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공부 2 / 8월 16일


오늘도 조금 전에야 강의실 불을 끄고 방에 들어왔다, 시커먼 하늘 가득 새벽별. 오늘이면 현치 도면 위에 나무를 놓고 먹선을 놓아 부재 깎는 연습에 들어가겠거니 했는데 나무는 무슨 나무, 오늘도 꼬박 도면만 그리다 왔다. 생각으로는 새로 깨끗이 도면 하나를 그려 그걸 바탕으로 먹선 놓기와 나무 깎기를 시작해야지 했는데, 그리다 보면 꼭 선 하나나 둘 정도를 잘못 긋는 거였다. 뻔히 아는 건데도 실수를 하고 잠시 착각해 다른 점에다 긋고……. 그 정도 실수면 선을 다시 긋고 그 도면을 가지고 부재깎기를 해도 되기야 하겠지만, 고집이 생겨 아주 실수 없이 깨끗하게 그린 다음에야 그 위에 나무를 올리고 싶었다. 그거야 뭐 한 번만 더 그리면 깨끗하게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마음 한 편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리다 보면 또 어느 한 선을 잘못 긋고 말아, 그래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던 것이 이 시간 새벽까지 도면만 그리다 온 것이다.


실수라 했지만 실은 그 모두가 실수만은 아닐 것이다. 그 순간에는 아는 걸 잠시 착각해 잘못 그었다 싶기도 하지만 안다고 생각한다고 아는 게 아니야, 입체 구조를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선 긋기 공식 정도만 외우고 있으니 실수라는 것이 자꾸만 툭툭 튀어나오는 거겠지.


이제 남은 날은 내일 수업에 졸업식이 있기 전 주말까지 사흘. 많은 동기들은 졸업을 한 뒤에도 그 다음 주에 있을 시험 때까지 학교에 남아 계속 도면을 더 익히고, 나무도 학교에서 나눠준 것 말고 제재소에서 더 사다가 도면마다 한 번씩은 다 만들어 보겠다 하는데, 나는 졸업 뒤로 시험 날까지 다른 일들이 놓여 있어 그럴 시간이 없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외워 그리는 방식은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기 십상이라 시험 전까지 계속 그려 그 감각을 가져가지 못하면 머리 속이 캄캄해질 거라 하는데 걱정은 걱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까지 1번부터 6번까지 도면들을 어느 정도 다 익혔다 싶었는데 오늘 종이를 펴고 그 앞에 서니 뭐가 뭔지 까맣게 모르겠어. 하다 보니 아아, 그랬었지 하고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말이 맞긴 맞다. 교수님 한 분도 말씀하시길, 이건 시험 때까지만 외워 그대로 그리고 시험 끝나면 잊어버리라던데, 연습도 이리 턱없이 모자란대다 졸업 뒤 시험까지 일주일을 띄우게 될 테니 정말 그 사이에 확 다 까먹어버리지나 않을지.


그런 마음이 있어 더 기를 쓰고 새벽 두 시, 세 시가 될 때까지 강의실에 남아 계속 그렸다. 다행히 맨 마지막에 그린 도면 두 장은 틀린 곳 없이 깨끗하게 그려내기는 했는데, 이것도 내일 날이 밝아 다시 모조지 앞에 서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쩔 수 있나 뭐, 내일도 아주 도면이 몸에 밸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보는 수 밖에. 그나저나 실제 나무로 부재를 깎아 만들어보는 건 언제 하나, 이러다 나무 깎는 연습은 한 번도 못해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게 되는 건 아닐지 몰라.


몰라, 지금 기억나는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면 ……도면에 없는 연장선을 어떻게 뽑아야 할지 기억할 것, 기준선은 언제나 처마 끝선을 지나도록 할 것, 평고대를 전개할 때는 가상의 바른 서까래를 그릴 것, 바른 서까래 전개도를 그릴 때도 또 다른 가상의 바른 서까래가 필요하다, 추녀에 닿는 빗서까래 높이는 추녀 중심선과 서까래의 기준선이 만나는 점을 추녀 전개 바깥선까지 수직으로 올려 닿는 점까지의 길이를 재면 된다, 그 길이만큼 기준선의 직각이 되도록 올린다, 도리와 닿고 있는지 닿지 않는지 정확히 볼 것, 절단선은 언제나 전개도의 파란 선 두 개를 모두 지날 것, 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을수록 지금 그리고자 하는 부재의 기준선을 똑바로 볼 것…….





아하, 이 노래. 언젠가 동기분들하고 같이 나가 저녁을 먹고 놀다가 노래방에 가 인구 씨가 부르는 걸 듣고는 이런 노래가 다 있었나 하고 놀라며 홀딱 반한 거. 마침 인구 씨 엠피쓰리에 이게 있어서 학교에 돌아와 다시 듣는데,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마냥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 그래서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질 때면 한 번씩 틀어달라 해 듣곤 했는데, 오늘도 오후에 계속 도면을 그리다 망치고, 망치고, 망치던 끝에 인구 씨를 찾아 틀어달라 하고는 한참을 들었다. 으이그, 새만금 락페스티벌이라하는 망조든 짓거리로 가련해진 윤도현이지만, 그래도 이 노래만큼은 자꾸 듣게 된다. 좋아.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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