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답사 1

굴 속의 시간 2010. 3. 31. 03:33

마곡사

공주 마곡사에 다녀온 것,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사진들을 보는데무얼 어떻게 정리해봐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대웅보전만 집중해서 담아놓고 말 것을 그랬나, 답사지에 들어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이것저것 사진기에 담아놓기 바쁘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면 이 사진을 왜 찍었던가는 고사하고, 이사진이 어느전각, 어느 건물의 것이었던가조차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뒤엉키는 것을. 어쩌면이 사진들을 놓고서 바로 그 의문들을 찾아가는 일이 공부일 수 있겠다 싶다.마곡사 내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 어느 건물에서 찍었던 것인지, 왜 찍었던 것인지 당시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내는 것.

마곡사에 들어가면 해탈문과 천왕문들로 들어가기 전 왼쪽(서쪽)으로 몇 개의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답사수첩>에 있는 지도를 보니 영산전과 명부전, 국사당이라 나와 있었다. 물론 그곳을 찾은 것은 중층건물인 대웅보전을 보기 위함이었고, 더불어서 고려시대 특수양식의 탑 가운데 하나인 구층석탑을 보겠다는 거였지만, 사찰 전체를 보는 속에서 그것들을 보는 것이 더욱 제대로 보는 것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지금 다시 이렇게 사진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기만 해.

일단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이 마곡사 진입로의 왼쪽 편에 있는 영산전이다. 자연석 석축을 이단으로 쌓았고, 중앙에는 계단이 하단에서 상단으로 좁아지면서 이어진다.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주심포 계열의 오량가 건물이다. 겹처마를 하고 있는. 정면의 다섯 칸은 똑같은 폭으로 되어 있으며 삼분합문을 달고 있다.

마곡사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효종2년(1651년)에 다시 세웠다고.

측면에서 보면 내고주들이 길게 올라가 종보를 받고 있고, 내고주와 외평주 사이에는 툇보들로 이어주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뒷열의 내고주만 있고, 앞열의 내고주는 생략되어 있다. 대들보가 뒷열의 고주까지 이어지면서 실내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깥 측면에서는 '외평주-툇보-내고주-종보-내고주-툇보-외평주'로 되어 있다면 내부공간에서는 '평주-대들보-내고주-툇보-외평주'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그러니까 말하자면앞열의 내고주를 생략하고 대들보를쓰는 것으로 전열감주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내부 공간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 또한 우물천정을 층급으로 두어 예불공간과 불전공간에 위계를 나누었는데, 낮은 단의 천정이 끝나는 지점 쯤에서 내고주가 섰어야 했을 텐데, 이렇게 실내에서는 대들보를 길게 두면서 그 자리에 내고주를 생략했다.

저 멀리 하얀 벽체 부분을 보면 내고주 둘이높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불상들이 놓인 쪽 후열의 내고주들은 생략되지 않고 역시 높이 올라간다. 그러니 예불자들이 들어와 있게 되는 앞 열에서만 내고주를 생략한 모습. 사진 각도를 좀 더 잘 잡을 걸 그랬다. ㅠㅠ

안에서 나와 건물을 한 바퀴 돌아 남쪽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다.여기에서 기둥과 보, 도리를 그리게 되면 나름 이 건물의 측면 바깥면의 가구도가 될 것이다.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벌통을 찍으려고 그랬나? 아아, 종도리 밑에 장혀와 뜬장혀가 틀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방 찍어두었던 것 같다. 중도리 밑에 있는 장혀도 살짝 휜 것 같다. 그러나 이 건물은 벌써 사백 년 넘게 서 있어온 것이니 잘못 지은 거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긴 세월 속에 저 정도 나무가 틀어진 것을 두고 건축상의 하자라 말하기에는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바깥 귓기둥(우주)를 보면 두 번이나 동바리 이음을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옛 건물들을 보거나 할 때면 이처럼 기둥 바깥 부위로 장부의 흔적 같은 것이 보이곤 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은 해체수리 과정에서 기둥을 돌려 쓰거나 아님, 다른 자리의 기둥을 갖다 쓰느라 그 흔적이 드러나게 되는 것인지, 혼자 그런 식으로 추측은 하는데 그게 맞는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알아두려면 교수님께 물어봐야겠네. ㅠㅠ

