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굴 속의 시간 2012. 11. 13. 19:03

 

 길바닥을 보며 뛰어가다가 깜짝 놀라. 

 

  이게 모게?

 

 절 한 쪽에는 스님들이며 절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도 역시 출근을 하며 그리로 올라가. 그러면 길의 중턱에 컨테이너 박스로 마련해 놓은 현장사무소에 닿는다. 그러니 그 길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거야. 문을 따고 현장사무소까진 늘 차로 올라 그 위에 대놓곤 하니까. 걸을 때에야 그 뒷길이 아니라 불이문이 있는 옛 정문이거나 천왕문이 나 있는 입구로 다니기 마련.

 그런데 오늘 현장으로 중요한 손님들이 다녀갔고, 일을 다 마치고 난 뒤에 현장사무소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는 길 배웅을 했다. 그리고 손님들 차가 문쪽으로 내려갈 때 소장님이 그러는 거지. 얼른 뛰어내려가 문 따드려! 자동차만 드나드는 그 문은 늘 닫아놓기 때문에 차를 타고 들고날 땐 늘 운전석에서 내려 문을 열었다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 차를 내놓고 나서는 다시 세워두고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아놓고 다시 운전석에 올라야 하는. 말하자면 조금 귀찮기도 한 그런 문인데다, 처음인 사람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기 마련. 

 얼른 뛰어가 문 따드리란 말에 부다다다다 그 길을 달려내려갔다. 그러고보니 그 길을 밟아 내려간 길이 처음이었어. 어쨌든 그리로 내려가 나가는 손님들 자동차를 내보내준 뒤 문을 닫고 다시 걸어 올라오는데, 어머나 이게 모야.  

 

 

 잿빛 콘크리트 위로 그보다 좀 진하게 남아 있는 얼굴들.  뛰어내려가면서 깜짝 놀란 그것들이 걸어올라올 때는 하나하나 선명하게 들어왔다. 세상에나, 이건!

 

 

 어쩜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을 수가 있는지. 그 얼룩얼룩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떨어진 단풍 이파리. 이 길을 깔 때도 지금처럼 가을이었을까? 그래서 공구리를 쳤을 때 나뭇잎들이 떨어져 그대로 화석처럼 그 문양들을 남기고 있었을까? 현장사무소에 올라와 사람들에게 이것 봤느냐고, 이 길바닥 좀 자세히 보라고, 온통 별천지, 하나하나 단풍잎 자국으로 저 길 끝까지 덮여 있다고…. 다들 처음 보는 얼굴로 신기해하던.

 

 길 위를 가득 덮은 단풍잎, 그 이파리들에 물이 나와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 위로  물을 들여놓은 거. 마치 한 잎 한 잎 탁본을 떠서 길 전체를 가득 메워놓기라도 하듯.

 

 이 길 위를 가득. 처음에 그 문을 따주러 뛰어내려가다가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홀랑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져. 그래서 그걸 줍느라 땅바닥을 보았을 때, 그때 정말 얼마나 깜짝 놀랐더랬는지. 그러나 그땐 문부터 열어주어야 하기에 다시 뛰어내려가는데, 달려가는 내내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이 공구리 바닥에 웬 별 무늬가 이렇게 가득할까, 말그대로 별천지 위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올라오면서, 그 별 하나하나가 물든 나뭇잎, 그 이파리들의 자국이었다는 걸.   

 

 으아아, 이 길은 정말 내마음의주단을깔고그대오는길목에서서예쁜꽃길로그댈맞으리다. 그게 아니면 가시는걸음걸음놓인그꽃을사뿐히즈려밟고가시옵서서거나. 작은별들로 가득한 은하수길, 나뭇잎의 강물. 아, 저 위를 달려내려갈 때의 그 어리둥절하면서도 황홀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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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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