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알 것 같아/3월 27일



이상해, 캄캄해!


오늘 배워 일한 것들을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머릿속이 캄캄했다. 아니, 오전에는 우리 조에서 선자 서까래 초장을 다 마무리해서 내고, 그 뒤에 3번 선자 서까래 깎기와 4번 선자 서까래 깎기, 오후 교육을 마칠 때쯤 해서는 그 다음에 깎을 것이 6번 선자 서까래라는 말까지 들은 것은 다 떠오르는데 막상 그 자세한 일 과정을 떠올리려 하니 순간 머릿속이 캄캄했다. 뭐더라, 뭐더라, 어떻게 했더라… 곰곰 생각해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래서 숙소 본채에 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초장 깎기 마무리는 어떻게 했느냐 물어 설명을 듣는데도 왜 그런지 머리에 확 들어오지가 않았다. 다시 우리 방 숙소로 돌아와 방을 함께 쓰는 형님과 동생에게 물어 공책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얘기를 듣는데도 머릿속으로 또렷한 그림이 떠오르지가 않아. 지난 사흘 동안 한 일이 그건데 이렇게나 캄캄하다니, 갑자기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불 꺼진 작업장으로 쫓아 나갔다. 그리고는 이제껏 우리가 깎은 선자 서까래 쌓아 놓은 것 하나를 살폈다. 아니, 살필 것도 없었다. 선자 서까래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아, 맞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 참으로 이상도 하지, 어떻게 그게 새카맣게 지워질 수 있나. 문득 앞으로 몇 달이 지나고 한참이 더 지났을 때 지금이야 다 알 것처럼 느끼는 것들을 아득한 것처럼 잊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지금 배워가는 것들은 몸으로 익혀야 한다. 머리로 알아 다 된 것처럼 넘어가려 해서는 시간이 지난 뒤 잊어버리기 십상, 몸 깊이 배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선자 서까래라는 것.


맨 처음 선자 서까래 초장 깎기를 할 때는 뭔가 다른 것들보다 무척 까다로운 거라 여겼는데 이어 다른 자리 선자 서까래들을 깎고 보니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다른 게 있다면 초장에서는 반으로 쪼갠 것을 추녀를 사이에 끼고 갈모산방이라는 것과 함께 양쪽으로 붙이기 때문에 외치가 반원기둥으로 된 것 둘을 만든다는 것뿐이었다. 초장이건 1번, 2번, 3번…… 7번에 막장 서까래건 지붕 바깥으로 나오는 쪽(외치)는 둥근 기둥 모양이 되게 하고, 안으로 걸리게 하는 부분(내치)은 점점 얇아지는 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때 이 서까래들은 도리 위에 올리는데 내치와 외치 사이에 있는 통이 되는 자리가 그 걸쳐지는 부분이 된다. 이 때 지붕이 곡선으로 굽어 나가기 때문에 통의 아랫부분 외치 쪽을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각으로 깎아준다. 오늘 우리 조는 어제까지 초장 선자 서까래의 외치(다섯 치 둥근 기둥 부분)과 내치(점점 깎아내 한 푼 두께까지 얇아지는) 깎은 것에 통의 아랫부분 외치 쪽을 사선으로 깎아 다듬은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솔직히 지금 이 과정을 되살려 쓰면서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 한 방에 있는 교육생 분들에게 물어 다시 한 번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그것을 왜 그렇게 깎고 다듬었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외치와 내치


그렇게 선자 서까래 초장을 다 깎아낸 뒤 계속해서 선자 서까래 3번을 깎았다. 초장 깎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반으로 쪼개는 과정 없이 바로 한다는 것 뿐. 그런데 말로 설명하기에 초장 깎는 데는 반으로 쪼개는 과정 하나가 더해지는 것뿐이라 간단히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해 보면 반으로 쪼갠 뒤 다시 맞추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반듯이 반으로 쪼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가운데 톱질로 깎이는 부분이나 톱질 뒤에도 잘린 면들을 고르게 펴주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저러한 점들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목을 고를 때부터 쪼개는 과정에서 잘려나가는 두께나 잘린 면을 고르는 과정에서 깎여 나갈 것을 생각하면 필요한 다섯 치를 한참 넘는 나무를 골라야 하고, 그 굽은 정도를 살피며 깎여 나갈 부분 뒤에도 다섯 치 통이 나오는 나무인가를 잘 따져야 하는 것이다. 3번 서까래를 깎는 일, 그리고 4번 서까래를 깎는 일. 교수님이 물목에 적어준 대로 내치와 외치의 길이, 통의 지름을 만족하는 원목을 골라 모탕에 올리고, 교수님이 시범을 보인대로 양 마구리의 중심선을 잡아 원목의 등과 배에도 중심선, 내치와 외치 치수를 잰 뒤 외치가 되는 원구 쪽에 그린 도랭이의 외접선 끝과 통의 지름 사이를 잇는 먹줄을 튕기고, 한 푼 두께를 남긴 내치(말구) 끝과 통 사이에 점점 좁아지는 먹선을 놓는다. 그 뒤에는 먹선 놓은 것에 맞춰 깎아내는 일. 처음으로 배면과 등면을 깎아 나갈 때는 외치가 되는 원구 쪽은 다섯 치 기둥을 그대로 살려야 하기 때문에 깎아낼 면이 그리 깊지 않지만, 내치가 되는 말구 쪽은 한 푼 정도로 얇게 끝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깊이 깎아낸다.