영산전에서 ㄷ자 요사채를 건너고 나면 명부전이라는 전각이 나온다. 아, 이 사진들을 들여다 보고 한참을 헤맸다. 익공계인가 했더니 주상포 사이에도 간포처럼 포가 짜여져 있다. 그렇담 다포계인가 하는데 출목을 보면 다포계도 아니다. 그러면 이건 뭘로 봐야 하는지. 내가 아직 익공계에 대해 정리가 덜 되어 있어 그런 것인지, 익공계는 주심포처럼 기둥 위에만 포가 짜여지는 줄 알았는데 기둥 사이사이에도 이처럼 포가 올라 있기도 한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익공계가 맞다면 그 가운데에서도 이익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초익공과 이익공 사이에 재주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의아했다. 이익공을 쓸 경우에는 재주두를 쓰는 거라 어렴풋 알고 있던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거였는지…….

혼자 해결을 못해 끙끙거리다 그곳으로 함께 답사를 갔던 길목수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어디를 말하는지 모를까 싶어 마곡사 들어갈 때를 얘기해주면서 해탈문 들어서기 전 왼편으로 있던 건물들이라 설명을 하는데 아아, 영산전! 하면서 비슷하게 알아듣는다. 그런데 영산전 말고 거기에서 요사채 지나 나오는 건물이라 했더니 그거, 그거 명부전! 하면서 바로 기억해낸다. 속으로 우와아 했다. 나는 지금 사진 정리를 하면서야 그 이름들을 더듬거리고 있는데, 똑같이 답사를 다녀온 그 형님은 어떻게 그리도 잘도 기억하고 있는지……. 맨날 공부 안한다, 아는 게 없다 그러지만 내가 뭣 좀 물어보면 바로바로 척척 대답이다. 어쨌든 이 명부전 건물의 포작이 어떤 계열인지 헷갈리다 하고 물으니 길목수 형님도 컴퓨터를 열어 그 때 사진들을 보며 얘기했다. 익공계이면서 다포형식, 혹은 다포계이면서 익공 형식이라는……. 포를 짠 모양은 익공계인데 간포 자리에도 포가 있는 것은 다포계라면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혼합양식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며 말이다.

우리 수업시간에도 주심포계와 익공계, 다포계열의 특성들이 요소요소 혼합되어 있는 혼합 양식들을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 공부한 일이 있다. 어떤 건물은 하나의 건물 안에서 부위가 따라 공포양식이 다른 혼합양식이었다. 정수사 대웅보전이 그러한 예인데 건물의 뒷면은 출목이 하나이며헛첨차가 있는주심포계인데 반해 건물의 앞면 외출목 쪽은 출목이 둘이다. 건물의 앞면도 내출목쪽은뒷면과 마찬가지로 헛첨차가 있는 주심포나 익공의 모습이지만 외출목 쪽으로는 출목이 둘인 다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제 다시 정수사 대웅보전에 대해 정리를 할 때가 따로 있겠지만, 이 건물은 후대에 들어 앞으로 지붕을 더 내고 퇴칸을 증설하면서건물 앞면의 공포양식이 후대 양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해서 정수사 대웅보전에는 살펴볼 점들이 여러가지 있었는데, 아, 어서 정리하고 싶다. ㅠㅠ

혼합양식의 또다른 예로는 창경궁 명정문이 있다. 이곳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왔기에 잘 기억할 수 있다. 이 건물에서 공포양식의 특징은 하나의 건물에서 내/외출목이 다포와 주심포가 혼합된 모습의 양식이라는 거였다. 외출목은 주심포 양식인데, 내출목은 다포양식. 정수사 대웅보전은 건물의 전면과 후면 공포양식이 다르면서 전면의 공포양식 안에서도 내/외가 다포계와 주심포계(익공계)의 혼합인 모습을 보였다면 창경궁 명정문은 외출목이 주심포, 내출목이 다포인 혼합 모습을 보인다.

