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 8월 30일
빛나는 졸업장
졸업식은 벌써 있었다. 그게 20일이었으니 열흘이나 지난 거지. 교수님, 동기들하고 사진을 찍었고,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숙소에서 짐 가방을 싸는데 한 방에서 살던 뽕따이 형아가 눈물을 보였다. 산적 같이 생긴 아저씨가 눈물이라니,아니, 정확히 말하면그걸 내가본 것은 아니다.나는 형을 등지고서 짐을 싸고 있었고, 문 바깥을 지나던 옆 방 친구가 아니, 이 방 분위기 왜 이래, 하나는 처량하게짐 가방을 싸고,한 사람은 그 뒤에서 울고 말이야……. 에이, 설마 하면서 돌아다 봤더니 형얼굴이 정말잔뜩 찌푸렸다. 살짝 맺히던 걸 닦아낸 건지아님 놀리느라울었다 말한 건지 몰라.형, 정말 울었어? 무슨 일 있어요?물어봐도 대답이 없어, 다시 또, 왜 그러는데 형, 응? 하니 한 마디 하는 말이 이제 오늘 지나면 다들 못 보잖아, 하는 것이다. 정말인가 보네, 그래서 운 거야? 정말로? 그런데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 이 산적 덩치 우락부락의 사내가 속은 얼마나 여리고 물렁한지. 그 때부터 놀람 반, 놀림 반으로 웃으며 얘기를 하는데 어, 어, 어, 어, 또 운다, 진짜 우네, 하하하, 진짜 운다…하니 다시그 작은 눈에 물기가 번져.우리가 하하하 하니 형도 눈물을 훔치며하하하, 하품이 나와 그런 거라나 뭐라나.그런 식이었다.졸업식 전 날 짐을 싸면서, 졸업식이라는 것을 하면서, 그리고 차에 타고 하나 둘활기리 학교를 떠나면서.하지만 그런 속에서도그 마음이 아주 다는아니었다. 졸업을 하고 일주일 뒤 치르는 기능사 시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반 가까운 사람들은 시험 때까지 그대로 학교에 남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적어도사나흘 뒤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곧 만날 테니까.
졸업 뒤 일주일
그시험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나라에서 치는 많은 자격 시험이라는 게 그렇듯 현장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위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거였다.십 년 이십 년을목수 일을하다가 갑자기 '쯩'이 필요해진 이들도그냥 봤다가는떨어질 수 밖에 없다더라는. 네 시간 반 시간 안으로 평면도로 내준 도면을 입체 현치도로 그려내야 하고, 그것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데, 도면 읽어내는 일이 까다로울 뿐더러 거기에 맞춰 나무를 깎아 조립하는 일은 그 공식을 알아 숙달시켜 놓지 않으면함정에 빠지거나 시간 내 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험은 일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시험에 나올 그것들에숨어 있는 함정을 미리 알아 얼마나많이 연습해 봤는가에 달려 있는 거라고.교수님 말로도 시험 보고 돌아서면 다 잊어도 좋을 거라는 그런 거였다.그래서 시험 보기 이삼 일 전 연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안 그러면 일주일 지나 또 다 까먹어버릴 거라는 교수님 장담이 있기도 한 터라 나로서는 못내 걱정이었다.졸업식을 하고 시험을 칠 날까지 나는 더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텔레비전에서할아버지의 삶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추석에 내려고준비하고 있는데 시간이 넉넉치않아 졸업하고는 바로 그촬영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험 보는 날만잠깐 학교로 돌아가시험을 치고 다시촬영을 잇기로.
