 틈이라도들어가야지. 이왕이면 무대에서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러다 보니도로에는 못 들어가고 덕수궁 돌담으로 등을 기대듯 무대 오른 편으로 앉았다.뜨거운 열기에 노래도 따라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손병휘와 안치환, 강기갑 의원과 정진화 위원장의 결기 넘치는 발언들에 손뼉.

이런 날, 한 끼 저녁 쯤은 굶어도 좋았겠지만 길게는 십 년 가까이 지나 만난 선후배와 함께 만나고 있다는 것이 교보문고 뒷골목 어느 감자탕 집엘 들르게 했다. 촛불집회만 아니었다면야 아마 모란공원에서 내려오면서부터 밤새도록 마셔야 했을지도 모르지. 늦은 저녁에 소주 한 잔을 하고 나오니 광장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어. 커다랗게 놓여 있던 중앙 무대가 없어져 있었고, 그것을 향해 빼곡히 앉아 있는 모습도 없어. 이순신 동상 앞으로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 이룬 또아리가 둘이나 되었고, 그곳부터 시청 앞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기타 하나 들고 있는 사람 둘레로, 어느 나라 민속 악기인지 둥그렇게 앉아 북을 치는 사람들 둘레로, 또 어딘가에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촛불소녀 여학생들의 노가바 몸짓 곁으로,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자연스레 판이 만들어지고 풀어지는 일들이 이어졌다. 우와아아, 이거야 이거, 그렇게나 인터넷 기사, 까페, 블로그 같은 곳에서 감동스레 애기하던 모습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래, 자유발언대는 벌써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어. 조금 더 걷다 보니 길 한 쪽에는 포스트잍 종이 딱지들이 덕지덕지 가득 메우고 있네. 정말로 터져 나와 하고 싶은 말들,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실없는 사람처럼 웃어대다가 이거 어디다 베껴 놓으면 좋겠다 싶은 말들, 입이 벌어져 무릎을 치게 만드는 얘기들……. 시청 앞 잔디 광장에는 농성 천막들이 줄을 짓고 있었지. 그래, 처음에는 낯설지 않은 이름들, 사회운동단체에서 내놓은 천막들이 있었어. 그런데 하나 하나 눈여겨 보다 보니 이건 또 뭐야?어느 게임 동호회라나? 엠비가 물러날 때까지 이 천막에서 게임을 하겠다고?이건 또 뭐야,무슨 쇼핑몰인가 하는 곳에서도천막을 치고 나와 있네. 그 뿐이 아니야. 날이 좀 더 어둑해지면서 일인용 텐트부터서너 사람 들어가는 가족 텐트까지 하나 둘 나오고 있는데,천막 안에 손전등을 매달아 그 아래에서 기타를 치는 모습은 여느 캠핑장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야.텐트마다 재미있는 문패를 걸어 놓기도 했네. 유모차 부대도농성 아닌 캠핑을 함께 하는지 한 텐트 앞에는 수유방이라 붙어 있기도 해.프라자 호텔 앞에서는 자유발언대가새벽 늦도록 멈추지를 않았고, 그 건너편에는요즘 뜨고 있는 진보신당의 컬러TV 방송이 되고 있었고,길가 쪽에서는 스크린을 내놓고 식코 영화를 틀어준다. 그러더니 상자를 들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보이는데, 배 고픈 사람 없느냐고, 물 필요한 사람 없느냐고 소리를 치면서 김밥이며 생수를 나눠주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아주 촌티를 팍팍 내면서 눈이 휘둥그레져 열심히도 돌아다녔지.부스마다 나누어 주는 유인물이나 손피켓 같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한 뭉터기씩챙겨. 시골에서 올라왔다 하면서 조금 더 줄 수 없냐고 손을내밀곤 해. 지하철 끊기는 시간이 되면서 같이 다니던 이들 하나둘 돌아가고 혼자 남았지만 혼자라 해서 심심할 건 없었다. 몇 발짝 걷다 아무 곳에나 앉으면 그곳에는 또 새로운 풍경, 구경거리가 있으니. 새벽이 지나면서 서대문 쪽이던가 몇 사람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했고, 그 뒤부터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구호와 함께 새문안교회 쪽 길에서 경찰과 대치, 전경버스를 줄에 매어 끌어당기는 일이 몇 시간 이어지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맨 앞쪽에 가있게 되었고, 소화기 분말가루를 들이 마셔쿠엑쿠엑목을 긁어 침을뱉으며 있어야 했지만 그곳에서 풍경 또한 달라. 두 시간 가까이를그곳에 서 있었을까,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어쩐지 괜히 힘만 빼고 있는 것 같아 그곳을 빠져 나와. 그 때부터는 다시 시청 광장으로 와 텐트 숲 가운데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 새벽에도나와달라니 나와주는 후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후배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노라니 벌써 아침이 밝아오는가,지하철 문으로사람들이 줄을 지어 드나들어.

하하하. 아무튼 내가 그 광화문 광장에서 제일로 웃었던 거는 누군가 어느 닭장차에 써 놓은 글귀. 아마 물대포 논란이 있으니 뒤 경찰청장 쯤 되는 이가 그런 말을 했겠지. 물대포를 쏘아도 사람한테는 안전하다고 하는 그런 말. 거기에 대고 이렇게 써 놓은 것이다. "물대포가 안전하면 니네 집 비데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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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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