법주사 원통보전에서는 다포의 공포를 쓰고 있지만 마치 주심포처럼 기둥 위에만 포짜임이 되어 있다. 평방을 두고 있는 것이며, 내외 3출목을 이루고 있는 모습들은 다포이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포작이 없다. 이렇게 법주사 원통보전의 공포 혼합된 모습은 또다른 유형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법주사 원통보전의 공포에서 또다른 특징이라면 소첨과 대첨, 그리고 긴 가로재로 이어지는 순서가 아니라 소첨-중첨-대첨으로 포가 짜인 특이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법주사의 다른 건물들(팔상전, 대웅전)에서도 보이는데, 법주사를 중건할 당시 부재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증해주는 거라 하겠다.

법주사 팔상전의 공포 혼합 양식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건물이 목탑 형식의 오층 건물이라는 것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이랬을 때 법주사 팔상전은 각 층마다 공포의 모습이 다르게 되어 있는데, 맨 꼭대기는 다포 형식이고, 맨 아래층은 주심포로 짜여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2, 3, 4층은 다포식으로 짜올려진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식 배열을 하고 있다. 아, 복잡복잡ㅠㅠ. 그렇다고 2층과 3층, 4층은 같은 모습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저마다 초각의 모습이 다르고, 포짜임의 디테일들이 다르다. 그러니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층의 공포 양식이 다르다는 것인데, 이걸 어쩐다……. 법주사의 건물들은 중층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귓보와 귀잡이보, 귀고주와 귀잡이보의 혼합 양식의 대표적 예가 되더니만 공포의 혼합 양식에서도 빠지지 않고 대표 선수들이 되어 애를 먹인다. (아, 어서 법주사 답사 다녀온 것들 정리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확실이 정리하고 가야 할 텐데, 건물 하나하나가 이리 애를 먹이게 생겼으니 답사 다녀온지가 두 주일이 더 되었어도자꾸만미뤄두면서 다른 것부터 하게 된다. ㅠㅠ. 정리하자, 정리! 법주사를 사랑하자! ㅎㅎ)

이러한 것들 말고도 또다른모습을 보이는공포의 혼합양식이라면 장곡사 상대웅전에서 볼 수 있겠다. 이 건물에서는 법주사 원통보전이나 팔상전의 2, 3, 4층에서 보이던 혼합양식과는 거꾸로. 앞서 말한 그것들이 다포계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면서 배열은 주심포식으로 했다면, 장곡사 상대웅전에서는 주심포계 공포를 짜고 있으면서 다포식의 배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심포계 공포를 가지고 다포처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포를 짜올렸다는 것이다.아마 이 건물은 최초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인데 조선시대(1778)에재건을 하면서 그와 같은 양식 변화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포식 배열을 하면서도 평방은 보이지가 않는다. 다포 양식에서 평방은 주상포와간포들이 일정한 바닥면을 가질 수 있도록 받침 역할을 해주는 부재인데, 장곡사 상대웅전에는 다포와 같은 배열을 하고 있으면서도 평방이 없다. 다시 말해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포를 짜올리고 있으면서도 평방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니 이 건물에서는 평방이 아니라창방 위에서 공포들이 짜여 올라갔는데,간포들이 놓인 자리에도 창방 위에 주두가보인다. 이것은 아무래도 주심포식 건물이던 당시 건물의 뒤편에서 기둥 위에 썼던 주두들을다시사용하면서 앞면의 간포들 자리에 쓴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건물은 앞에만공포가 있고 뒷면에는 공포가 없다.(장곡사 또한 답사를 다녀와놓고 정리를 못한 곳으로 남겨두고만 있으니 어서 정리를!)

암튼 우리가 강의시간 살펴본 공포의 혼합양식만 해도 이 정도이다. 그러니 그 어떤 전형 양식에 대한 설명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건물에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없다 할 것이다. 건축물의 쓰임새나 건축의 환경에 따라,혹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상황에 맞게끔 양식을 넘어선 방식으로 쓰여져 온 것이다. 여기에서 보고 있는명부전도 그 비슷하게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저 건물이 어떤 양식에 속한다 하는 것만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떤 모양으로 쓰였고, 어떤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천정 쪽을 올려다 보며 찍은 사진. 대들보와 동자주 종보가 보이고 충량이 측면 기둥으로 나가 있는 것이 보인다.

명부전 앞에 세워져 있던 표지판이다. 지장보살과 함께 지옥에서 죄를 가리는 열 명의 왕을 모신 곳.

여기는 영산전과 명부전 사이에 있는 요사채 건물이다. 명부전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으로 보이는 모습.

