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3월 22일



며칠짜리 몸살이 온 건지, 아직 시작인 것 같기는 한데 이쯤에서 그만 가셨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른 어느 곳보다 목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입학하기 며칠 전부터 목이 안 좋아 붓기가 있기는 하던 것이 점점 부어오르더니 이제는 아주 고개를 숙이면 뭐가 닿을 정도로 땡땡해져버렸다. 아침밥을 먹으러 가 밥해주시는 아주머니께 목이 아파 오늘은 조금만 먹겠다 말씀드리니 이제 하나둘 그럴 때가 왔나보다 하신다. 그래, 그게 무슨 얘기냐 되물었더니 한 삼사 주 지나고 나면 목이 부었다 하는 사람들이 나오곤 한다는 거다. 기계 돌려 일하면서 그 나무가루를 다 마시다 보면 목 아프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말이다. 그래서 전에는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모과나 계피, 생강 같은 차를 끓여주기도 했다 하시며 그런 게 목에 좋으니 끓여 먹으라 일러주셨다. 그저 감기 기운데 담배를 많이 피워 그러겠거니 했는데 말씀을 듣고 나니 과연 그렇겠다 싶었다. 그래 오전 교육을 들어가면서는 입마개를 썼다.


오전에도 서까래 깎기. 교육시간마다 작업장에 모이면 그 시간에 할 일에 대한 교수님 말씀으로 시작하곤 하는데,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서까래 깎으세요.”하는 말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오후부터는 선자 서까래에 대해 배워갈 테니 서까래는 지금 모탕에 올려놓은 것까지만 해서 마치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 조도 자리로 돌아가 어제 깎다 남은 곳부터 일을 해 나갔다. 하나는 먹선까지 그어놓은 거여서 바로 사꾸리질에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남은 외접선을 그려 깎아낼 면을 먹줄로 그리는 일부터 했다. 일이 시작하자마자 작업장 전체에 공구 돌리는 기계 소리들이 가득했고, 여기저기에서 대팻밥들이 튀어댔다. 몇몇 사람들은 어제 주문해 받은 새 대패를 놓고 대팻집 밑면의 수평을 맞춰보며 쓸 수 있게 다듬었다. 귀청을 울리는 공구 소리와 튀는 대팻밥 속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채 한 시간도 되지 못했을 때 교수님이 싸이렌을 울렸다. 전기 대패를 만질 때 절대로 대팻밥 나오는 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지 말라는 말씀, 새삼스레 그 말이 나온 것은 어느 조에선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살점이 깊이 파였다던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사고도 사고였지만 하마터면 그 똑같은 일을 지난 주 금요일 내가 겪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전동 공구를 받아 처음 손에 잡던 날, 대팻밥이 꽉 메여 그것 좀 빼내고 하라는 얘기에 그 안을 후벼보려 손가락을 넣었다가 드드드드득. 그 때 벨트 돌아가는 게 한참 멈춰지고 있어 다행이었지 자칫했으면 오늘 그 분이 다친 사고와 똑같은 일을 당했을 거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위치를 놓아 모터가 멈추고 대팻날이 서더라도 벨트는 속도가 죽을 때까지 계속 돈다는 것이다.


