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0705] 선언과 기억
'승리'를 '선언'하다니
도무지 어떻게 나아가게 되는 건지 몰라 잘 들어가지 않던 대책회의 홈페이지니 안티엠비 까페, 아고라 같은 곳들을 찾아다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디 글이나 기사 같은 게 있으면 '7월 5일이 답입니다' 하는 댓글들이 주루룩 이어졌다던데 과연 엊그제 시청 광장 촛불은 그것으로 '답'이 된 것인지. 그 뒤로는 어찌하겠는지. 집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 함께 나간 조카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기에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나간 것이 막 행진이 시작할 즈음이었다. 무슨 얘기가 있었던 거지? 정말 국민 승리를 '선언'만 하고 만 것인지. 아, 나는 그런 선언은 옛날부터 정말 지긋지긋했어.반대를 선언할 수는 있어도, 싸움을 약속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 승리를 선언하다니. 이런 자족적 방식, 너무 오래 전부터 있어온 레토릭이었다. 이상한 승리주의적 관점에 도취되어 나아가야 할 길과 돌아보아야 할 것을 정확히 보려 하지 않는 것.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처럼 승리주의라는 것 또한 차갑게 경계해야 하는 것임은분명하다.
당황, 허탈
어느순간촛불들의 지도부처럼 여겨지고 있던 성직자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찾아보다 보니 사제단 신부님들은 어제 날짜('국민승리를 선언하는 뜻깊은 날') 광장의 시국미사와 단식기도회를 마치고 떠나면서 성명서를 낸 것이 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애초 시국법회를 8일까지 하겠다던 불교계 또한 예정하고 있던 계획을거뒀다는 소식이다.개신교나 원불교도 마찬가지. 이른바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에서는 앞으로 광장의 시국집회를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었다. 성직자 분들이 천막을 자진 철거해 나간 뒤부터 광장에 대하 경찰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지.
또다른 '지도부'
아무리 봐도 7월5일은 답이 아니었다.이 날 모여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답이라 생각했다면 그건정확하게도 오답에가까울 뿐이다.성직자 분들이 왜 여기에서 자리를 거두고 일어나시려 하는지 알 수가없어. 그 며칠 동안 지도부 아닌 지도부 노릇을 하시던 분들이갑자기 그렇게 일어서 버리고 나면어쩌자는것인지……. 솔직히 나는 종교인들의 시국집회라고는 4일에 있던 법회에 참석한 것이 다였지만 그 날 마치 정리 발언을 하듯 말하던 수경 스님의 얘기가 못내 불편했거든. 이제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이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는지를 똑똑히 지켜보는데 있다……'는 논조로 얘기하던 그것. 그 말은 결국 정부나 조중동에서 말하듯 이후의 문제 해결은 제도권에 맡기자, 그 감시 역할에 충실하자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지. 물론 종교계가 나서준 것이 다소 사그러들 처지에 놓이던 촛불집회에 아주 훌륭한 구원투수가 되어주기는 했지만,적잖이 들떠가기만 하는 듯한 기운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성찰의 기운을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고마운역할을 해 주기는 했지만나는 못내 불편함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왠지 그 분들의모습이 '지도부'의 어떤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아는 이 촛불광장에서낡은 행태의 운동, 어느 한 쪽으로 질러 몰아가고자 하는 지도부를거부하기도 했지만 성직자 분들이 또다른 '지도부'가 되는 듯한 모습 또한아니다 싶긴 마찬가지였어. 그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목사님과 스님들, 그리고 교무님들께 바란 것은 우리에게 또다른 '지도부'가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거였거든.시국 법회 때도 그랬지. 수경 스님의 발언 도중 어느 시민이 답답함을참지 못하고 한 구석에서 일어나 무어라 소리 높여 항의를 하듯 자기 의견을 떠들어 말했어. 그러자 거기에 모여 있던여러 사람들이 그 시민의 입을 막고 대열 바깥으로 밀어내는 모습이 보였어. 아니, 왜그랬어야만 하는지.이 촛불의 힘은 바로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다 귀하게 여기는 토론의 정신, 광장의 정신 말하자면 아고라로 대표되는 자유토론과 발언의 힘에서나온 것이 아니었는지. 그렇담그 아저씨에게도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지.그 아저씨의 말이 정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발언 기회를 얻어 그에 대한 반론을 또다시자유발언으로 이으면 되는 거였어. 그게 어디법회에서 뿐이었겠는지.그 자리의 시국 미사나 시국 예배에서도 마찬가지였는 걸.성직자 분들은 촛불 광장에성찰의 힘을 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자발성과 역동성, 아고라와 같은자유 토론의 힘만큼은덮어버리고 말았어. 그리고는 그 촛불광장에서 또다른 어떤 '권위'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 그분들은 원치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지도부'를 거부하던 그 광장에서 자발적으로'지도부'를 받아들이게 한 모습이었어.
구원자는 없다
이 촛불의 광장은 누군가 확고하게 이끌어주는 이들이 있지도 않았고, 그 누군가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았어.혹시라도 그 누군가가 그 위치에 서고자 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거부하기도 했고 말이지.많은 이들이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일까?커다란 감동으로다가왔던 사제단의 미사부터 해서 그 뒤로 이어져온 성직자들의 모습에 어쩌면 그 지친 마음들은 마치 그 분들을 하나의 구원자처럼 여기고 있었는지 몰라. 안타까운 거라면 신부님, 목사님, 스님, 교무님들이 스스로 그것을왜 경계하려 하지 않으셨는지. 신부와 수녀님들이 나가는 길을 촛불대중들이 길을 만들어 터주고, 스님들이 연등행렬을 한 뒤에야 시민들은 그 뒤를 따르게 하는 식의익숙하지 않은 광장의 질서, 그건 또다른 권위가 되고 말았거든. 그냥내가 바란 것은 신부님, 수녀님들이 앞서는 길을 시민들이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이 나갈 길을 시민들이 길을 열어주듯 터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속에 섞여촛불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거야. 촛불 초딩이 있고, 촛불 유모차가 있고, 촛불 백수가 있고, 촛불 소녀, 촛불 넥타이가섞여 있듯 그 사이사이에 촛불 신부님과 촛불 목사님, 촛불 스님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기를.권위의 질서가 아니라 연대의 질서이기를, 지도부가 아니라 친구이기를.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 (Qui A Tue Grand Maman) - 미쉘 뽈라네프 (Michel polnareff)
도청의 기억
이것 봐. 어떻게 되려는지. 성직자들의 천막이 다 빠져버리고 난 뒤로그곳은 바로광장을 빼앗기다시피 되었어.지도부가 없기에 공안당국에서조차 누구를 잡아들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지도부도 되고 배후도 되어 촛불을 살려오고 있었지만, 마치 지도부 같던 그 누군가가 빠지고 난 뒤로 어떤 공황 비슷한느낌에 이번에는 우리가 우왕좌왕하게 되었는 걸. 어째야 하나 몰라, 정말 이대로 '승리'를 '선언'한 채 지켜보기만 해야 할 뿐인 것인지. 아,텅 비어 버리는 듯한 시청 앞 모습을 보면서, 시청 앞에서 빠져나가는 어떤 행렬을 보면서나는 왜저 남녘, 빛고을이라 불리는 도시의 도청을 빠져나가던지도부의 모습이 연상되는지모르겠어.오늘 하루 더 서울에 있을 건데시청 광장에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