마침 궁금한 것이 있어 마당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아마 외부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그런 표지판이 있었을 텐데 아주 살금살금. ㄷ자로 꺾어지는 지붕의 회첨을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꺾임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했고, 강의 시간에 나오던 고삽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게다가 얼마 뒤부터 집을 지으러 가게 되면 거기에서도 ㄱ자 집을 짓느라 회첨 부분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래서 더욱 잘 봐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본다 해도 고삽이라는 부재를 볼 수는 없었고, 회첨 부분 기와를 얹은 것도 그저 눈에 보이는 것 정도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보려면 이렇게 밑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지붕 위에서 내려다봤어야 하는 것을…….

이참에 회첨골 기와 이기 방식을 책에서 다시 찾아보는데 여전히 머리에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오히려 강의시간에는 머리 끄덕이며 알겠던 것이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더 머리가 아파. 암튼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회첨골 수는 보통 둘, 집의 규모가 커질 때는더 늘어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둘이고, 설계도서에 따로 나와 있는 경우는 그대로 따라주면 된다.회첨 부분은 평고대 바깥 쪽으로 고삽이라는 받침부재를 대주어야 한다.회첨으로는 우수량이 집중되어 배수를 하게 되기 때문에 여느 곳보다 누수 위험이 큰 곳이기 때문에 시공상 유의점이 많은데, 일단 회첨기와는 그 쪽으로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다른기와보다 한 단 낮게 해주어야 하고, 이 때 회첨기와와 그것에 이웃한 기와는 삼분의 일 이상이 겹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 이웃한 기와들은 기와칼로 그 끝을 일정하게 다듬어 마무리를 해주고, 그렇게 회첨골과 만나지는 부분에는 알매흙을 밀실하게 다져 채워넣어야 한다고 했다. 아, 이렇게 써 놓고 보니까 시방서에 나온 내용하고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회첨골이기

ㄱ. 회첨골의 골 수는 설계도서에 따른다.

ㄴ. 회첨부분에는 평고대 바깥쪽에 고삽을 대어 지붕골의 암키와를 받치게

ㄷ. 회첨기와는 고삽머리 끝에 연암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서 마루기와까지 회첨골의 각도에 맞추어(보통 45도 각도) 실을 띄우고 회첨기와를 인다.

ㄹ. 회첨바닥기와는 지붕바닥기와보다 한 단 낮게 깔고, 바닥기와에 회첨암키와 폭의 1/3 이상이 겹쳐지도록 한다.

ㅁ. 회첨골에 접속되는 바닥기와는 어새로 인다. 어새는 회첨골에 접하는 각도에 맞추어 절단하여 사용한다.

ㅂ. 회첨골기와이기시 암키와 밑에 동판을 깔아 누수를 방지할 수 있다.

ㅅ. 어새와 회첨바닥기와의 사이에는 알매흙을 채워 넣는다.

-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서>>

영산전, 명부전, 그리고 국사당과 요사채 들이 있는 서쪽 권역에서 그만 내려와 그제야 비로소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며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세 칸, 두 칸으로 된 팔작의전형적인 문 건물로 그리 특이할 것은 없었다. 여기에서는 취두가용마루의 끝에서 조금 들어와 있구나 하는 정도가 눈에 띄었달까.문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금강역사상 옆에 문수동자가, 오른쪽에는 금강역사상 옆에 보현동자가 있는데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라리는 금강역사상이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럽고 재미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사진 한 방을 찍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문 안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들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문 건물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찍어놨어도 그 웃긴 표정으로 무서운 척 하는 아저씨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왕주먹만 보이는구나. ^ ^ 암튼 여기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충량이 들어간 지붕 가구 구조를 한 번 더 눈에 익히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나는 충량이라는 개념을 구조 공부하며 처음 알게 된 거라 익숙치가 않은 것이다. 맞배집을 지을 때는 아예 충량이라는 부재를 쓸 일이 없었고, 팔작지붕 집을 지으면서도 중짬이라 하는 외기도리를 구성하며 지었기에 충량이라는 것을 만져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여기 지붕을 보면 대들보 위에 동자주가 종보를 받아주고, 측면으로는 곡이 진 충량이라는 부재가 대들보 위에서 타고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충량을 쓰는 가장 간단한 팔작구조일 텐데, 우선 이러한 구조부터 자꾸자꾸 눈에 익게 할 일이겠다 싶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천왕문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찰들은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이 나온다는데, 이곳 마곡사에서는 저 아래 일주문을 지나고 나서 금강문이 아니라 해탈문이 나왔다. 그러니 보통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데, 마곡사에서는 해탈문(불이문)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오게 되는 문이 사천왕문인데, 여기에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천왕들이 서 있곤 하지만, 마곡사의 사천왕들은 마치 만화나 인형 캐릭터들처럼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모습들이어서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ㅎ