먹선도 없이


먹선에 따라 배면과 등면을 깎은 뒤에는 도랭이를 놓고 그린 다섯 치 원 모양에 따라 외치 쪽을 둥근 기둥으로 깎아내는 일. 어제 처음 이 작업을 보며 노란 것처럼 이때는 깎을 면을 가리키는 먹선이 따로 없이 그저 마구리에 그린 원 모양을 보면서 감각으로 기둥을 내는 일이다. 초장 서까래의 외치 기둥을 깎는 일은 어제 큰형님이 한 부분 한 것에 이어 조장님이 마무리를 했고, 한참 뒤 3번 서까래를 깎을 때 나한테도 그 기둥을 내는 차례가 돌아왔다. 솔직히 긴장이 많이 되었다. 먹선이 뻔히 보일 때에도 날 깊이나 기울기를 바르게 하지 못해 먹선 너머까지 깎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먹선도 없이 맨 끝 단면의 동그라미 그림만 보면서 그것 그대로 기둥을 내야 한다니. 하지만 막상 대패질을 해나가다 보니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웠다면 모양이 비뚤어지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전기 대패를 들고 각을 달리하며 깎아가기에 팔에 힘이 몹시도 든다는 거였다. 아직 몸살이 다 낫지 않은 상태였고, 원목 자체가 많이 굽어 다섯 치보다 훨씬 굵은 거라 깎는 시간이 곱으로 들었고, 측면 대패질이라는 것이 대고 미는 것 뿐 아니라 팔로 들어 버티며 밀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들기도 했다. 다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자꾸만 땅방울이 안경알 위로 떨어져 눈앞이 뿌옇게 되곤 했다. 다 깎아 대패를 내려놓을 때는 팔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다 하고 나서 드는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 마구리에 먹으로 그린 동그라미를 더 먹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이 남기지도 않은 채 따로 먹선도 없는 맨 상태로 기둥을 깎아낸 것이다. 아, 할 수 있네, 나도 할 수 있구나! 그 반대 면을 다른 조원이 더 깎아 3번 서까래도 손대패로 곱게 깎은 뒤 외치 쪽 통과 닿는 아랫면을 끌로 접는 것으로 마무리.



잠자리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 둘 이어진다. 우리 방에서 함께 지내는 형님도 해가 저물기 전부터 이불에 누웠다. 힘든 얼굴로 일어나서는 담이 와 아프다 하며 양 어깨에 파스를 붙여 달라 한다. 가끔씩 씻으러 가는 별관 방에도 한 분이 몸살로 몸져누워 있다. 며칠 전 내가 첫 빠따가 되어 몸살에 목이 붓더니 이제 정말 다른 분들에게도 몸에 신호들이 오는가 보다. 나는 이제 거의 다 나았다. 저녁 즈음에는 먹고 싶은 게 하나 둘 떠오르는 걸 보니 오늘 밤만 지나고 나면 가볍게 털고 일어날 것 같다. 지난 몇 주를 지나면서 내 몸이 놀라긴 많이 놀랐겠지. 언제 이렇게 아침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몸 놀려 일을 하며 지내보기나 했나, 첫 한두 주일은 긴장한 덕에 어찌어찌 견뎠지만 기어이 지난주에 무너지고 만 거였겠지. 한 번 놀라고 났으니 이제는 그만이길. 저녁에 차 한 잔 얻어 마시러 회장님 계신 방에 갔더니 전동공구 쓰는 일은 이제부터가 정말 위험하다고 조심하라 당부하신다. 그 분은 바깥에서 이미 이 비슷한 일을 많이 하다 오셨는데, 어느 정도 공구가 손에 익을 듯 할 때 사고가 가장 많이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다들 힘에 부쳐 팔이 아프다고들 하는데 그러다보면 작은 안전 수칙들을 대충 넘기다 큰일이 날 거라며 말이다. 모두들 아프지들 말고, 다치지들 말고!


오늘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 같은 방 사람들이 벌써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이제 그만 이불 깔고 누워야지. 누워서 마음속으로 얘기하고 있노라면그렇게 잠이 들겠지.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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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학교 26기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같이 교육을 받는 유리상자 님이 서까래를 비롯 우리가 배워가는 여러 한옥 부재에 대한 자료를 올려놓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 가운데 서까래를 설명해주는 사진과 글 하나를 옮겨왔다.)

추녀에 붙는 서까래 종류

1 선자연(扇子椽) - 선자 서까래

추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부채살처럼 방사선으로 서까래가 걸린다.

2.마족연(馬足椽)

추녀에 붙는 서까래의 단면모양이 말발굽처럼 긴 타원형으로 생겼다.

서민들의 살림집에 주로 나타난다.

3. 평연(平椽)

서까래를 모두 평행하게 건 것. 나란히 서까래라고도 한다.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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