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 서까래 / 3월 23일
칠판 앞에서 한 강의
아침 작업장에 모이자마자 우리가 지을 집의 지붕에 대한 강의. 교수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그리며 한참을 설명했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가로로 20자 세로로 9자 길이의 지붕을 얹는다 하는데 그것을 우진각으로 뽑아… 어떻게 어떻게 하면 팔모가 되고…… 으아, 그 다음부터는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면서 “알아듣겠죠?”, “이해하죠?” 하고 물으실 때 몇몇 사람들은 네, 네! 하고 대답을 하고, 말씀 도중 아아,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데 내 머릿속은 깜깜하기만 했다. 이리 알아듣지 못하니 어쩌나 걱정만 들면서. 강의를 마치고 잠깐 짬이 나 작업장 바깥 지난 기수 분들이 지은 육모정 앞으로 나가니 몇 사람이 그 앞에 서 올려다보며 교수님이 설명한 내용을 되짚었다. 옆에 있는 교육생 한 분께 나는 아무 것도 알아듣지를 못하겠다고, 이해가 되는지를 물으니 삼각법만 알면 간단하다며 교수님이 강의 뒷부분 하신 말씀에 대해 풀어 얘기해주었다. “선자 서까래들이 둥근면이 바깥 나오게 해서 들어가잖아요.” “네? 아니, 저는 선자 서까래가 뭔지도 모르거든요. 저 정자에서는 뭐가 선자 서까래에요?” “저거요, 둥근면 있는 게 빙 둘러치면서 나와 있잖아요. 그게 안쪽에는 모아져 있어서 대충 원뿔처럼 그렇게 되어 있고요.” “네, 저거요?” “그런데 저 끝 면은 모아지고 바깥 면으로 끝이 잘린 부채살처럼 나오니까 저기에서 한 면을 반으로 자르면 직각 삼각형처럼 되죠? 그걸 맨 끝 꼭지점부터 하나하나 나오게 되니까 맨 바깥쪽은 길게 나오고, 가운데가 되면 제일 짧고요. 그 맨 바깥쪽 것이 초장이라 하는 거고, 그 다음부터 1번 서까래, 2번 서까래, 3번 서까래로 쭉 나가다가 맨 안쪽 것이 막장이 되는 거고요.” 아아, 무슨 말인지 비로소 어느 정도 머리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통의 양쪽한 치 오 푼씩 남겨 두는 거구나. 서까래마다 도리 위에 얹을 때 닿는 면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니까 나중에 올리면서 그 자리에 꼭 맞게 까내어 짜 맞출 수 있게 하려고. 휴우, 그 분이 다시 풀어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내 무슨 말인지 몰라 왜 그런 모양으로 깎는지, 왜 서까래마다 조금씩 치수를 달리 하는지, 왜 치반만큼씩 여유를 둬야 하는지 아리송했을 것이다.
교수님의 시범
자리를 옮겨 칠판 가까운 쪽 5조 작업장 앞에서 교수님이 시범을 보였다. 선자 서까래는 초장부터 1, 2, 3… 7번 서까래에 막장까지 그것들마다 통의 굵기와 앞초리, 뒤초리 길이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깎는 방식은 같다. 단 하나 서까래의 방향각이 달라지는 맨 바깥쪽 초장 깎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이제 모든 조에서는 1번 서까래부터 막장까지 하나씩 다 만들어야 하고 5, 6조와 9, 10조는 초장까지 깎을 것인데,(잘하는 조에게 초장을 맡기는 거라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조는 잘하는 조들 사이에 끼어 얼떨결에 초장 깎기까지 하게 된 것 같다.) 5조에서 시범을 보이려니 3번 서까래에 필요한 치수로 해서 실제로 깎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앞서 칠판 강의에서 제대로 못 알아들어 헤맨 터라 이번에는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야지 하고는 공책을 들고 앞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시범을 보일 때면 세 겹 네 겹으로 사람들이 둘러서는 바람에 뒷자리 섰다가는 앞사람 뒤통수만 보다 마는 일이 많다. 앞에 있는 사람들 좀 앉아 달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람들이 쪼그려 앉는 거는 잘 안 하려고 하니까. (나도 그렇고.) 아무튼 이번에는 맨 앞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여전히 교수님 말씀은 잘 알아듣기가 어려워. 그래서 무작정 교수님 하시는 작업 순서를 따라 공책에 적었다. 시범 보이려 하는 3번 서까래는 10자 6치 길이에 내(뒤초리, 말구)는 5자 9치, 외(앞초리, 원구)는 4자 7치. 이 원목을 모탕에 올릴 때는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오른손을 쓸 수 있는 쪽으로 해야 일이 수월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혼자 작업을 한다면 왼손을 쓸 수 있게 해서 올려야겠지.) 그렇게 해서 교수님 작업은 아래와 같은 차례로 이뤄졌다.