천왕문 역시 해탈문과 같은 세 칸, 두 칸의 전형적 구성을 하고 있는데 해탈문에서는 팔작지붕을 했고, 천왕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용두는 마찬가지로 용마루 끝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온 자리에 있었고 말이다.

문을 지나면서측면을 둘러보는데 약간 내려앉은 가로재가 보였다.자세히 보니 그것은 인방재라 할 수도 없는, 바깥에서 덧대어 놓은 것인데 길목수 형님하고도 이야기하며 저것은 왜 대놓았을까 의문을 가지기만 했다. 그런데 보다시피 한 쪽이 처져 있어.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는 동안 문 옆으로는 이처럼 담이 이어져 있고, 담 너머로는 요사채 건물들이 이어졌다. 담장을 어떻게 쌓았나 하며 찍은 사진이다. 담장과 석축에 대한 것은 건축구조의 거의 마지막 강의 시간에 공부한 거여서 전혀 복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또한 훑어 정리해야 할 일이다.

우선 이 담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라면, 이 담장은 자연석만을 쌓은 돌담 위에 기와와 흙을 섞어 쌓은 와편담장을 섞어 쓴 모습이라 하겠다. 이 담장의 아랫 부분을 이루는 돌담의 특징이라면 공기 유통과 배수가 자유로워 동결에 의한 변형이 드문 담장이라는 것이다. <<알기쉬운 한국건축용어>> 책을 보면 낙안읍성에는 돌담을 쌓아 그 위로 초가까지 올려 운치가 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의 특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직선으로 쌓는 것보다 곡선으로 쌓아야 쉬 무너지지 않고 오래 간다는 것.그리고 이 담장의 윗부분에 있는 와편 담장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습기 때문에 흙만으로 담장을 쌓으면 약하기 때문에 돌이나 와편 따위를 섞어 쌓는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기와를 섞은 것을 와편담장이라 하는데, 대개 헌기와를온장으로 쓰기보다는 반장으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이랬을 때 수키와와 암키와를 적절히 섞으면 꽃담에 버금가는 예쁜 문양을 만들어 낼수도 있어서 소박한 꾸밈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아주 화려하고 입체적인 문양까지도 낼 수가 있는데, 수원 화성의 동장대 뒤에는 흙을 채우지 않고 수키와만으로 엎어놓았다, 바로놓았다 하면서쌓은 치장담장이 있다고도 한다.그 담장은 따로 영롱장이라고 한다던가. 그에 반해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담장에서는 거꾸로 수키와는 쓰지 않고 암키와만으로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암튼집을 다 지어기와까지올리고 나면 기와 남는다고 버릴 일이 아니라 이처럼 담장을 쌓을 때 이용하면 충분히 예쁘게 써 먹을 수가 있겠다. 남은 기와 다시 보자! 깨진 기와도 다시 보자!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이번에는 다리가 나온다. 이 또한 사찰의 배치에 있어 전형적인 거라는 걸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찰 뿐 아니라 궁궐이나 왕릉 같은 곳의 진입부 들에는 무언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다리들이 꼭 놓여 있다는 걸 말이다. 말하자면 궁궐에서는 '금천'을 건너는 다리라 하여 왕의 영역과 백성의 영역을 분리, 왕궁의 권위와 품위를 상징하고, 궁 안으로 재앙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사의 의미 같은 것으로 다리가 놓여 있곤 했다. 지금껏 답사를 다니며 본 다리들만 해도 경복궁에서는 영제교가 있었고, 창덕궁에는 금천교, 창경궁에는 옥천교가 있었다. 또한 왕릉에서도 왕릉 진입부에는 홍살문이 있고, 그 홍살문 앞에는 꼭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또한 신성구역인 능의 역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상징해주는 거라 한다. 그리고 이처럼 사찰에서의 다리는 뭐랄까 속계와 진계를 상징적으로 구분해주는 것으로 금천을 건너 불국정토로 출입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들은 교량 건축을 공부하며 배웠던 것인데 이 밖에도 성곽의 다리들은 수문의 역할과 동시에 외적의 침입을 저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기능을 해왔다거나 또는 연못이나 정원 같은 곳에서는 다리 자체가 아예 관망의 대상, 조형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 밖에도 민간설화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리도 있다 하겠고, 가장 일반적으로는 물론 통행을 위해 설치된 구조물이겠다.이런 가운데에서 교량 건축 또한 나름의 양상과 특징을 가지며 발전해 온 것인데, 아, 이건 또 언제 정리하나. ㅠㅠ

