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 서까래 초장 깎기 / 3월 26일


거기, 사잇골



주말에는 사잇골엘 다녀왔다. 거지들의 나라, 시시한 꿈을 꾸는 곳, 우리는 식구다, 됐냐? 농사를 짓고 집을 짓는 곳, 그리고 나도 아마 그곳에서 집 짓는 일로 심부름을 하게 될 곳. 대목인지 두목인지 엉아들이 지은 일간도 보았고, 엉아의 공구들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했다. 술은, 조금만 마셨다. 아니, 많이 먹고 싶었는데 많이 못 먹었다. 졸거나 잔 시간이 많았다. 잔다고 해 놓고는 윗채 잘 드나들지 않는 방에서 그냥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좋아. 꼬맹이들이랑 목욕탕엘 다녀왔고, 노래를 불렀고,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아, 어쩌면 정말로 내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 그 작은 오두막집과 그 뒤로 올라가서 본 언덕. 그 언덕의 할미꽃, 진달래……. 내게 허락된 자유. 그래서 자유라는 것에대해 한참을 생각했는데 언제나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니었고, 그 어떤 틀도 아니었다. 내가 자유롭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자유를 버린 대가로비빌 게 많아 스스로 그것을 택했을 뿐. 또는 내가 지어온 잘못이나 저지른 짓들에 꼬리를 붙잡혀 어쩌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그 어느 귀퉁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해 왔거나. 자유롭게 살아라 하는 말은 선물이라기에는 너무 어려운 거. 하지만 그 선물 고맙게 받겠습니다. 아, 그러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할까, 아님 뻔뻔해져야 할까, 벌거숭이가 되어야 할까. 목수학교로 돌아오던 밤길, 간곡리 다리 너머, 달빛이 얼마나 예뻤는지 누가 보았을까, 얼마나 얼마나…

강의실 교육



아침에는 실내 강의. 아마 지난 주 노동부에서 다녀간 뒤 여차 저차 한 과정 끝에 이번 한 주일은 아침마다 강의실 이론 공부를 한 시간씩 하기로 된 모양이다. 오늘은 따로 내용을 잡아 수업을 한 것은 아니고, 그동안 실습을 해오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교수님께 묻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더불어 이번 한 주간 아침 이론 교육 시간에 특별히 다루기를 바라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교육생들이 주로 말한 것들은 (다른 내용들이 더 있기도 했지만 아마 내가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이해를 하지도, 들으며 공책에 받아 적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한옥 집짓기를 하면서 나오는 여러 가지 말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거였다. 서까래 깎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어느 자리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장여니 도리, 보, 창방, 보아지, 포(주심포, 다포)…… 같은 말이 나오거나 지붕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달리 말하는 집의 형태에 대한 말도 적지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교육생 분들도 그러한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지금까지 말을 몰라 어려워한 이가 나만은 아니었구나 싶어 적이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그러한 용어나 개념들이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앞으로 집을 지어가면서 자연스레 귀에 익고 개념이 설 거라 하시지만, 배워가는 중간 중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앞에서 답답한 마음이 많았다. 앞으로는 원 교수님이 따로 26기 홈페이지에 하나하나 올려 주겠다 했으니 짬짬이 봐나가야겠다. 용어에 대한 것 말고 또 하나 교육생 분들이 질문한 것은 도면에 대한 거였다. 도면을 직접 그리는 거야 둘째 치더라도 도면을 읽는 방법만이라도 알았으면 싶다는 말이었는데 그 또한 나도 답답해하고 있던 거였다. 안 그래도 지난 주 금요일 교육 마칠 즈음해서 각 조에 하나씩 우리가 지어갈 집의 도면을 나눠줬는데, 그것 앞에서 나는 까막눈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교수님은 나눠준 것의 맨 앞장에 있는 것이 평면도라 하면서, 평면도라는 것은 지상에서 일 미터 높이를 수평으로 잘라 내려다 본 집의 단면이라는 것부터 설명했다. 그러면서 옛날 목수들은 다른 도면들(측면도, 양시도…) 없이 그 한 장만으로 다 집을 지었다 했다. 그것을 ‘도량판’이라 한다면서. 어쩌면 한옥에서 도면은 크게 중요치 않은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원 교수님은 일반 건축 방식과 이 교수님의 방식(예로부터 전해온 목수들의 방식)을 견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한옥은 부재를 깎아 짜 맞춰 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장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응용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인 듯싶다. 현장의 오랜 경험이란 것은 다름 아닌 집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일 테고, 그 집을 지을 때 쓰는 부재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각 부재들이 어떤 자리에서 서로 물리는지, 그 부재들이 어디로 힘을 받고 어떻게 힘을 나누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일 거다. 실제로도 한옥을 짓는 데에는 부재 도면이 따로 없다 하는데 그 까닭은 원자재 상황(원목이 심하게 굽었다거나 굵기에 맞는 원목이지만 길이가 조금 못 미치거나 하는 경우)에 따라 규격에 꼭 맞는 부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게다가 부재들을 가지고 집을 세울 때 어차피 그 부재들을 꽉 짜 맞추기 위해서는 닿거나 무는 부분들을 조금씩 깎아 내고 다듬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일정한 규격의 틀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각 부재들이 어떠한 자리에서 어떤 구실을 하며 무엇을 위해 짜들어 가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실제 그것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그 집에 꼭 맞는 부재로 다듬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장 선자 서까래 깎기


