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과 시국선언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시국선언이 준비되고 있다. 하나는 더작가 까페에서 제안해서 하고 있는 '어린이책 글작가와 그림작가들의 시국선언'이고, 또 하나는 작은진보 까페에서 함께 참여하고 있는 '범출판인 시국선언'이다.

말 그대로 더작가 까페 제안의 선언은 어린이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번역가, 평론가, 습작가 포함)의 선언인데 제안한지 닷새 만에 170명 정도의 작가들이 참여를 잇고 있다. 이 선언은 앞으로 내일까지 신청을 더 받아 7월 2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11시)을 갖기로 하고, 그 선언문은 7월 3일경향과 한겨레에통광고 형식으로 낼 것을 준비하고 있다.

작은진보 까페에서참여를 제안하고 있는 '범출판인 시국선언' 또한 말 그대로 출판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국선언으로 준비되고 있다. 여기에 어린이책을 쓰고 그리고 만들고, 읽고, 알리는 이들도 누구나 뜻을 모아참여하는 선언이다.아직 구체적인 선언 발표 일정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더 조율을 하고 있다 하는데, 선언 발표와 함께 그 성명서를 참여하는 출판사에서 출고하는 책마다 간지로끼워넣자는 등다양한의견들로 준비되고 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두 가지 시국선언 제안이 비슷한 지형에서 따로 제안되고 있어 어리둥절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어쨌든 어린이책을 만들고 함께 읽는 이들이 시대의 요구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모은다는 것에 반가울 뿐이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에 한 이름을 두 번씩 올린다는 것도 뭔가 어색한 감이 있어 '어린이책 작가 선언'에만 참여하고 있지만두 선언 모두 힘있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아쉬움

나야 뭐 워낙에 '통큰단결'같은 막돼먹은 주장이나 중앙집권식실천 따위를 아주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오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어린이책 관련인들의 시국선언이 어정쩡하게 따로 진행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뭐랄까, 그 아쉬움이나 어리둥절함은 올초 '더작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과 '작은진보(작은 실천에서 시작하는 어린이책 진보모임)'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때부터 느꼈던 것인데, 시국선언에서조차 약간의 엇박자를 두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동안 일상적으로 가져온 활동에서도 세상에 대한 발언의 내용이 그리 다르지 않았고, 이번 시국선언에서도 선언의 내용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 보여지고 있으니 그 아쉬움이 더한 것이다. 만약 세상에 대한 발언이나 실천 방식, 선언의 내용이 어떤 차이를 보인다면 그야말로 내 선택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아직 그러한 부분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이책 동네에는 올초 시작한 그 두 모임 말고도 꾸준히 사회적 실천을 해온 어린이도서연구회나 어린이책시민연대 같은 시민모임이 있어왔고, 그 밖에도 어린이책 전문서점들과 작은 어린이도서관 모임, 어린이책출판영업자들 모임 같은 서로 비슷한 지형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요즈음 그 지형 위의 연대나 넘나듦이 어색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싶은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비슷한 지형 위에서도 일상적으로는 저마다 자신의 옷에 걸맞는활동을 중심에 두는 것이 기본이고,각개 실천과 발언을 해나가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고 소중하겠지만 그 개별 활동이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서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저마다 나름의 독자 활동을 제 몸에 맞게 밀고 나가되 그 독자적 실천들이 서로 손을 맞잡아 더욱 힘을 키울 수 있을 때 '따로또같이'만들어가는 모습은누구나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지.

지금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국'이라는 것도 당장촌각을 다퉈 오늘내일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닐진대 더작가나 작은진보의 시국선언 제안 단위들에서 좀 더 조율과 논의를 가졌으면 어린이책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그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좀 드넓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더작가에서 제안하는 선언이 작가들만으로 범위가 제한된 것이 아쉽고, 작은진보가 참여를제안하는범출판인 선언은그 대상이나 범위가 모호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또한 어느만큼의 아쉬움이 있다. 그야말로 어린이책으로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그리는 이들이 선언일 수 있었다면출판 편집인과 어린이책 시민활동가들이 자유롭게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자리가 되면서, 작가들로서도 어느 쪽 선언에 동참해야 하나 하는 얄궂은 망설임 같은 것 없이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기왕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한 가지 더 보태면,어린이책 진영에서 굳이 작가군을 따로 묶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한 시대에서 문화예술인, 창작자, 작가 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나름의 역할과 위상을 가졌다 할 수 있겠지만 어린이책 쪽에서는 성인문학을 하는 쪽과 사정이 많이 달라 보인다. 어린이책에서는 출판편집자가함께 창작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일러스트를 하는 그림작가 만큼이나 디자이너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책 시민활동가(작은어린이도서관 활동가나 어린이책전문서점 포함)들은평론가 이상의 비평 역할을 하고 있으니 사실글작가와 그림작가 만으로 작가군을 무리짓는다거나 글작가, 그림작가, 비평가 만으로선을 긋는것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고그리 온당치 못해 보인다.일반 문단에서 작가회의 같은 그룹이 그들만으로 나름의 위상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과는 다르게 어린이책 진영에서는 언급한 그 모든 이들이 함께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사실 그동안에도어린이책을 통한 어린이의 삶과 문화를 둘러싼 일상 활동들은 언제나 함께 해오고 있질 않았던가. 그런데굳이 특정 실천이나 자리에서작가군을 따로 묶어야 한다는 건어색하기도 할 뿐더러 오히려자신의 지평을 좁히는 꼴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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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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