⑴ 배가 위로 올라오게(아래쪽으로 휘게) 원목을 누이고 길이를 잰다. (이 때 실수로 인치 자로 재는 일이 있었는데, 척 자를 잘 보고 써야 한다. 한 번 잘라내고 나면 못 쓰게 돼서 버리게 되는 큰 실수가 된다.)
⑵ 길이에 맞춰 톱으로 자른다.
⑶ 수평자를 가지고 양 마구리에 싱(중심)을 잡아 수직선을 긋는다. (현장에서는 추(일본말)-사개오리를 이용)
⑷ 먹줄을 놓아 양 마구리를 잇는 중심선(통)을 그린다.
⑸ 내(앞초리)와 외(뒤초리)의 길이를 재 표시한다. 기둥에 돌려가며 선을 긋는다. (먹칼을 조금 긴듯하게 만드는 까닭은 이러한 작업이 있을 때 둥근 기둥면에 곡자를 대고 선을 손쉽게 긋기에 좋기 때문이다.)
⑹ 내와 외를 가르는 선의 양쪽으로 한 치 댓 푼 간격을 두어 선을 긋는다.
⑺ 통의 싱(중심)에 통의 치수 (3번 서까래에서는 4치) 에 맞게 표시를 한다.
⑻ 말구(내치, 앞초리가 되는 쪽) 중심선부터 한 푼 정도를 띄우고 (그러니까 양쪽으로 반 푼씩) 통 치수 잰 곳과 이어 먹선을 놓는다.
⑼ 원구(외치, 뒤초리가 되는 쪽)에 도랭이(3번 서까래에서는 다섯 치)를 그린 뒤 몇 번 선자 서까래인지 번호를 적는다. (이 도랭이를 그릴 때에는 16모 표시는 필요 없음)
⑽ 원구에 그린 도랭이의 다섯 치 외접선에 수직선을 그리고, 그 마구리의 끝선과 통의 치수를 표시한 곳 사이를 이어 먹선을 놓는다.
⑾ 원목을 돌려 등이 위로 올라오게(위쪽으로 굽게) 중심과 중심을 잇는 먹선을 놓는다.
⑿ 통의 중심선(5번에서 그린 것)에 자를 대고 등면에도 그 중심선을 그대로 이어 긋는다. 이 때도 배면과 마찬가지로 한 치 반, 한 치 반 씩 띄운 간격 선도 함께 긋는다.
⒀ 배면에 먹선을 놓은 것(10번에서 한 것)처럼 등면에도 원구 도랭이의 끝선과 통의 치수를 표시한 곳 사이에 먹선을 놓는다.
⒁ 8번에서 한 것처럼 말구 중심선과 통의 치수를 잇는 먹선을 놓는다. 마찬가지로 반 푼씩 띄워 한 푼의 간격을 남기고.
처음부터 교수님 시범을 제대로 이해해 기억할 자신이 없었기에 무작정 공책에 적었다. 처음에는 무얼 하시는지, 그 다음 동작은 어떠한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그렇게 적다 보니 어느 새 나도 모르게 그 과정 과정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칠판 앞 강의 때만 해도 도대체 뭐가 뭔지를 모르겠어서 꽉 막히듯 답답했는데 마음이 놓여 기분이 좋아졌다.