암튼 마곡사에는 이처럼 멀리 일주문부터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라는 다리를 건너며 사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다리의 형식을 굳이 따지자면 홍예교라 하겠는데 교각 사이의 홍예가 전통 교각의 그것보다는 곡이 많이 완만하다. 그래도 홍예교의 형식을 띄고 있으니어쨌든 그것에 적용해서 살펴볼 수는 있겠다 싶다.

이처럼홍예구조로 되어 있는 다리는그저일자형 교각이 받쳐주고 있는 평석교에 비해 여러가지 한계를 극복했다 할 수 있겠는데, 그 한 가지는 수심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홍예교의 구조는 무지개 모양으로 짜여진 홍예석 둘레로 육축이 있어 압력을 더해주는데, 이 때 육축의 압력이 커지면 커질 수록 홍예석들끼리 더욱 단단하게 물릴 수 있게 해주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그래서 이러한 홍예교는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 곳들, 깊은 계곡에서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이렇게 물 위로육축이 있는 홍예구조로 교각을 이룬 위로는 평석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멍에석들이 놓여지고,멍에석과 가로방향(다리가 놓이는 방향)으로 귀틀석이 가로질러윗면의 틀을 만들어준 다음청판석들을 멍에석 방향으로 깔아 다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때 청판석들은 양쪽으로 구배를 두어 물빠짐이 잘 되게 신경써 줘야 함은 물론이다.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마곡사의 금천교 또한 그러한 홍예구조이기는 하지만 이것은전통 건축물이 아니라 요즘 들어 놓은 다리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처럼 홍예교를 만들 때는 홍예 구간의 맨 가운데이면서 맨 위에 놓이는 홍예종석이 있는 부분으로 무언가 주술적 의미를 가진 구조물이 놓이게 되곤 하는데, 신축건물인 듯한 이 다리에도 홍예종석 옆에 어떤 문양이 초각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즘 들어 새로 지으면서도 할 건 다 해놨다.^ ^ 그와 같은 예를 전통 홍예교에서 보자면 흥국사의 홍교에는 홍예종석 옆으로 용두석을 박아놓았고, 창덕궁 금천교에는 두 홍예 사이에 용과 거북을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경복궁 영재교에서는 엎드려서 내려다 보는 해치.

앞서 극락교를 건너는 사진에서도 건너다 보였듯이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화려하게 서 있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물론 다리를 건너면서 저 앞으로 마곡사 5층석탑과 대광보전, 그리고 그 뒤로 경사지에 서 있는 중층의 대웅보전이 보이기는 하지만, 또다시 샛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 눈에 척 보아도 지은지 얼마 되지 않는 새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눈에 척 보아도 亞자형 평면 혹은 十자형 평면을 지닌 구조임을 알 수 있다. 亞자형, 혹은 十자형 평면을 가진 건물로는 평면배치 양식의 구조를 공부하면서 송광사 종루를 사례로 든 바가 있다. 여기에서의 송광사는 순천 송광사가 아니라 완주 송광사라 했지. 평면배치 양식에 대한 복습도 아직 다 하지 못하고 있어서 따로 정리를 하지 못하던 터였는데, 이렇게 마곡사에서 그 비슷한 평면의 건물을 만나니 그 또한 반가운 마음이었다. 비록 문화재로 남은 완주 송광사의 종루를 직접 보는 것 아니지만 어쨌든 그와 같은 평면을 가진 건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응니 말이다. 마곡사의 극락교 건너편 오른쪽에 있는 이 亞자형 건물 또한종을 달아놓은 종루였다. 완주 송광사의 종루가 누하주/누상주로 이뤄진 누각 건물인데 견줘 이곳에는 높게 쌓은 기단 위로 단층 건물이라는 것이 다를 테고, 완주 송광사의 종루는 기둥과 기둥 사이 간포가 하나였는데 이곳의 종루는 간포가 둘 들어가는 규모로 좀 더 크다는 것이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지하게 복잡해 보이지만따지고 보면 ㄱ자로 꺾이는 부분이 네 번 나오는,회첨이넷인 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공을 하자면야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해서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야 하겠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거나 이건물에서 필요로 하는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붕가구가 지나치게 복잡하니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누수의 위험이 있으니 결코 쉽게 지을 수는 없는 건물.

