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굴 속의 시간 2012. 12. 25. 23:44

 

 

0. 

 

 석가탑에서 일을 하다 짬짬이 찍어, 컴퓨터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있던 것들을 한 곳에 정리하다가 보게 된 사진 하나. 보면서 슬쩍 웃음이 나왔다. 이때를 보니까 지금은 많이 허얘졌구나, 이때는 진짜 시커맸다. 오매야, 이때만 해도 홑겹의 얇은 옷을 입고 일을 했더랬네. 정작 날을 헤아리자면 그리 오랜 것도 아니건만, 벌써 한참 전인 것 같아 기분이 남달라. 그때, 착공식을 준비하느라 탑 꼭대기를 오르락거리다가 기념 사진이라도 하나 남기자며 노반장님이 한 팡 찍어주었던. 그걸 들여다보다가 사진 속, 얼굴을 본다, 나를 본다.

 

 

1.

 

 주말부터 해서 내일까지 당직 휴무를 쓰기로 했으니, 이제 석가탑에 일을 하러 가는 날은 사흘 밖에 남질 않았다. 내일은 대전 청사로 넘어가 자격증을 발급받고 경주로 복귀. 막상 정리를 하자니 그곳에도 정이 참 많이 들었다. 함께 일을 하던 형님들은 물론, 그곳의 나이 어린 연구원 동생들까지, 그리고 아침마다 출근길에 언덕을 올라 마주하던 일주문과 불국사 경내의 구석구석. 덩그라니 놓여있던 컨테이너 현장사무실, 그리고 점점 몸을 하나씩 떼어가고 있는 석가여래상주설법탑.

 

 

2.

 

 기술자가 되었다. 멍하니 닷새를 보냈다. 게다가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현장을 공백없이 지켜야 하니, 그동안 고마운 이들, 함께 고생한 이들을 찾아 인사를 하는 거는 여태 하나도 하질 못했다. 기술자라는 이름은 아직 내게 낯설고, 또한 두렵다. 아마 어느 현장을 맡아 나가게 될지는 모르나, 여태 나는 시키는 일밖에 할 줄을 몰라, 그것도 늘 어설퍼서 허둥될 때가 많아, 이런 초짜 기술자일 뿐이니 앞으로 한 몇 년은 또 얼마나 버벅대며 맨땅 박치기를 해야 할까. 그러나 또한 그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겠는지, 결코 더 좋은 자리로 가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무겁고, 더 고되고, 더 외로운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겠지. 내 모자람과 내 못갖춤에 대해서는 더없이 겸손해야 한다. 지금까지보다 더 깊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만큼 당당할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할 것.

 

 

3.

 

 그때도 이맘이었다. 스물여덟의 겨울,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그땐 그렇게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마흔의 겨울, 전혀 다른 자리에서 기술자라는 이름을. 스물여덟, 그 뒤로 몇 권의 책, 그리고 서른다섯에 목수학교에 들어가 대패와 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만져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주로 길에 있었다. 그곳은 전쟁이 벌어지던 이역만리이기도 했고, 전쟁과 다름없던 도시의 광장이거나 가난을 배반하는 무수한 욕망들의 길목이기도 했다. 아니, 실은 그곳이 어디였건 진정 평화를 모른 채 소용돌이치던 건 다름아닌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형님의 뒤를 따라 들어간 목수학교, 형님을 쫓아하던 집을 짓는 일. 형님은 가고 없고, 집짓는 공부를 시작했다.

 

 

4.

 

 스물여덟 겨울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한 옥탑방에서. 그 뒤로 이제껏 석고개로, 죽변으로, 사잇골로, 그리고 이곳 영월까지. 매번 서너 시간이 넘는 길에 이삿짐을 싸고 옮겨다녔다. 게다가 그러던 동안에도 아마 집에 머물던 시간보다 어디 딴 데를 헤매던 시간이 더 많았을 거. 하긴, 여태 내게는 어느 한 곳도 오래 머문 기억이 없다. 어려부터 가난한 어머니는 자주 이사를 해야했고, 동네 친구를 사귈 무렵부터는 엄마집에서 아버지집으로, 다시 엄마집으로, 그러다간 일찌감치 집 밖을 떠돌아. 매번 떠돌아다니면서도 언제나 마음으로는 어디엔가 뿌리를 두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돌아보면 그곳 역시 잠시 마물다 떠나는 곳이 되고말 뿐. 장가를 들었다. 아마 머지않아 아기도 낳게 되겠지. 그러나 이제는 지금껏만큼이나, 아마도 그보다 적지않게 더 떠돌며 지내게 될 것이다. 현장을 옮겨다닐 때마다, 짧게는 서너달에서 길게는 한두 해까지, 망치소리 나는 곳, 돌깨는 소리가 울려대는 곳들을 따라.  

 

 

5.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이 시간을 굴 속에 드는 거라 했다. 딴에는 삼 년이라 못을 박았더랬는데, 어김없이 꽉 채우고 말았다. 쑥과 마늘로 보낸 굴 속의 시간, 나는 과연 어떤 얼굴로 그 굴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한 인간이 되기는 하였을까, 과연 지금 내 얼굴은 무엇을 증거하고 있을까, 혹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굴 속 시간이라 했지만, 우스개 표현을 삼아 쑥과 마늘이라 했지만, 그렇다 하여 그 시간이 온전히 인고의 무엇만은 아니. 어쩌면 그 굴 속은 숨어있기에 좋았고, 외면하기에 좋았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행복했다. 집을 배우는 일은 즐거웠고, 한꺼풀을 넘어설 때면 짜릿하고 설레었다. 세상 무엇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겠으나, 집이라는 것을 통해 그 집을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 그 집을 짓고자 했던 이들의 필요와 요구, 욕망과 꿈, 그 집이 지어지기까지 그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 집을 배우는 일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또 한 가지 방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세상을, 세계를, 삶을, 사람을. 그러니 이제 굴 속을 벗어나고 있는 건 집을 배우는 거를 멈춘다는 것이 아니다. 굴 속에서가 아니라 굴 밖으로 나가 집을 배우겠다는 것. 더는 웅크려있지도, 외면하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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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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