선자 서까래 깎기 - 초장
시범을 보고 난 뒤부터 실습에 들어갔다. 모든 조는 1번 선자 서까래부터 말구까지 하나씩, 그리고 교수님이 말한 네 조에서는 초장도 하나씩 더 깎기. 먼저 원목부터 고르러 작업장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가 처음 깎아야 할 초장은 길이가 열두 자, 굵기 지름이 다섯 치는 되어야 했다. 깎아낼 부재에 맞는 원목을 고르는 일부터가 쉽지 않은 일. 우리 조원들은 작업장 바깥에 쌓여 있는 원목들을 살피며 어느 것이 초장을 깎아낼 만 한 것인지를 골랐다. 이건 너무 휘어서 깎아내다 보면 굽은 자리에는 다섯 치가 나오지 않겠어, 이건 곧게 뻗었는데 열두 자가 안 되잖아…… 이리저리 나무들을 잰 끝에 적당한 원목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목도. 우리가 작업할 곳으로 가져가 모탕 위로 올리기. 그 다음에는 먹선을 놓을 수 있게 낫을 들고 껍질 벗기기.
다른 선자 서까래들 같으면 교수님이 시범 보인 차례에 따라 전체 길이를 내고 내치와 외치를 가르고 마구리에 중심선과 도랭이 그림을 그려 먹선을 넣어가겠지만, 우리 조는 초장 작업을 하기 때문에 과정이 조금 달랐다. 초장은 말구 쪽 단면에서 봤을 때 반원이 되는, 반원기둥으로 올라가다 앞초리 쪽으로 가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원목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두 반원의 통이 되는 자리가 반통 치수(우리가 짓는 집 같은 경우 두 치 반)가 똑같이 나올 수 있는지를 셈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목을 반으로 자를 때 톱날이 들어가는 틈이 생기고, 톱질이라는 것이 반듯하게 되기 어렵기 때문에 톱질 뒤 자른 면을 다시 대패로 다듬어낼 만큼의 여유 또한 미리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 마구리에 넣은 중심선에서부터 그만큼의 여유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이런저런 셈을 해 톱질을 한 뒤 자른 면 깎기 여유까지 충분히 두었다 생각했는데 톱질이 생각보다 심하게 어긋났다. 톱질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원목을 반으로 깊이 자르는 일에는 전기톱 힘이 달려 엔진톱을 쓰는데, 이 엔진톱은 힘이 센 만큼 그것을 다루는 것에도 몹시 힘이 들어보였다.
톱질이 크게 어긋났으니 자른 면을 반듯하게 하려면 한참을 대패로 깎아내야 할 텐데 그러다보면 통의 지름 굵기가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휜 부분까지 함께 따져야 하니 아무래도 그 상태에서는 우리가 깎아야 할 다섯 치 굵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지 조원들 모두 심각한 얼굴로 걱정에 들었다. 아무리 도랭이를 들고 이리 저리 대 봐도 말구 쪽으로 갈수록 다섯 치보다 훨씬 모자란 굵기가 되었어. 어디를 중심으로 잡아 먹선을 놓아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조장님이 내치와 외치 길이를 다시 재 보더니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차피 통의 굵기 다섯 치가 필요한 곳은 내치가 끝나는 곳까지다. 외치로 들어가면 끝으로 갈수록 좁아져 들어가니 말구 쪽까지 다섯 치 원기둥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어차피 그 쪽은 크게 깎아내야 하니 외치만이라도 다섯 치 원기둥이 나올 수 있게 중심을 잡아보자는 거였다. 도랭이를 들고 굵기를 가늠하니 겨우 외치가 끝나는 곳에서 딱 다섯 치가 나왔다. 그래, 그럼 여기까지 살릴 수 있게 먹줄을 다시 놔 보자. 다시 마구리에 중심선을 잡아 먹줄을 당겨 선을 놓을 때 교육을 마치는 싸이렌…… 어느덧 이렇게 해서 목수학교에서 보낸 3주가 지나갔다. 소중한 꿈 하나 내 마음에 자라고 있다.
이루마 - All myself to you 강아지똥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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