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학교

이제 정말 한 주일이 남았어. 그마저도 지난 금요일로 해서는 한옥 집짓기 일을 마쳤다. 시간이 모자라 깎아놓은 부재들을 다 올리지는 못하고 두 칸만 올렸지만, 지난 번 일주문 올릴 때도 그러한 것처럼 힘들여 깎은 부재들을 올리는 순간은 정말 감동스럽다. 이제 남은 일주일은 졸업하고 일주일 뒤에 있을 목공기능사 시험 준비. 실은 벌써부터 이 준비는 지난 주부터 교육을 다 마치고 난 뒤 밤늦도록 따로 배우고 있었다. 이제 고작 삼각자, 티자 쓰는 법을 배우면서 도면을 그리는 단계. 중학교 기술 시간에 그 비슷한 것을 해 보기는 했지만 아주 처음인 것들이다. 어휴, 큰일이네. 자꾸만 틀려.

남은 한 주일 동안 같이 배우는 친구들, 형님, 동생들하고 더 알뜰한 시간 보내고 싶다. 잠깐 짬이 나더라도 혼자 어느 구석에 앉아 있거나 하지 말고 얘기도 더 많이 듣고 얼굴도 천천히 더 보고 그래야지. 땀 뻘뻘 더워 힘들 때 먼저 시원한 물도 떠다 주고, 모르는 거 있으면 가서 더 묻고 그러면서.




조탑


매미들이 반겨주었다. 한 그루 심어두었던 포도나무에는 네 송이가 열려 알이 제법 굵다. 집 앞에 서서 태찬 아저씨 흉내를 내며 “집사님, 태차이 왔니더!” 하고 불러보았다. 닫힌 문 안에서 “누고?” 하는 힘없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아. 일인이역이 되어 그 목소리도 내가 다시 따라. 그 다음에는 다시 태찬이 아저씨 차례로 돌아가 “태차이니더.”하고 다시 흉내. 구름과 바람으로 그리 뜨겁지는 않았다. 이 앞에 함께 쪼그려 앉아 놀면 참 좋을 텐데. 매미매미 우는 소리만 맴맴맴맴매애애애앰.


주말마다 유품정리 일을 하던 일이 이번 주로 거의 다 마무리 되었다. 유품 정리를 하면서 보게 되고, 다시 알게 되고,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그 많은 것들, 그리고 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곤 하던 할아버지의 내밀한 고백과 이야기들……. 이 뒷일을 하는 동안 보고 들어 알게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것도 아주 모르는 것으로 하기로 한 것이고, 아무 손도 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짐을 정리하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들이 나오면 그것들만 따로 챙겼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내 글씨들을 보면서 눈이 젖어들기도 했고, 웃음이 나왔고, 목 밑이 달면서 몹시 보고 싶었다. 아마 내가 쓴 글들을 다 놓고 고른대도 그 편지들보다 잘 쓴 건 찾지 못할 것 같아. 꼬박 하루 종일, 이틀, 사흘을 걸려 쓰던 편지들. 석고개에서, 화성리에서, 이라크에서, 죽변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목수학교에서 보낸……. 아직 다 보낸 것도, 보내지 못한 것도 아닌.


석고개

갑식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잘 지내쥬? 이제 얼만큼 배웠어유? 뭘 쪼끔밖에 뭇배워유?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이제 졸업하면 우리 공장 와서 일하믄 디겄네. 아주 요새는 이 놈 새끼들 때매 마을에서 얼굴을 못들구 다니깄어유. OO 이늠은 거기 동신상회 있쥬? 우리 같이 살던 쥔집 말유. 거그 금고를 털다가니 걸려가지고는 경찰서루 보닌다는 거를 내가 사정사정해서 껀져 줬슈. 그르고 나서는 또 얼마 안 있다가는 내방리 쪽에 가서는 또 사고를 쳐가지구는……. 오늘은 진선네가 왔어유. 기범씨 떠나구 진선네두 원주로 갔다가니 이내 서울로 갔잖아유. 우리끼리 한참 기범씨 얘기를 했는디, 근데 기범씬 석고개 한 번 안 왔다 가유? 다덜 보구 싶어 하는데. 으응, 진선이는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돼서는지 엄마보다 더 클라 그래유. 그치, 기범씨 이사갈 띠가 초등힉교 2학년이었으니깐 6학년이 지난 게 맞네유. 진희요? 진희 얘는 이제 컸다구는 아는 척두 안 해유. 꼬맹이 때는 지 아빠 따라서 '갑돌이 아저씨!' 하구 쫓아다니더만, 어쩔 때는 갑돌아, 갑돌아 그러기두 허구. 그럼 졸업장두 받구 그런 거예유? 지는 졸업장 받은 지가 언진가 까마득한데. 그럼 나두 거나 딩겨볼까? (아유, 아저씨만한 목수가 어디 있다고 거길 가서 배워요?) 그리두, 나야 맨날 탁자만 맨드는 목수구…… 시험두 본다구유? 그런 셤도 있어유? 그거 나두 봐야겠네. (아저씨 같은 기술자가 그런 거 해서 뭐 한다고요.) 기술자는 무슨, 내가 뭐어 기술자여, 톱밥 가루 먹은 걸루 치면 그거라믄 몰러두. …… 그래유, 기범씨 전화가 너무 길었지유? 지가 또 전화디릴게유. 그른대유, 그거 연장 쓸 때 조심히야 돼유, 잘못허면은 손 짤라지니까는 그건 절디루 조심히야 돼유. 나 현장에서 어디 짤라 먹는 사람 많이 봤어유, 그러니께 그거 한나만 조심해유. 또 전화디리께유. 네에, 잘 기세유.


언제나 형이 먼저 전화를 해. 일 년 만에, 이 년 만에 통화를 해도 꼭 석고개 이발소 집에서 지내며 옆 집 나란히 살고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한다. 한 번 전화를 하면 짧아야 삼십 분인데, 오늘도 그 정도 지나 내가 마치는 인사를 하려니 그제서야 갑식이 형 그 느릿한 말투에 다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절디루 조심히야 돼유, 그거 한나만 조심히유……. 한 번도 어른처럼 굴지 않던 띠동갑 갑식이 아저씨가 처음으로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또 목이 달아.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합니다) / Violeta P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제가 두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많은 별,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구별 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것을 제게 주신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oido que en dado

su ancho graba noche y di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a de mi bien amado.


귀뚜라미와 카나리아의 노래,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짖는소리, 소나기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청각 그 많은 것을 제게 주신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decedario con e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ru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es cansados con ellos anduve

ciudades y charcos, playas y

desi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 tuya tu calle y tu patio.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당신의 집과 당신의 길,

당신의 정원을 걸었던 내 쉼 없는 다리의 행진……

그 많은 것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el corazon que agita su

marco c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humano,

cuando miro al bueno tan lejos del malo,

cuando miro al fondo de tus ojos claros.


인간 지식의 결실, 악에서 먼 선,

당신의 맑은 두 눈 그 하염없는 깊이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감동……

그 많은 것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el canto de ustedes que es el mismo canto.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io canto.


행과 불행을 구별하게 하고

웃음과 울음을 제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울음으로 제 노래는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이의 노래는 같은 노래이며

모든 이의 노래는 또한

제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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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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