시험 전 날, 다시 학교
내가 시험을 보는 날은 일요일이었고 토요일 저녁에야 학교로 돌아갔다. 사흘에 나눠 시험을 보기 때문에첫날 보는 열댓명은 그날 시험을 보고 여유로운 얼굴들.하필이면 그날은 가장 안 나올 거라 예상하던 2번 도면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당황을 한 모양이었다.뒤에 얘기를 들어보니 평소 잘 한다고 하던이들 몇 사람도당황해 쩔쩔맸다고는하는데 어쨌든 다들 네 시간 반 안에 다 만들어 놓고 나오긴 한 모양이었다. 걱정이야, 정말.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과 저녁부터 먹고 나니이내 깜깜해졌어.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다.밤새 다시 연습을 해 보겠다면그게 문제는 아니겠는데 그랬다간 다음 날 아침 시험 시간에잠이 덜 깨 삐리리한상태가 될 텐데, 그래서도안 될 것 같으니. 말이시험이지 네 시간 반 노동을 하는 것이니공식이고 기술이고를 떠나 첫째는체력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래, 그냥 자고 내일 아침 개운하게 일어나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는 하는데,그리 마음을두려다가도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다시 연습실로 갔다.그래도 졸업 전에 여섯 개 도면을 다 그려보기는 했으니까 혹시 모르니 아무 거나 하나만 그려보고 자야겠다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해 티자와 삼각자를 들고 그리기 시작하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틀리기 시작했다. 이 점이 저 점으로 가더라, 이쪽 점으로 가더라,이 각이 왜 이렇게 틀어지게 되었지,왜 이렇게 지난 번 그림하고 다르게 나오지……?몰라, 몰라, 모르겠어. 큰일났다 싶어 그 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1번 도면부터 그렸다. 나름 가장 많이 연습한 게 그거였다 싶은데 세 번이나 잘못 그려 망치고 네 번째에 가서야 겨우 그릴 수 있었다. 이미 밤 열두 시가 다시 넘어 버렸어. 2번은 오늘 나왔다니까 그건 건너 뛰어. 3번을 그리는데 이것도 마지막 빗서까래에 가서 어떻게 펼치는 건지가 까맣게 생각나지 않아. 겨우 3번 그리는 방법을 다시 배워 확인하고, 다음은 4번 도면……. 그렇게 새벽 두 시까지 그리니 겨우 감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냥 자버렸다면 큰일 날 뻔 했지, 하나라도 그려 보고 자야지 하고 나선 것이 천만다행이었어. 시험 전날마저도 혼자 낑낑대다 강의실 불을 끄고 나왔다.
건축목공 기능사 시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1번 도면이었다.지난 밤 세 번을 틀리고 네 번만에 그리면서 1번만큼은 확실히 그릴 줄 알게 되었으니 운이 좋았던 것이다. 주어진 도면을 보고 현치도를 그리는 것에서는 애를 먹지 않았다. 시간도 크게 걸리지 않아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고 중간 쯤 되었을 때 나도 나왔다.강의실 시험장에서 다 그린 현치도를 가지고 작업장으로 가 그 때부터는작품을 만드는 일.시험에 쓸 나무를 지급받고,펼친 도면 위에 나무를 대고 먹선을 놓으면서 톱질과 끌질로 부재 하나하나 만드는 일. 암수맞춤 장부로 만드는 도리와 추녀를만드는 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을까, 깎아 맞춘 것도 제법 잘 나왔다. 이제는 되었다 싶었다.잘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크게 느리지 않아 보였다.이렇게만 하면 시간 안으로 다할 수 있겠다 싶었고, 오히려 시간이 남을 것도 같았다. 그러니조급해 서두르지 말고침착하게 해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부러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면서 했으니까.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나고. 어, 그런데 이상하다. 서까래 하나 톱질한 면이 조금 거칠게 되어 있어 그곳을 매끈하게 다듬는답시고면 톱질을 다시 하는데 교수님이 지나가면서 감독관들 눈을 피해 "박기범 씨 빨리하세요! 그런 건 대충넘어가!" 하는것이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실감을 못했다.뭘 그리 늦었다고 그러시는지.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어느덧 하나 둘 다 완성품을 만들어 내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아직 서까래 두 개를 더 깎아야해, 못질은 시작도 못했어. 뒤를 돌아보니아직 톱질을 하는 사람들이더러 있기는 했다. 마음이 놓였다. 그것도 일을 꽤 잘하는 축에 속하는 친구들이었으니괜찮다 싶었다. 그리고 시험 시작 때 감독관한테 듣기로 네 시간 반 안으로 다 못만들면 연장 시간이라는 걸 삼십 분은 더 써도좋다했으니. 물론 십 분에 오 점씩 감점이 된다 하지만, 잘만 만들면야 삼십 분을 다 써 십오 점을 감점당해도합격점인 육십 점은 넘을 수 있겠지 싶기도 하면서.
