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책
다 못쓴 글
글쓰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몰라. 오늘 밤 사이 다 써 보내놓고 나서내일 아침 버스로 멋지게 서울 올라가려 했더니만 살짝 갈등이 되고 있다. 새벽까지 끙끙대느니 오늘은 이만 포기하고 그만 자버릴까, 하고 말이다. (으이그, 서울 가기 전에 딱 써서 보내놔야지 떳떳하게 가서 술 얻어 먹고 그럴 것인데 그게 아니면 폼이 안 나잖아. 쩝.) 오늘 오전부터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써보겠다고 애를 쓰고는 있건만, 벌써 열 시간 가까이 썼다가는 다시, 다다시, 다다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쓰던 것도 마음에 들지를 않으니 이런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안 될 때는 과감하게 덮어버리고 될 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나,하는흔들림 같은 거.자고 인나면 머리통이건 마음통이건가뿐개운해져서 뭔가 술술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위안 같은 거.(아무래도 내가 지금 요따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벌써 마음은 구십구 프로 기울어 있는 거 같기는 하다. 헐.)
곧 나올 책 뒤에 쓰기로 한 글.일본의여러 작가들이 쓴 평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묶은 책. 머릿글로 쓴 후루타 할아버지의 글부터 해서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투이와 타이 쌍둥이 아이들 이야기까지열두 편의 글 모두 아주 좋고 훌륭하다.카레덮밥을 굳이 매운겨자국밥이라 말하는 고집 센 노인의 이야기나 끝내 전쟁을 멈추게 만드는 주걱할아버지의 주먹밥 이야기,먼 나라의 전쟁터로가게 되어병사들의 마음에 따뜻한 인간의 마음씨를불러일으켜 주는개 이야기, 그리고 자위대로 파병한 아버지를 둔 아이의이야기, 이라크 전쟁 초기바그다드로 뛰어든 삼촌을 둔 아이와 할머니 이야기, 코소보 내전 당시우정을 나누던 세르비아 아이와 알바니아 아이의 이야기…….어떤 글들에서는내 기억 속 장면들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어 가슴이 뛰기도 했고, 또어떤 글에서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말과 행동, 감정들이 그대로 살아 전해져그 또한 내가그 언젠가 겪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뛰기도 했다.어떤 것들은 판타지가 있는 공상 이야기이기도 하고,또 어떤 것들은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 놓은 듯한 사실 동화이기도 했지만 그 모두가생생한 실감으로가슴을흔들어대는 글들이었어. 너무나 목말라하던 글들, 정말로 이런 책이 있었으면 했거든. 더러 어린이, 청소년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마다, 그것도 '하필이면' 평화를 주제로 해서 아이들을 만나야 할 때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내 얼어붙어 버리고는 입술만 깨물어 말문을 열지 못한 채 겨우 우물거리기나 했으니까. 그게 어디 말 주변이 없기 때문이기만 했을까?어떤 식으로든 아이들과 평화를 느껴 그려보고자 한 이들이라면 그 비슷한 목마름은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어. 평화라는 것을 두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주 없지야 않겠지.어쩌면 저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게 어느만큼씩은 있는지 몰라, 짐짓 메마르고 어렵게 꼬이는 관념의 말로 그 뜻을 설명해낼 수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가슴 출렁이게 하는 그 어떤 것으로 이야기해내기는 늘 어렵기만 했는 걸. 물론 아주 없지야 않아. 스스로 자신의 몸과 삶으로 평화가 흐르는 길이 되어 살아온 분들이 있으니. 그나마 우리는 그러한 이들에게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배우기도 하지만 자칫 따를 수 없다 여겨지는 그이들의 삶은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것으로 머물고 말기가 더 쉬운 걸. 좀 더 구체적인 게 필요했던 거야. 좀 더 가볍게말해질 수 있는 걸 바랐다 해도 좋아. 좀 더 여러 빛깔과 모양으로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좀 더 가까운 평화, 좀 더 나와 비슷한 시시한 삶에서 시작하는 평화……. 이 책으로 모아놓은 이야기들이라면 정말 아이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아. 뜬구름을잡겠다고 팔을 휘젓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나의 이야기, 그리고 너의 이야기,우리의 이야기, 그곳의 이야기……. 에이 참, 솔직한 느낌 그대로 단숨에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리 어려워하고 있나 몰라. 혹시뭔가 멋지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어깨에 힘 잔뜩 싣지는 않았는지,아님감동이 너무 커 하고픈 말이 마구잡이로 쏟아질 것 같아 어떻게 추스려야 할지 몰라 뒤엉키고만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글이 있게 될 자리를 의식해어떤 형식이나 내용으로 갖춰야 할 것 같은 틀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튼 이 책이 곧 세상에 나오게 된다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쁘고 고맙다. 정말이지, 이런 책이 있었으면 했어.
기다림 / 손지연
아침에는 서둘러 버스에 타야 해. 아산 병원에 오전 시간 예약이 되어 있어. 예전에는 서울 간다 하면 하루는 어디, 그 다음 날은 어디 하면서 대충이나마 잘 곳에 대해 미리생각해두곤 했는데 촛불 시위가 한참인 뒤로는 그것조차 않는다.어디 갈 곳 없으면광화문, 시청 앞으로 가면 되겠거니하는 거. 엊그제부터는 신부님들이 지키고 있다 하니 거기 풀밭에서 '밤이슬 맞으며, 참이슬 마시며' 그렇게 있으면 되겠는 걸.아참, 서울 가면 갈 곳 또 한 군데 생기기는 했다. 이 노래 부르는 가수, 전부터 피네 아저씨가노래 좋다얘기하곤 했는데,주말에 아저씨가 다시 들려줘서 거기 팬까페에 가입을 하고 가입인사도 했더니 손지연 아줌마가바로 답글을 달아줬지뭐야. 그러면서 서울 오면 자기네 집에 와서 묵으라네. 피네 아저씨 말대로 정말 재미있는아줌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