내 차례가 돌아와 먹선을 놓고 사꾸리와 전기 대패로 면 하나를 밀어내었다. 이번에 깎는 원목은 우리가 깎는 4.5치 서까래보다 훨씬 두꺼워 면 하나를 낼 때마다 따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전기 대패로는 아무리 날을 깊이 해도 한참 걸릴 수밖에 없는 일, 모가 난 쪽부터 깊고 거친 사꾸리질을 충분히 한 뒤에야 전기 대패로 고른 면을 밀어나갔다. 입마개를 했더니 자꾸만 숨이 올라와 안경을 뿌옇게 해 성가셨다. 그러더니 땀까지 뚝뚝 안경 알 위로 떨어졌다. 그 한 면을 다 밀도록 몇 번이나 대패를 멈춰 이마와 안경알을 닦아냈는지 모른다. 마지막 먹선이 닿는 부분까지 다 밀고 나 대패를 내려놓고 물러서는데 얼마나 땀이 났는지 안에 입은 옷이 척척했다. 아무래도 그 놈의 몸살이 조금 세게 오고 있는 모양이다. 목에 손을 대어 보니 무슨 석고 붕대라도 댄 듯 아주 땡땡히 부어올랐다. 따뜻한 물이라도 자꾸 마셔줘야 한다는 말이 생각 나 잠깐 숙소 쪽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쪽 밥상에 앉아 식단을 짜고 계신 아주머니, 목이 아파 뜨거운 물을 먹으러 들어왔다 하니 많이 아프냐며 걱정을 해 주신다. 그러더니 잠깐 있어 보라고, 이거라도 타 먹으라며 부엌에 들어가 무슨 한방차 같은 것을 하나 내 주셨다. “목이 아프니까 몸도 무겁고 그러지?” “네, 몸살까지 같이 와서…….” “이거 먹고 피로 풀어요.” 손에 쥔 것을 상 위에 얹어 주고 가시는데 뭔가 하고 보니 조그만 초콜렛 두 개. 식당 아주머니 마음이 너무 고마워 “엄마 같아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나서 잠깐 사이 나눈 이야기. 내가 교육 중에 나온 거라 얼른 마시고 들어가야 한다 하니 괜찮다 하시며 천천히 마시고 가라 하면서 이어진 이야기였다. 아주머니는 16기 교육 때부터 학교 밥을 짓기 시작해 벌써 여기에서 설을 여섯 번을 지냈다. 그러니 학교 돌아가는 거며, 이곳에서 교육 받는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훤히 알고 있다. 댁은 동해라시는데 아주머니도 토요일까지는 이곳에 묵으며 밥을 지어주시고 댁에는 주말에나 한 번 다녀온다. 시작된 얘기에 아주머니는 내 나이를 물었고, 나는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밥 차리는 일만 이십 년 넘게 해 오셨다는 얘기를 했다. 아주머니 댁 막내아들이 나하고 나이가 같다 하시네, 첫째는 우리 형과 나이가 같으네. 어머니가 서울에서 대학 앞 하숙집을 한다 하니 아주머니도 한 때는 삼척대 앞에서 하숙을 쳤다 한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할 말이 많았다. “저희 어머니도 늘 다음 날 반찬을 뭐 하나 그 걱정이셨어요.” “그러니까 나도 말이지 이렇게 식단을 짜 놓고 부식 어떤 걸 얼마나 주문해야 하나 다 짜 놔야 한다니까.” 아주 짧은 사이였지만 아주머니와 나누는 이야기에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거기 서 있을 수 있나? 어서 작업장으로 가 봐야지. 아주머니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뒤로 “차 마실 거 없으면 또 와서 달라고 해!” 소리치신다. 주머니 안에서는 초콜렛 두 개 만지작거려지고, 다시 마음이 따스해졌다.


다시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니 모두들 작업에 여념이 없다. 우리 조에서도 한 면씩을 더 깎아 모탕 한 쪽 원목은 16모가 다 나와 손대패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모가 난 면을 매둥근 면으로 매끈하게 깎는 것은 그저 감각만으로 하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먼저 먹선 남아 있는 곳들부터 깎아내 어느 정도 32모가 되면 그 뒤부터는 어림으로 둥글게 다듬어가는 것인지. 다들 손대패 마무리 작업을 하기는 하는데 자칫 날이 깊어지거나 같은 곳을 거푸 밀다 보면 흠이 생기지나 않을지. 모탕 한 쪽에서는 그렇게 손대패 마무리, 또 남은 한 쪽은 계속해서 마구리에 그린 원의 외접선, 깎아낼 면으로 먹줄, 사꾸리질과 전기 대패질이 이어졌다.