시험장에 혼자 남아
시험 종료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는 대부분 사람들이 작품을 다 만들어 작업대 위에 올려 놓고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시간이 다 되어 갈수록 누구보다 속이 타는 건 교수님인 듯 싶었다. 이런 얘기 해서 되려나 모르겠지만, 현치도를 그릴 때부터 작업장에 와 작품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교수님은 누군가 잘 몰라 헤매고 있거나 실수가 눈에 보일 것 같으면 살짝 가르쳐 주고 지나곤 했다. 아마여느 시험장에서나 다들 그 정도는 알게 모르게되어지는 모양인데, 교수님으로서는 어떻게든 학생들을 모두 합격시키려는 마음에 학생들 이상으로긴장한 모습이었다. 속으로야 얼마나 답답하실까, 마음 같아서는톱이라도 빼앗아 들고는톱질이라도대신하고 싶으셨겠지.20분 남았습니다, 10분 남았습니다…… 교수님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리며 좀 더재고 야무진 손놀림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그 시간 남아 있는 이들이라면 남들만큼 일을 잘하지는 못하는 이들일 터. 누구 다른 사람 얘기를 할 것 없이 나만 봐도 그래. 공식을 거의 외다시피하고 몇 번이나 연습해 본 현치도면 그리는 거야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지만,톱질과 끌질, 망치질에 들어서는서툴고 어설픈틈이 메워지지않았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몰라, 얼굴에서 뚝뚝 마주 떨군 것들로 도면은 벌써 흥건히 젖어 버렸어,수성펜으로 그은 선들이 퍼렇고 뻘건 잉크로 번지면서. 시험 시간 종료를 앞두고 시험장에는 감독관 셋과 교수님, 그리고 나와 내 앞 자리 형님 한 분만이 남아 있었다.앞자리 형님은 처음 도리암수장부를 만들 때부터둘을다 암장부로만 깎아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그 하나를 다시 수장부로 깎는다는 것이 치수보다 짧아져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서까래를 깎을 때도 뭐가 잘못 되었는지 계속 붉으락푸르락침착을잃어 조급하고 불안스런 모습으로 어렵게 만들어오고 있었다.시험 시간이 다 되었고, 앞 자리 형님도 아슬하게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놓고는 시험장을 나갔다.
연장 시간
연장 시간을 쓰는 것으로 넘어가면서시험장에는 그야말로 혼자 남게 되었다. 감독관 둘은 맨 끝 작업대에 놓인 작품부터 하나 하나 살피며 채점을 시작했고, 시험장 바깥은 웅성웅성, 마치 시험이 다 끝난 듯한 분위기였다. 마음이 쫓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혼자 남아 톱질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편안하기까지.연장 시간삼십 분을 다 쓰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타는 건 내가 아니라 감독관 옆에 서 있는 교수님인 것 같아.이내 부재 깎는 것은 다 했고 이제 추녀와 서까래에 물매를 잡아 하나 하나 조립해 못을 박는 일만 남았다. 아뿔싸, 그런데 나는 시험 전 1번 도면 작품을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것이다. 추녀와 도리, 바깥 서까래까지야 다른 도면과같은 거라 해 봤다지만빗서까래를 어떻게 맞춰야할지 깜깜해졌다. 