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박사일

굴 속의 시간 2010. 2. 4. 22:53

다시 여관.처음에는하루 쯤 둘러보고 갈 요량이었다.가까이에 있는 수덕사와 개심사, 해미읍성까지 묶어 일박이일.길어야 하루를 더 있게 될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로 사흘 째.한국고건축박물관이라는 곳, 솔직히 이 먼길을 찾아나서면서도이곳이어떤 곳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자료를 찾아 싸이트를 떠돌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정도, 우리중요 건축 문화재들을 실제 모습대로 축소해 놓았다기에 답답한 마음에 찾아들게 되었을 뿐이다. 책과 도면, 필기한 공책만으로 씨름을 하다가 어떤 대목에서 한 번 막히면 도무지 해결해 낼 수가 없어. 직접 가 보고, 만져보고, 뜯어보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래서당장 진도에 맞춰 내용을 정리하고 도면을 그리는 데에도 시간에 쫓기기는 했지만, 쫓아나서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가까이에 수덕사가,게다가 개심사와 해미읍성까지 볼 수 있겠으니시간 운용을 잘못하는 것만은아니겠다하면서 말이다.

아, 오늘도 박물관에서 하루종일,가방에도면 자료를모두 지고 오기를 천만다행이었다. 도면 자료와 수업 자료를 들고, 그것의 건축 모형 앞에서 하나하나 뜯어보고, 만져보고, 이쪽에서 또 저쪽에서살펴보면서 얼마나 흥분이 되었는지 모른다. 일반 관광객들이야 길어야 이삽십 분 사진 몇 컷을 찍고 돌아나가는 그곳에서 벌써 입장료만 두 번을 끊었다. 관광철도 아니어서 어쩌다 들어오는 방문객을 빼면 박물관은 텅텅 비어 있어.그 텅빈 박물관,그대로 재현해 놓은 구조물들 사이를 헤매이다 보면 해가 어떻게 넘어가는 줄도 모른다. 오늘만 해도 오전까지만 더 보다 올라가야지 하고다시 찾았다가는날이 저물어 폐관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마음만급해졌다.쫓겨나듯 박물관에서 나와 어쩌나, 어쩌나 하던 끝에 다시 이곳 해미읍성이건너다 보이는여관에 들었다.내일이면 나흘 째, 다시 여관 잠을 자고 박물관으로 출근이다. 밤이면 다음 날 살펴볼 건축물의 도면과 구조 특징을 미리 찾아보느라 금새 새벽이 된다. 여관이라면 술에 취해 업혀들어오거나 못다한 술자리를 더 잇느라 술 봉다리를 사들고 찾아드는 곳이었을 텐데,이제는 도면과 씨름을 하느라 여관에 든다. 참으로 낯선 경험이긴 하지만 그만큼 짜릿한 기분이다. 첫날 둘러본 수덕사와 개심사, 해미읍성에서의 감동과 떨림은 또 어떠했는지.

한 며칠은 벽에 막힌 듯 답답하고 막막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 있는지 삼박사일 째, 가슴이 뛴다. 흥분이 되어 여관에 들어서도 잠을 잘 수가 없다.적어도 내가그 앞에서뜯어본 그것들만큼은도면 없이도 눈앞으로 기둥이 서고,창방과 주두가 올라가고, 첨차와 살미가 교차하고,헛보와 초방,대량과 퇴량, 솟을합장과 대공,화반과 우미량들이 만나고 엮이며 하나의 건축물이 보이는 것이다.이분두이거나 삼분두로 머리를 깎아내고, 쇠서와 앙서의 초각을 넣고, 출목에 따라 처마의 높이와 깊이가 달라지면서집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 위로 서까래가 얹히고 적심 위로 기와가 덮이며 집 모양이 드러난다. 아,이 흥분을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어젯밤 눈발이 있을 거라더니 포슬포슬 하얗게깔아놓았다.바람에 떠다니는 내 눈송이 하나, 박물관으로 가는 길,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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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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