강의실 교육을 마치고 바로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아직 몸이 덜 낫기도 한데다가 주말 이틀을 건너뛰어 그런지 몸 움직이는 게 가볍지 못했다. 바로 작업장에서 교육이 시작했으면 체조에 우리 춤으로 몸 풀기까지 했을 텐데, 오늘은 그것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 조는 지난 금요일 새로 먹줄을 놓다가 만 일부터 다시. 그러니 처음 중심선을 잡아 먹선을 놓았던 부분 가운데에도 새로 대패질로 밀어내야 할 곳이 많았다. 전기 대패로 밀고, 손대패로 밀어 자른 면을 평평하게 다듬기. 하지만 자른 면을 대패로 깎는다 해서 흠 없이 깨끗하게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차피 많이 깎아내야 할 말구(내치, 뒤초리) 쪽은 그 반원 단면의 너비가 두 치 반이 되지도 못하고, 잘못된 톱질로 깊은 흠이 나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저 어느 정도 쪼개진 두 반원기둥을 포갤 수 있을 정도로나 대패로 다듬어 보자는 것. 어느 정도 되었겠다 싶어 두 반원기둥을 하나로 포개 보면 어느 한 쪽이 고르지 않아 튀어 나왔는지 곱게 겹쳐지지가 않고 사이가 크게 뜨곤 했다. 기준면보다 깊이 팬 곳에 맞춰 싹 깎아내지는 않더라도 기준면보다 불룩 나온 곳은 없어야겠지. 다시 쪼개진 나무를 들어내 어느 부분 배가 나왔는가를 살폈다. 수평자를 올려 물방울이 어디로 기우는지를 찾고, 곡자를 대 보면서 어디가 떠 닿지 않는지를 살펴 배가 나온 곳들을 손대패로 깎았다. 그렇게 한 번을 더, 또 한 번을 더. 그 때야 다시 포개어보니 아주 꼭 맞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잘 맞닿는 원기둥이 되기는 했다. 그러면 두 쪽 나 있는 반원기둥을 포개 못질로 고정을 시키고, 그 다음부터는 금요일 교수님이 3번 선자 서까래로 시범보인 것처럼 초장 선자 서까래를 깎아나갈 일이 남았다. 먼저 부재가 될 원목의 길이를 맞추고(이것은 나무를 쪼개기 전에 미리 맞춰 놓았기에 따로 다시 맞추지는 않아도 되었다.) 외치와 내치 길이를 잡아 통의 중심을 잡고 그 양쪽으로 한 치 반씩 띄운 선을 더 긋고, 원구 마구리에는 다섯 치 도랭이를 대고 원을 그려……. 지난주까지 했던 16모 각을 잡아 서까래를 깎던 일은 과연 앞으로의 일들에 기본이 되는 거였다. 먹줄 다 먹이고 난 뒤 실제로 나무를 깎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배면은 조장님이, 등면은 내가 깎을 차례였다. 원구가 있는 뒤초리 쪽은 전기 대패로 살짝 밀어내는 정도라면 말구 앞초리 쪽은 끝을 반 푼 정도 두께만 남기고 거의 다 깎아내야 하는 일. 깊이 파내야 하는 곳이 많으니 처음에는 사꾸리를 잡고 앞초리 쪽을 깎기 시작했는데 어느 옹이에선가 끼이이이익, 끼이이이익 쇠 가는 소리가 나더니 아주 날이 멈춰 버렸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날 있는 쪽을 살펴보니 옹이가 통째로 집혀 나와 날에 걸려 있어. 침작하게 전기선부터 뽑은 다음 날에 낀 그것을 빼 내었다. “깊은 옹이가 있는 데를 깔 때는 다른 곳 할 때처럼 하지 말고 깊이를 조절해가면서 조금씩 해야 해요.” “아니면 옹이 있는 부분은 사꾸리를 살짝 돌리면서 깎아 들어가란 말이야.” 하나는 우리 조 제일 큰 형님이 얘기, 그 다음은 조장님이 일러주는 얘기. 형님들 말을 듣고 그리 해 보니 정말로 퀵백(날을 뒤로 잡아당길 때 갑자기 큰 힘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도 생기지 않고, 크게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옹이를 깎아낼 수 있었다. 아아,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러한 것은 아마 어떤 책이나 이론 공부로는 배울 수 없는 거겠지. 깎아낼 면이 많아서인지 이번 대패질은 여느 때보다 힘도 많이 들고 시간도 길게 들었다. 하지만 최대한 먹선 그린 그대로 깎으려 애를 썼다. 우여곡절이 많아 이번에도 또 다른 조보다 작업 빠르기가 한참 처졌는데 자칫 내가 대패질을 잘못해 결과까지 좋지 않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함께 고생하는 조원들에게 미안해해야 할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짝 정신을 차려 먹선을 넘지 않으며 깎아 나갔다. 이제야 조금씩 사꾸리, 전기 대패를 어떻게 움직이면 되겠는지 감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배면과 등면을 먹선에 맞춰 밀어낸 뒤에는 큰 형님이 전기 대패를 잡고 뒤초리 둥근 기둥면을 깎아 나갔다. 이번에는 도랭이를 대고 그릴 때 16모 표시를 하지도 않았고, 16모를 내는 먹선도 따로 내지 않았다. 그저 감각만으로 원기둥을 깎아내는 일. 먹선이 있지도 않은데 어느 한 쪽이 더 들어가거나 원이 찌그러지지 않게 깎아나간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둘러보니 다른 조에서도 다들 그런 식으로 뒤초리 쪽 원기둥을 내는데 참 잘 깎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이제야 고작 먹선을 안 넘기고 대패질이 어느 정도 된다는 감을 잡기 시작했다 싶은데 다른 분들은 벌써 그 이상으로 공구를 잘 다룬다. 모탕 한 쪽에서 초장 선자 서까래 작업을 해가는 동안 나머지 모탕 위에는 원목을 하나 더 올려놓고 3번 선자 서까래 깎기에 들어갔다.




