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0704]백팔 참회
시국법회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시국미사, 개신교 목회자들의 시국기도회에 이어 어제는 시청 앞 광장에서 불교계에서 주관하는 시국법회가 있었다. 엄마도 오전에 절에 다녀오더니 스님이 법문 도중 그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더니, 과연 시청 앞에는 평소에는 못 보았음직한 아주머니 보살들이 꽤나 많았다. 말 그대로 불법(佛法) 집회.
저녁 느즈막이 집을 나섰고,오랜만에 얼굴을 보는소방관 엉아랑 만나 같이 가기로 해. "거 물대포 쏘고 그러는 데로 형네 소방차는 출동하고 안 그랬나?" "그거야 우리 하는 일이 아니지. 출동은 아니지만 물 모자란다고 물 대달라 해서 물 대줬다가 욕 마이 들어먹었지." 종로에서 만나 청계천, 을지로 쪽으로 해 시청 뒤편으로 돌아들어가니 촛불을 든 '연꽃 소녀' 조형물이 예쁘게 서 있다. 벌써들 사람들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법회는 시작되었어. 양초부터 하나 얻어 아무 빈 자리나 가서 앉아야지 하면서 어디엘 가야 초를 나눠주나 하고 둘러보는데, 히야 예쁘다. 종이컵 둘레를 연꽃잎 모양으로 오려 붙여 놓았네.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오면 그 며칠 전부터 보살님들이 절에 모여 연등을 만드느라 손에 풀물이 들곤 하던데, 이 종이컵도 하나하나 그러한 분들 손이 간 거겠구나.
백팔 참회
처음에는 스님 말씀들이 잘 들리지는 않았다. 모여 앉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느라 그러기도 했고, 정말 여느 때하고는 다른 집회 분위기에 두리번거리게 되어 그러기도 했고, 아무튼 아직 내 마음이 뭔가를 들을 준비가 되지 못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몇 분 스님의 법어가 있고 난 뒤로 사회를 보시던 스님이 다음 순서는 백팔 참회문을 읽어 백팔 배를 하는 거라 했다.정말로 이 자리에서 백여덟 번이나 절을 하겠나 싶기도 했고, 무대 앞에 있는 스님들만 한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는데 그게 아닌 거였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나도 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지. 목탁 소리와 함께 한 배 한 배에 맞춰 참회문을 읽는데 어떤 이들은 잔디 위에서 정말로 절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합장을 해 반 배를 하는 것으로 대신 했다. 그렇게 시작한 백팔 배였다. 사회를 보는 스님이 시키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 시작한 거였는데 어느 순간 스님이 읽는 참회문들 하나하나가 몸 속으로 들어와 커다란 울림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말씀들에 온 몸을 기울이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백여덟 번이나 되는 그것이 다 끝나고 말았어. 솔직히 처음 시작한다 할 때는 백여덟 번이나 되는 그것을 언제 다 하나, 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았는데 전혀 길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을 가질 새가 없었어. 정말로 그 참회의 말씀들마다 내 몸을 숙이게 되었으니.
백팔 배를 마치고 둘러보니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그 백팔 참회문을 한 장씩 받아 들고 있네. 나도 그것 한 장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찾아 보니 누군가 깔고 앉았다가 그대로 두고 간 것이 있어 집어 들고는 흙을 털어 가방에 넣었다. 이런 백팔 배라면 집에 돌아가 날마다라도 하고 싶으니.
백팔 참회 기도를 마치고 나서 행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연등을 들고, 연꽃 촛불을 들고 남대문 쪽으로 돌아 다시 시청 광장으로.
비 그리고 오후 / 류선진
성찰과 떠들썩함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사제단의 시국미사부터 어제의 법회까지 많은 이들은 감동의 도가니였다는 평이 대세를 이루긴 하지만 촛불들이 가져온 어떤 역동성과 자발성이 묻혀 버린 것 같은 느낌, 종교인들이 앞장 서서무조건 못박아 말하는'비폭력' 혹은 '묵언' 행진이라는 것이 그 어떤 갑갑함을 주기도 했으니. 자유발언으로 대표되던 저마다 살아 꿈틀이던 광장의 토론과 학습, 실천의 모습들이 갑자기 그 어떤 분들의 말씀만으로 다 정리가 되어버리고 있는 또다른 일방의 흐름. 아무리 그 분들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준다 하더라도 분명 그 광장 안에는 다른 목소리로 말하고픈 이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물론 많이도 지쳐가고 있던 촛불을 다시 살리게 하는 울림의 기운을 주었고, '정치폭력 집회로 변질'되었다 공격하는 저 편의 의도를 무력화시켜주는 고마움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시민들의 적극적 자발성, 역동적 자기 표현에도 어느 만큼은 기운을 잃게 하지는 않았는가 몰라. 기우이기를, 종교계가 나서준 요 며칠의 시국기도회들이 촛불들에게 다시 한 번 몸을 낮춰 스스로의 삶을 떨리게 하는 것으로 다시금 비온 뒤 일어서는 풀들처럼 새롭게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기를. 그래서 오늘 있을 집회가 어떤 모습일지가 더욱 기대가 되기도 하는가 봐. 우리의 촛불이 스스로를 떨리게 하는 삶의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는 하되 자유로운 광장의 떠들썩한 즐거움마저 가두는 것이 되지는 않기를, 우리가 가는 길 자체가 평화이기는 해야 하되 그 싱그러운 자발성과 역동성만큼은 더욱 활짝만발하게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재잘재잘 떠들어후드닥 날아오르는새 떼처럼, 바람에 몸을 흔들어대는 나뭇잎처럼, 요리조리 미끄러져 다니는 물고기들처럼.
백팔 참회문.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