다시 싸이렌. 또 무슨 사고가 있었나, 아니면 쉴 때 다 같이 쉬라고 끊어준 건가 싶어 일을 멈췄더니 하던 일을 놓고 강의실로 모여 달라 한다. 선자 서까래에 대한 강의가 있어 그런가 싶어 공책을 들고 나섰더니 그게 아니라 노동부에서 무슨 감사 비슷한 게 온 거라 했다. 우리가 받는 교육이 노동부 지원으로 이뤄지는 거라 그에 대한 이러저러한 절차인 듯싶었다. 강의실에 모여 앉아 있으니 일을 보는 공무원이 교수님에게 왜 짜 놓은 수업 시간표대로 하지 않는지 하는 것부터 묻기 시작했다. 나는 맨 뒷자리여서 잘 듣지 못했는데, 교수님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설명하면 그이는 그저 ‘규정’이니 ‘법’ 따위 말만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 뿐 아니라 교육받으시는 분들이 아무리 우리 교육이 그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그렇다고 그이가 지적하는 이론 강의가 결코 부실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노동부에서 교육 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인 것에 큰 아쉬움이 있다고 진정을 다해 얘기하려 해도 그이는 왜 시간표에 따라 이론 강의를 하지 않고 작업장에서 실습을 하고 있냐는 말 뿐이었다. 그런 태도에 적지 않은 교육생들이 흥분해 화를 참지 못해 격한 말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맡겨진 일을 그것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일선 공무원으로서야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답변이나 약속 같은 걸 할 수야 없는 일이겠지. 그거야 그 자리에 모인 교육생들이라고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온 노동부 직원에게 화가 난 것은 그 자리에 함께 한 교수님은 물론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대해 전혀 무성의한 태도로 인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자리에 나와 교육 실태를 파악하러 나온 공무원이라면 결정권을 가진 상급 기관과 현장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하려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노동부에서 나왔다는 그들과 강의실에서 가진 시간 뒤로 내내 마음이 깨끗치 못했다. 작업장에 돌아가서도 이제 점심시간까지 채 삼십 분도 남지 않아 다시 일을 이어갈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어정쩡하게 남은 시간, 교수님이 그 시간을 이용해 우리 한옥의 지붕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먼저 지붕의 종류에 대해 교육생들이 알고 있는 게 어떤 게 있는지 물어가며 늘어놓았는데 맞배지붕부터 팔작지붕, 우진각 그리고 팔모정이니 육모정이니 하는 모임지붕에 T자 지붕, 十자 지붕 같은 것들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는 처마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는데, 결국 교수님이 하려는 얘기는 이제 곧 우리가 깎게 될 선사 서까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거였다. (아, 그런데 그 때 무얼 말해주셨는지 제대로 기억나지가 않아. 노동부에서 나온 사람들과 교육생 면담을 가진 바로 뒤여서 생각이 복잡하기도 했고, 잇달아 늘어놓는 지붕의 이름들도 모두 처음 듣는 낯선 거라 귀로는 듣되 머릿속에는 하나 그려지는 게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교육 시간, 역시 해오던 대로 서까래 깎기가 계속 이어졌다. 적어도 지금 모탕에 올라 깎고 있는 부재를 다 깎고 나야 선자 서까래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아직 하던 것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다시 속도를 내어 긋고, 튕기고, 깎고, 다듬고……. 오후 교육을 마칠 시간 쯤 되어 모든 작업조 위에 남은 서까래 작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어도 모탕마다 한 자리씩은 비게 되었으니까. 그 때 즈음해서 교수님이 조마다 원목 하나씩을 가져다 놓으라 하셨다. 이번에는 마구리 지름 다섯 치 기둥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열두 자짜리 나무. 무언가 새로운 걸 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여기에는 도랭이를 어떻게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먹줄을 놓을지, 그리고 깎아내고 나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그것은 훗날 집을 지을 때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칠판에는 벌써 교수님이 선자 서까래 깎기에 대한 내용을 써 주셨는데 무턱대고 공책에 베껴 쓰기만 했을 뿐 쓰고 있으면서도 그게 무얼 말하는지는 아직 모를 뿐이다.



선자 서까래


1寸*1寸*12尺


1尺(자)=30.3cm

1寸(치)

10寸=1尺

1分(푼)

10分=1寸

1里(리)

10里=1分


[현장에서 일할 때 쓰는 단위에 대한 설명 뒤 선자 서까래를 정면에서 본 그림과 각 부분의 이름과 그 치수를 말해주는 그림이 있다.]


①선자 서까래의 치수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별도 규격표 참조)

②휨과 치수에 적합한 원목을 선별한다.

③원구와 말구에 수직 먹을 치고, 원구에는 원하는 치수(5寸)의 도랭이를 그린다.


[원목의 원구에 도랭이를 칠 때 곧은 나무일 경우와 굽은 나무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그림 있음]


④번호에 해당하는 중심 먹을 돌려 치고, 상하 2寸 정도에 먹을 친다.

⑤뒷초리(내) 빗선의 먹을 어깨(통)의 폭으로 상하 먹을 놓는다. (그림 설명을 보면 뒷초리는 선자 서까래의 뾰족해지는 부분을 가리킨다.)

⑥뺄목(앞초리, 외)은 같은 방법으로 측면을 깎은 뒤 원형으로 모양낸다. (그림 설명을 보면 앞초리는 선자 서까래의 기둥 부분을 가리킨다.)


[선자 서까래를 측면에서 본 그림 있음. 굽은 나무일 경우와 곧은 나무인 경우로 나누어 그것의 처음 중심과 실제 중심을 어떻게 잡는지를 알려준다.]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여기에 와 거울 볼 일이 없었는데 하도 이상해서 얼마나 부었는지 변소에 가거울에 비춰보니 겉으로만 봐도 주먹만 한 혹이 달린 것처럼 목이 부어 있다. 저녁을 먹을 때도 입을 조금씩만 벌려 겨우. 몸이 안 좋다 하니 오가며 만나는 분들마다 어디가 안 좋은지, 얼마나 안 좋은지 한 마디씩 물어준다. 주말을 보내고 싸악 나으면 좋겠다. 내일은 벌써 3주차 교육을 마치는 금요일, 삼척의료원이 가깝던데 거기부터 나가봐야겠다.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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