도면을 다시 들여다 봐도, 옆 작업대 위 다른 이가 만들고 나간 작품을건너다 봐도그걸 어떻게 맞춰 끼워야할지,물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헤매고 있는 모습을 봤는지어느새 교수님이 앞을 스쳐가면서 서까래 나무에 손톱자국으로 금을 그려줬다. 아아,물매선이 거긴가 보다. 그리고는서까래를 바이스에 물려 대패질로 물매를 잡았다. 생각보다 깎아낼 면이 많아, 그래한참을 깎고 있는데 놀란 얼굴로 교수님이 쫓아오더니 누가 그 쪽으로 물매를 내라고 했냐고, 반대쪽,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하라고 급하게말해주는 것이다.에이 참, 어쩐지물매를 잡아도 도리 위 얹는 곳이 이상하게 삐딱하더라. 이제는 어느 정도 다 되어 못질, 못질, 못질.못질. 그런데 이 못질이라는 게 그냥 반반한바닥이거나 어디 힘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받치며 때릴 수 있는 게 아니야.빗각의 톱질이 어려웠던 만큼,힘받아줄 곳 없는 채 빗각으로 쳐야 하는 못질은 쉽지가 않았다. 드릴을 가지고 미리 못자리 구멍을 내고 하는데도자꾸만 엇나간다. 각을 맞춰야 하는 부분 못질을 하다보면 못을 때리는 힘에 조립할 부재가 밀려나 비뚤게 못질이 되어 있기도 해. 왜 그렇게마음처럼 되지가 않는 건지.그렇게한참을 끙끙대고 있노라니저건너편에서 교수님이 시간 알려주는소리가 들렸다. 연장 시간도 이제 십 분 남았습니다, 칠 분 남았습니다……. 겨우겨우 못질을 해 도면 대로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교수님이 지나더니 추녀 끝과 양 끝 서까래 둘을 왜안 맞게 못질해 놨냐면서 당장 못을 빼라고다급하게 말해줬다.현치도도 잘그리고 부재도 잘 깎아 놓고 조립을 왜 이렇게 했냐면서,어느 부분이든도면이 가리키는 것보다 10mm가 넘게 차이나면 감점이고 뭐고 무조건 실격인데, 못 하나만 잘 치면 될 걸 왜 이렇게 안 맞게 했냐면서 어서 못을빼라 한다.어거지로 못을 뽑아 내느라 부재가 상처투성이다.다른 건 다 잘 됐어, 추녀 높이만 맞춰, 그러면 돼! 귀에 대고 교수님이얘기하는데얼마나 간장을 녹이는 목소리던지.각을 맞춰 다시 못을 박았다. 벌써부터 내 뒤로 와 서 있던 감독관이, 내 망치질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연장 시간 종료를 알렸다.네, 다 만들었어요.
해 냈다
쓰러질 것 같았어. 연장을 챙겨 시험장을 나오는데 문 바깥에 서 있던 분들이 막 손뼉치는 소리가 들리네. 누구누구였는지 얼굴도 기억나지가 않아. 마지막 망치질을 하기 전까지도 그리 조급할 것도, 불안할 것도 없었는데 다 만들어 내고 나서 걸어나올 때만큼은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 해 냈어, 했어, 나도 끝까지 했어……. 가슴이 쿵쾅쿵쾅, 다리에는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 것 같은데 가슴이 얼마나 크게 차올라 뛰는지.그런 기분이었어, 몇 해 전 마라톤을 뛴 적이 한 번 이었는데, 아마 천 명 정도 참가했었지, 거기에서 오백 몇십 몇 등, 그런데 그게 완주한 사람이 오백 몇십 몇 명이라 꼴찌를 했던 거지. 같이 뛴 친구들이랑 뒤에서 나란히 일이삼. 경기 시간이 너무 지나서 마라톤 한다고 경찰들 나와 차들 못다니게 한 것도 다 풀리고 앞에서 빵빵 뒤에서 빵빵, 골인 지점 행사장도 거의 청소가 다 끝나 그곳을 겨우겨우 기다시피 끌다시피 들어갔으니까. 그 때 그렇게비틀비틀 겨우 완주를 해 골인지점에 들어갔을 때, 그 때가 떠오르대. 아, 다 했다, 했다, 끝까지 했다.물 좀떠다 줘,사무실에 얼음 물 같은 거 있으면, 그것좀 주세요…….
