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굴 속의 시간 2010. 1. 25. 15:33

봉정사 극락전


여섯 시간의 강의 동안 스무 개 남짓한 건축물을 살폈는데 그 가운데 두 시간을 온전히 봉정사 극락전만으로 했다. 그만큼 중요한 것. 이 땅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기록적인 면 뿐 아니라 이 건물은 그 자체로 한국건축의 모든 기원을 말해주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구조를 묻는 전공시험에 꼭 봉정사 극락전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을 설명하더라도 그 양식의 기원이 어떠했고,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는지를 말하려면 그 어느 건축물이라 해도 봉정사 극락전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봉정사 극락전만큼은 미리 찾아 조사를 했기에, 그리고 그곳은 이래저래 적지 않게 다녀온 곳이기도 하기에, 그 감은 좀 더 남다를 수가 있었다. 다시 가보고 싶다, 봉정사. 요 몇 해 사이에도 몇 차례 다녀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그건 관광이거나 산책에 머무는 그것이었다. 아, 이제 보이려나? 창방과 도리 사이의 복화반, 마구리가 직절되어 있는 첨차, 3칸의 입면과 4칸의 측변. 바깥 고주와 안 고주, 기단석과 난간의 쇠실이, 연등천정과 전돌바닥.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보여지는 주두의 곡선면, 그리고 가장 나를 애먹이고 있는 기둥 위로 올라가는 공포. 첨차와 제공, 출목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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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어느 블로거가 올린 봉정사 극락전의 내부 사진과 그 설명들이다. 옮겨온 곳

국보 제 15호 봉정사 극락전




측면가구



현판




내부가구


내부가구와 닫집

종목

국보제15호

명칭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분류

사찰건축

수량

1동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시대

고려시대 후기

소유자

봉정사

건립자

봉정사


일반설명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연 (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72년 해체/수리할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 지붕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적어도 1363년 이전인 고려중기(12~13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는 고려시대의 건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설명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 중 최고(最古)의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 3년(1625) 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개칭한 것 같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지보적 존재라 할 수 있다.


기단부 - 극락전 전면의 화강석 기단은 높이가 약 1.5m이며

지대석 위에 2단을 쌓고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2단보다 돌출시켜 쌓았다.

(기단은 튀는 빗물을 막고, 땅의 습기를 피하며, 건물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건물 아래에 돌을 쌓거나 다른 자재를 써서 쌓아올린 단을 말한다.)


마루바닥 내부 - 극락전 건물의 내부에는 원래 툇마루가 깔려 있었으나

이것은 후대에 설치한 것으로 해체 복원시 판명되었다.

- 건물 복원시에는 이를 제거하고, 마루 밑에서 출토된 전돌을 바닥에 깔았다.


공포 - 목조 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안정되게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이나 벽으로 전달시켜주기 위해 부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기둥 위에서 대들보의 아래까지

짧은 여러 부재를 중첩하여 짜맞추어 놓은 것을 공포라고 한다.

극락전의 공포는 기둥 위에만 놓여지는 주심포 형식으로

주두, 소로, 그리고 첨차로 구성되어 있다.


주두 - 주두란 기둥 머리에 놓이는 목침과 같이 생긴 부재이다.

극락전의 주두는 주두 굽의 단면이 굽받침 없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형식은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형식이다.

극락전이 고려 양식이면서 신라 시대의 건축 양식을 간직한 고식이라는 것은,

이 주두의 곡선 처리에서 알 수 있다.


주두 2


첨차 - 첨차는 주두 또는 소로에 얹혀 도리 또는 그와 직각 방향으로 교차하여 십자 맞춤을 하는 부재이다.

일반적으로 첨차는 외부에서 아래쪽 사각으로 나가는 쇠서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극락전의 첨차는 쇠서를 만들지 않고 사각으로 간략하게 끝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첨차 2


복화반 - 복화반은 창방 위에 얹어서 도리를 받는 부재로 공포와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화반이 거꾸로 선 모양이라 해서 복화반이라 한다.

- 대공은 마룻대를 받치는 부재로 보통은 두꺼운 널로 만들거나 초엽 무늬를 새긴 것이 많다.

- 극락전에는 대들보 위에 2개의 복화반 대공으로 덧보를 받고, 이 위에 종량을 놓았다.

- 여기에 쓰인 대공은 전면에 보이는 복화반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복화반 대공이라 하고,

삼각형으로 생겨 산형대공이라고도 한다.

- 이 또한 다른 부재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형태이다.

연자대공 - 극락전의 솟을 합장은 인(人)자형으로 단면을 둥글게 처리하고,

길게 뻗어서 주심도리까지 이어진다.

- 합장은 원래 마룻대를 고정시키기 위해 종보에서 사각으로 버티게 대는 부재인데,

양쪽에서 동일한 각으로 받치고 있다.


불단 - 불전 내부에서 불상을 한 단 높이 봉안하기 위해 따로 설치한 단을 불단 또는 수미단이라 한다.

이 명칭은 불타가 상주한다는 수미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을 수미산에 안치하는 것은

불전 내부를 수미산으로 간주하여 특히 신성한 장소로 꾸미기 위해서이다.

- 극락전 불단의 특징은 하대와 상대를 넓게, 중대를 좁고 낮게 만들고

그 사이에 투각한 당초 무늬 청판을 끼운 점과

상대 갑판 밑면에 복련을 얕게 양각한 점,

불단 상면의 테두리에 난간을 설치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천개 - 천개는 원래 인도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귀인들이 썼던 산개에서 유래한다.

-봉정사 극락전 안에 설치한 불전형 불감은 다포계 우진각 지붕을 한 최고(最古)의 불전이다.

- 지붕은 불전 건축의 지붕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으로

다포계의 공포에 겹처마 지붕을 받치도록 하였다.

- 공포의 짜임새나 창방과 인방 사이에 투각한 모란 당초문 조각 등은

이 천개를 포함한 불감이 건물의 건립 시기와 같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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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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