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0707] 작고 가난한 예배
작고 가난한 예배
시청 앞 지하철 역에 내린 건 저녁 일곱 시 쯤. 광장으로 올라 먼저 나와 있던 후배 녀석을 만났는데 도무지 이게 어찌된 일인지. 뉴스 검색으로 그곳이 천막들이 털렸다는, 전경 버스로 꽉 막혀 있더라는 내용을 보기야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주말까지만 해도 날마다 몇만 개의 촛불이, 그리고 오십만의 불꽃이 넘실대던그곳이 어떻게 그 정도로 빈 바람만 남아 있게 되었는지.겨우 백여 명 되는 이들만이 띄엄띄엄 잔디밭 둘레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며칠 째 들고 다녔을 구겨진 손피켓 하나씩을 가방에서 꺼내. 머리통이라도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그렇게나마 모인 이들은가녀리게 서 있는 천막 하나 앞으로 모여 앉기를 시작했고, 그 자리를 지키던 광우병기독교대책위의 촛불교회목사님들과 함께작고 가난한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나직하게 부르기 시작한 임을 위한 행진곡.노랫말로 있는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나부'끼는 상황이 그대로 절감되는 듯 했다. 아니, 깃발이라 해야조그마한 촛불교회 깃발 하나, 그리고민노당성동구위원회에서 나온 깃발 하나가다였어.
원천봉쇄 혹은 불법감금이십 분이나 지났을까, 막 예배가 시작할 즈음 경찰들은 그나마 내 주고 있던 길마저 틀어막았다.경찰 버스가 둘러싼 가운데 바깥으로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올 수도없이 완벽하게 갇혀버린 장벽.그 때야 퇴근길로 시청광장을찾는 이들에게는 광장이 '원천봉쇄'된 것이었고, 그보다 좀 더 일찍 광장에 들어올 수 있던 이들에게는 '불법감금'이 된 상황.조금 늦었더라면나 또한 광장에발을 들여놓지 못한 채장벽너머에 발이 묶여 있어야 했겠지.광장 안에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다더라, 언론에는 주최측 추산삼백이라 했다지만세어본 사람들 말로는 백육십에서 백칠십 정도가 되었다던가.
(어느 기사를 보니 우리가 앉은 자리가 사진기에 잡혀 있어. 하긴 집회 인원이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저기 난지도 얼굴 보인다.)
작고 가난한 함성
지난 두 달 이어져 온 그 많던 촛불들, 어쩌면 이렇게 한 순간에 다 사그라들 수가 있는지. 어느만큼씩 그 수가 줄고 줄어 초라해지고 있었다면 이 정도로나 놀라지는 않았는지 몰라. 엊그제의 그 수십만 불꽃들은 무엇이었는지, '승리'를 '선언'하고 난 뒤로 그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 물음에 붙들려 나는 아무 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예배는 길지 않았고, 몇 사람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고, 이백 명도 채 되지 않는 광장 안의 사람들은 길목을 가로막은 경찰들 앞으로 가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기도 해. 경찰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안에서 함성을 지르면 장벽 너머 광장 바깥의 사람들이 화답을 하듯 함성을 질러. 작고 가난한 함성들만이 그렇게 장벽을 사이에 두고 넘나들어. 광장 안의 사람들은 광장 둘레를 세 바퀴 돌았고, 그리 돌고 난 뒤에는 마치 강강술래 진을 짜듯 광장을 한 줄로 두르고 섰어. 사람이 얼마 없으니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을만한 간격으로 설 수도 없어. 좀 더 간격을 넓게, 좀 더 벌려가면서.
잘못 알고 있던 것
잘못 알고 있던 것이 있었다. 종교인 협의회가 주관하는 시국집회는 앞으로 없을 거라는, 원불교에서 마련하기로 한 법회도, 개신교의 기도회도 없을 거라는 기사를 본 거였지만촛불 예배를 진행하는 향린의 김경호 목사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어떻게 그런 언론플레이가 되었는지 몰라도 기독교에서도 원불교에서도 시국 집회를취소하거나 보류한다는 얘기는 한 적이 없다는. 그래, 혹시 내가 기사를 띄엄띄엄 본 건가 싶어 어제 본 한겨레를 다시 들춰봤지만거기에는 본 그대로였다.글쎄, 확실히 내부조율이 되지 못한 채로 보도자료가 나갔거나 그러했겠지.아무튼 아니라는 거야. 예배를 하던 중 기독교 대책회의 쪽 누군가가 나와 말하기를,앞으로도 끝까지 그 촛불 교회를 지켜내겠다고, 천막을 뜯어내면 깃발로라도, 깃발을 빼앗아가면 몸으로라도, 몸이 아니면 영혼으로라도 끝까지, 촛불을 꺼뜨리지 않겠다고……. 그말을 들으면서 영어색하기만 한 '아멘'이라는말을, 조그맣게 입술을 움직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두 대의 피아노 연주)/ 민족음악연구회
절박함의 싸움
밤 열두 시쯤 되었을까, 그 때까지 광장에 남아 있던 이들은, 글쎄 이렇게 말해도 되는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노숙인이라 할 만한 분들이 반을 넘어 보였다. 저녁에 광장에 닿았을 때도, 백육칠십 명의 작은 집회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들을 무시하거나 낮추어 보는 어떤 마음이어서가 아니라 다들 떠나가고 난 광장을 지키는 그 분들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삼십 년 전 어느 항쟁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뒤로 갈수록 그 항쟁의 주역이 되었던 이들은, 그리고 끝끝내 그 항쟁을 지켰던 이들은 걸인과 부랑아, 구두닦이, 날품팔이 노동자들이었다는. 선언문과 성명서로 운동을 하는 지식인들이 아니라 언제나 싸움의 맨 마지막에는 더 잃을 것 없는, 삶의 절박함에 가득한 이들이었다는.저 멀리 삼일운동이라는 것도 서른셋의 대표들의 선언이 아니라 무지렁이 백성들의 질긴 싸움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면서. 글쎄, 그 광장에서 밤을 지새웠을 이들……. 그래, 우리는 이 촛불의 싸움을 말하면서 '물처럼 싸워야 한다'는 비유를 곧잘 쓰곤 했어.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라며, 막히면 돌아가는 거라며, 끝내 모이게 되는 거라며, 막혔을 때 억지로 뚫고 가려하지 말자며, 때로는 땅밑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광장만을 고집하지 말고일상의 생활로옮길 수도 있지 않겠냐는…….다들 좋은 말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비유들이저마다 아전인수 격으로 쓰이기도 하는 걸. 물론이야, 물처럼 싸우는 것이 가장 바른 모습이야.그런데그 물이라는 것이 한 번넘치기 시작하면 얼마나무서운 것인지,끝내 물길이고 무엇이고 모든 것을무너뜨리듯 철철 흘러넘치는 것도 바로 그 물이라는 것을. 물로 보지 마시라,물이라는 것이 한 번 몰아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기억해야만 해. 머지 않아봇둑들이 다시 터지기 시작할 거야. 지금은 이미 광우병 쇠고기 수입 싸움을 넘어섰는 걸. 이 미친 세상, 절박함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어. 광장을 지키는 노숙인들이 물론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깊고도 그윽한 눈빛을 봐. 그 분들이 갈 곳 없어 그 자리로 찾아들었다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야. 어쩌면 머지않아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