오늘 하루


오후 교육 마칠 때쯤 되면 모두 함께 작업장 정리를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공구 정리일 테고 그 다음에는 작업장에 쌓인 대팻밥을 치우는 일이다. 교육 시간 내내 돌아가는 열 대의 사꾸리와 열 대의 전기 대패, 그리고 면을 마무리할 때마다 당기는 오십 개의 손대패. 작업장 바닥에는 그 나무밥들이 엄청나다. 모탕 안쪽이야 말할 것도 없고, 서서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나 푹신할 정도로 나무밥이 깔려 있다. 날마다 그 나무 밥들을 쓸어 포대에 담는데 그게 하루에 얼마나 나오려나? 우리 조만 해도 서너 포대는 나오니 다 하면 삼사십 포대는 나오는가 보다. 그 나무밥 한 포대를 얼마에 판다고 했더라, 아무튼 그렇게 모은 나무밥들은 짐승을 치는 일에 쓸모가 된다면서 가까이에 사는 어느 아저씨가 트럭을 가지고 와 그것들을 사 싣고 간다. 공구함과 작업장 모든 정리까지 마치면 콤프레샤(공구에 먼지를 털어 청소할 수 있게 바람을 쏘는 기계) 앞으로 가 옷에 붙은 나무가루들을 날린다. 그 센 바람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 원목에서 송진이 많이 나와 이미 끈적해진 곳으로 나무 가루가 들러붙으니 그럴 수밖에. 솔직히 나는 옷도 옷이고, 대팻밥은 대팻밥이지만 실은 그 바람을 맞고 서는 게 좋아 그 차례를 기다린다. 가늘게 나오는 그 바람이 시원하기도 하고, 이렇게 오늘 하루 교육을 마친다는 것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다.


지금 이 시간 학교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대지만, 오늘은 봄이었다. 지금 바람도 세기만 할 뿐 며칠 전처럼 그리 차지도 않다. 세게 불어도 그리 춥지 않은 봄바람, 낮에는 정말 따뜻한 온기 담아 부는 그런 봄바람이었다. 목 아픈 것도 많이 나아졌다. 일요일이던 어젯밤 학교에 들어올 때 같은 작업조 동갑내기 동료가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집에 올라갔다 오면서 꿀생강차를 다려왔다고, 목 아픈 데 이거 마시면 좋을 거라고. 오늘 작업장에 나갈 때에는 그 생강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 보온병에 담아 나갔다. 잠시 짬이 있을 때마다 한 모금씩, 목이 따뜻해졌고 몸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마음까지. 학교 들머리 목련 나무에는 벌써 봉우리를 연 것이 있다. 오후 교육까지 마치고 오늘은 우리 방이 불 때는 당번에 나는 식당 청소 차례까지 되었다. 따뜻한 잠자리, 따뜻한 밥을 위해서라면 마땅한 일. 보일러에 나무를 넣으러 나갔다가 목련을 보면서 이 노래 저 노래 아는대로 크게 막 불렀더니 같은 방 형이 웃는다. 기범 씨, 오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어휴, 금요일 못쓴 밀린 일기까지 이제 다 했네. 보일러에 나무 좀 넣고 그만 자야겠다. 이 방 저 방 코고는 소리들도 참 정겹다.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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