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굶주림
-미안하다, 동포야!
1.
그게 며칠 째였더라. 암튼 단식에 들어가 기운은 기운대로 떨어지고 배고픔이 막 밀려들던 때. 오전 산보를 하러 나갔다가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마침 가까이에 버스 종점이 있었고, 그걸 타고 나가면 광주 시내 구석구석을 다녀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 마침 그 버스의 종점은 증심사라는 절인데다 거기는 무등산을 오르는 진입로이기까지 했다. 흔히 등산로가 있으면 그 길가에 막걸리 한 잔씩 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 줄을 지어 있듯 그 길에도 밥집에 술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가지 남달랐다면 가게마다 김치를 양푼 가득 수북이 내 놓고 있었는데, 바로 그 김치가 그곳에서는 별미라던가? 먹통 엉아와 나는 그 김치에 침이 꿀꺽, 그 때부터 먹는 얘기를 한참 했다. 아, 전라도엘 와서 전라도 음식 한 번 못 먹고 이게 뭔가, 하고 웃으며 언젠가 꼭 다시 찾아 저렇게 내 놓고 파는 김치를 먹어보자 하면서.
2.
먹지 못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 일부러 하는 단식이야 당연히 참아야 하는 거지만 그것도 아닌 체로 굶주림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사흘 굶어 담을 넘지 않는 사람 없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어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라. 할아버지가 쓴 글에는 유난히도 굶주린 아이들을 걱정하는 대목이 많았지. 마지막 남긴 유서에서도 그래. 전쟁터의 아이들과 굶주린 아이들. 폭격과 포화, 무너지고 터뜨려지는 전쟁의 장면과 그 안에서 살아갈 이들의 아픔은 그나마 어느 정도 전이가되지만 솔직히 그 동안굶주림이라는 것에서는 그닥 실감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 것 같아, 비로소 알 것 같아.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나 전쟁과 굶주림 그 둘을 아파하고 걱정했을지를. 하도 배가 고픈 채로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절로 이런 소리가 나온다. "선생님, 정말로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어디에도 굶주림만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요. 아, 이제야 알 것 같아. 정생이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굶주린 아이들 걱정을 하고 그러셨는지……."
3.
지금 북녘은 말도 못한다지. 굶주림에 삼백만이나 죽어가던 구십년대 하반기 '고난의 행군' 때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해. 초록의 공명에서 돌리는 메일을 보니 지금 이 순간 하루 사오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나, 나는 도대체 무얼 보며 살고 있는 것인지. 처음이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건 통일문제연구소간사님이 보내준메일을 보면서였어. 백기완 선생님이 북녘으로 쌀 백 가마 보내기를 하려 한다고, 누구라도 한 뜻인 사람들은 십시일반 함께 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물론 북녘의 사정이야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그 사정이라는 것이 전혀 나아진 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그 메일을 받아볼 때는'왜 느닷없이, 지금?'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라 안에서는 대운하 문제니 영어몰입교육 같은 것이 중심 이슈에 가까웠고,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합의되면서 소 수입 문제가 막 일어서고 있었다. 나라 바깥에서는 중국의 지진이나 미얀마의 재난, 티베트 항쟁 같은 것이 저마다 굵직한 주제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고 말이다.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북녘에 양식이 모자라다는거야 그 전부터 계속되어온 어느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고,그런 정도로나 가슴 아파하면서 달마다 조금씩 보태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으니 어쨌건 일회성으로 보이는 그 일을 갑자기 왜 벌이시는 걸까, 하면서 못내 의아했던 것이었다. 마침 그 메일을 받고난 뒤의 주말에 마을에서 모내기가 있었으니고작 나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낭만스런 감상에 빠지기나 했어. 가을에 벼를 거두게 되면 그걸 찧어 쌀자루를 지고 백 선생님을 찾아뵙는 게 더 좋겠다, 그냥 이번 모금에 돈 만 원정도 한 구좌를 내느니 엉아들이 땀흘려 지은 쌀을 들고 직접 가면 더 좋지 않겠나 하며 말이다. 더우기 백 선생님과 먹통 엉아의 남다른 인연이 있으니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하면서……. 그런데 그게 아닌가 봐. 법륜스님은 이 일만으로도 꽤나 긴 단식을 하면서 정부에 호소했다지, 그러고 나서 보니까 며칠 뒤 한겨레에는 탈북새터민들이 간곡히 바라는 애원들을 담아 놓기도 했어.엠비 정권으로 바뀌면서 지난 십 년 동안 이어지던 대북 지원마저 틀어지게 되었으니 아주 꽉 막힌 절망이기만.
4.
정말 답답한 일이다. 그래서 좀 더 그에 대한 글들을 살피니 지금 북녘 사정이 정말 끔찍할만큼 어렵다 한다. 그런데도 도움을 외면하는 건 외려 한 나라에서 갈린 남쪽 뿐이라지. 그토록 으르렁거리며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이던 미국도 곡식을 오십만 톤이나 보낼 거라 약속했다 하고, 이탈리아에서도 오십만 유로의 지원금을 보낼 거라 하네. 어서 도와야 해, 아니, 나눠야 해. 내가 먹던 밥 한 공기 죽을 쑤어 나눠 먹더라도 어떻게든 나눠야 한다. '죽을 먹어도' 함께 먹어야 한다던 할아버지 얘기가 다시 떠올라. 미안해, 너의 배고픔을 알지 못하고 있었어.요즘 아고라 폐인들이 몹시 많은 것 같던데 아고라에서 이슈 청원이라는 것으로 서명을 받고 있다. 이십만 톤 긴급 지원으로 북녘의 아이들을 살리자는, 엠비 정권에 대한 청원. 아고라가 또 한 번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펑펑 쓰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휴전선 너머 그곳에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하기가 어렵다. 충분히 나누어 먹을 수 있을 텐데, 충분히 다 같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남쪽에서는 벌써 한 달을 넘도록 밥상에 좋지 못한 쇠고기가 올라올 것을 염려해 촛불로 물결을 이루고 있고, 북쪽에서는 아주 밥상이라는 것을 차려볼 수도 없어 죽음의 물결을 이룬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목숨보다 급하고 소중한 건 아무 것도 없어.
5.
[좋은벗들] 북한긴급캠페인 - 미안하다, 동포야
[녹색평론 34호] 죽을 먹어도 함께 살자 / 권정생.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