기운을 차리고 교수님부터 찾았어. 나보다 더 애를 녹이며 지켜보던 교수님한테 뭐라고라도 말을 하고 싶더라고. 교수님은 벌써 강의실로 가서 다음 날 시험 볼 사람들 준비를 도와주고 계시던데. 그래, 그 강의실 앞으로 가 교수님께 소리쳤지. 교수님 고마워요. 합격이 되고 안 되고 떠나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그러시네. 놀랐대. 그렇게까지 끝까지 할 줄은 몰랐대. 교수님도 다른 시험장 감독관으로 수 없이 나가봤지만 그렇게 남아 끝까지 하는 사람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면서. 보통은 네 시간 반 해서 안 된다 싶으면 벌써 포기해 다 던져버리고 나가지, 그렇게까지 남아 하는 사람들이 없다나. 수고했어요, 정말 수고했어요. 결과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좋을 거예요. 내가 감독관으로 나갈 때도 그렇게 하는 사람 것 있으면 조금 흠집이 있거나 비뚤어진 게 있어도 감점을 잘 안 매기거든요. 이번 감독관들이 어떻게 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감독관 세 사람도 모여서 그러더라고요. 저 사람 공구 다루는 것도 어설픈데 그걸 붙잡고 끝까지 하는 게 놀랍더라고, 감동받았다고들 하니까 아마 잘 될 거예요. 아니, 이 시험 떨어지더라도 자격증 필요하면 나한테 와요, 내가 하나 해 줄 수 있으니까. 정말, 정말 수고 했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처음부터 자격증을 꼭 따야겠다 해서 이 시험 본 거는 아니었어요. 그냥 나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할 수 있는지,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그날 저녁 시험 보느라 모인 동기분들이랑 교수님이랑 같이 삼척으로 나가 밥을, 술을 먹었다. 다들 하는 말이 이제야 비로소 졸업을 하는 것 같아. 졸업식 때도 마음이 짠하기는 했지만 시험을 앞두고 있어 그 마음이 어느만큼 반감된 것 같았는데 이제 진짜 다 했다 싶더라고. 오늘에야 정말로 정든 목수학교를 떠나는구나.
Song Of The Breeze / Ray Jung
언젠가는
지금은 부산, 그날 그렇게 시험을 보고, 학교에서 '진짜' 마지막 술자리를 갖고는 바로 부산으로 내려와 이어지는 촬영을 마쳤다. 부산에는 우리 방 뽕따이 형이 살고, 김해에 상훈이 형이 산다 했지.마침 부산 촬영이 며칠 있어 내려온 길에 하루를 더 있으면서 형들을 만나고 가려 남아 있다.아, 상훈 형은 목수 일자리가 생겨 지금 여기에 없다나봐. 얼굴 못봐 서운키는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일할 곳이 있어 갔다 하니 아쉬운 마음보다 잘 됐다 하는 마음이 더 들어. 뽕따이한 형 어머니가 오늘 암 수술을 받으신다 했는데, 아마 지금쯤 수술실에 들어가셨을 텐데, 잘 되어야 할 텐데.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가네. 동해에 있는 제재소 목수로 일자리를 얻은 은호 형이랑 명일이랑도 부산에 내려온다 했고, 목수학교 다니던 중에 결혼한 준아 형이랑 형수님도 통영 거쳐 이리로 온다 했으니 두어 시간 있으면 그 반가운 얼굴들 다시 만나겠네. 방송 일로 인터넷이라는 것도 할 짬이 나지 않아 조금 전에야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학교장이 운영하는 '살아있는 집' 직원으로 들어간 형들은 벌써부터 도계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올라 있네. 다 했어, 정말로. <목수학교 일기>라는 것도 이걸로 끝일 거야. 혹시 앞으로 쓰게 된다면그 땐'목수학교 일기'가 아니라 '목수일기'가 되겠지.집을 짓고 싶어.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얼마나 좋을까, 네 시간반 걸려 깨끗한 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해도다섯 시간 걸려 상처투성이 것을 만들 수는 있잖아. 그런 내 집을, 그렇게 지을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그 때가 되면 <목수일기>라는 것을쓸 수 있겠지.이렇게.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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