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냉이로그 2009. 7. 9. 02:00

깜깜 밤중에야 찾아들어오는 산채.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발에 무언가 채인다. 더러 우체부 아저씨가소포를 가져올 때면그렇게문을 열어 살짝 놓고가곤 했으니 그저 또 뭔가가 와 있나보다 했다.전에는 문에다가어느 날몇 시에 다시 올 거라는, 아님 언제까지 우체국으로 찾으러 나오라는 스티커를 붙이곤 했는데이젠 그냥 놓고 가는 것이다. 마루가 넓어 불을 켜려면 성큼성큼 열 발짝은 가야 해.벽을 더듬어 불을 켜고 되돌아와 보니 우편물이 아니라 책 몇 권이랑 꺼먼 비닐봉지. 책은 이 달 새로 나온 <<글과그림>>이고, 꺼먼 봉지 안에는 주먹만큼 굵은 햇감자가한 보따리 담겨 있다. 그리고 책이랑 같이 놓인 깨끗한 편지지 한 묶음. 아아, 이게 그건가 보다. 한참 전에 밥풀 언니가 어디 공정무역하는 곳에서 코끼리똥으로 만든 재생종이편지지를 샀다더니….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마을에 살아도 마을에 있지 않은 것처럼 지내온 것이.말하기에는 몹시도 쑥스럽지만 그래 글을 쓴답시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면 이렇게 밤 열두 시가 넘어야 들어온다. 엊그제는 마을 언니엉아들이 모여 7월호 책을 봉투에 담아 발송 일을 했다 하고, 주말에는 깨모를 옮겨 심고 감자를 캤다 하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있질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회보 발송을 한다는 것도, 깨모 심기와 감자 캐기를 한다는 것조차 아예 모르고 있었다.

맨날 빈 집으로 덩그라니 있는 이 산채에 누군가 다녀갔다. 함께 모여 감자를 캐던언니엉아들 가운데 누군가. 내일부터는도시락에이 감자알도 함께 삶아가야지. 코끼리똥으로 만들었다는 편지지도 가방에 넣고 다니며졸음이오거나 딴 생각이들 때면끄적거려야지.부끄러움 같은 건 그만 생각하고 힘을 내자, 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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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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