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주

냉이로그 2009. 7. 5. 03:48







 철수 아저씨
엽서에서 꽃이 떨구는 눈물 방울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나는 오월 어느 봄날을 떠올려. 조탑에서 국밥을 얻어먹고 봉정사, 안동댐을 들러 암산에 있는 창동이 아저씨네 매운탕집에서 한참을 놀고난 뒤. 그러고는 예정에도 없이 박달재 밑에 있는 아저씨네 집으로들 넘어가. 방 안 가득 화선지에 찍은 작품들을 병풍처럼 두른 작업실 한 켠에서 사과주를 놓고 둘러 앉았다. 도수가 사십이라던가 오십이라던가, 독하기로 치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술 앞에서는 다들 사슴이라도 된 듯 순해졌다. 사과 향이 은은히 코끝을 간질여 그런 것인지,그냥 담근 것이 아니라 맑게 증류한 것을 내린 것이라 그런 것인지 이미 취해있던 이들은 오히려 슬슬 깨어나는 듯 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불러 하는 얘기, 작정을 하고 하신 말씀이었는지 아님 지나치듯 안부로 건넨 얘기였는지는 모르겠어. 가끔 네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술을 너무 많이 먹더라 며 시작한 말이었다.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고, 작품 하는 것을 무슨 감이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날마다 작품에 들이는 노동을 쉬어서는 안된다 하는 그것은 그 동안 내가 핑계로 삼아오던 것을 와장창 뒤엎어주는 말이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동안 낭만과 퇴폐의 경계에서 너무도 퇴폐로 기울어만 있었는지 모른다. 그 둘을 가늠하게 하는 것은 바탕에 있는 생활인 것을, 나는 그것없이 낭만 아닌 퇴폐에서 허우적대기만 했는지도 몰라. 꽃이 운다고 어디 울기만 하겠나. 우는 순간에도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을 거고, 제 안에서 열매와 씨앗을 키우는 것을. 그러나 나는 언제나 울 줄 밖에 몰라, 징얼거릴 줄 밖에 몰랐다. 이상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사과주 향이 나는 것만 같아. 목을 타고 넘어갈 때나 뱃속에 퍼질 때는 뜨겁고 독하지만 은은하고도 부드럽던.




화양연화 / 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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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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