오히려 이 종루에 들어가 눈여겨 다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귀포에서쓰이게 되는 병첨이라는것과 귀포의 내출목 쪽에서 쓰이게 되는 도매첨이라는 것을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거였다. 보통 팔작지붕에서는 지붕이 눈높이보다 너무 높은 데다가 벽체로 안팎이 나뉘어 있어 보기가 어려웠지만, 이 종루는 벽체가 없는 건물인데다가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가 않아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위의 사진은 건물 바깥에서 보는 귀포 부분인데, 병첨이라는 것이 충분히 눈으로 확인된다. <<건축용어사전>>을 보면 '귀포를 외부에서 볼 때 좌우대와 귀한대 위에 놓이는 첨차는 거리가 가까워 첨차를 별도 부재로 하지 않고 하나의 부재로 연결해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또 귀포와 바로 옆 간포의 첨차 사이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첨차가 서로 연이어있다고 하여 병첨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귀포의 바깥에서 보면 첨차들이 서로 이어지게 되어 한쪽 날개가 길어진 첨차인 병첨이 생기게 되었다면 그 안쪽에서는 거꾸로 한 쪽 날개마저 잘리게 되는 도매첨이라는 첨차가 쓰이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건축용어사전>>의 풀이를 보면 '내출목첨차 중에서는 첨차 끝이 밖으로 빠져나가 좌우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내출목첨차끼리 90도로 만나 결구되는 첨차가 있다. 이를 도매첨이라고 한다. 따라서 도매첨은 귀포에서만 생기는 것이지만 귀포라 할지라도 고산사 대웅전과 같이 도매첨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설명을 읽다보니 왠지 익숙한 이름, 홍성의 고산사 대웅전이 나와 그러했구나. 아아, 고산사 대웅전의 귀포 부분에는 도매첨이라는 것이 없구나. 이미 고산사에도 답사를 다녀와놓고는 정리를 못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그 건물의 귓기둥 내출목 쪽에 도매첨이 쓰였는지, 쓰이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또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으니 머릿속에 입력!

어쨌든 도매첨의 존재는 또한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알아볼 수가 있다. 구석진 곳에서 뼈대를 만드느라 온전한 첨차로 쓰이지도 못한 채 한 쪽 날개가 잘려 있듯 쓰이고 있는 반쪽짜리 첨차들.

종루의 앞쪽 공간은 마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랬으니 어차피 사찰 가운데로 들어가야 할 일, 요사채들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을 거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참 정갈하고 단정하게 지어놓은 집들이 오목조목하게 이어지고, 등돌리고, 벽을 지거나 마주보며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 건물이었다. 측면의 탱주들 위로는 귀틀을 왜 그리도 길게 뺐나 했더니 2층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기대느라 그리 해놓은 것이었다. 사진에는 마치 통나무 반쪽을 두 개 나란히 기대어 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반쪽짜리 통나무들을 앞에서 보면 계단처럼 깎아놓았다는 것도 재미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아래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 건물을 반대편에서 다시 한 번 찍어본 것이다. 이 건물은 중층건물의 양식을 공부할 때 적층형 중층건물의 사례 가운데 하나였던 안동의 송석재사의 구조를 쏙 빼닮고 있었다.물론 정면과 측면의 칸 수나 세부 구성 모습에서는 조금은 틀리지만아랫기둥들을 창방으로 엮고, 그 위로 귀틀을 짠 뒤 윗기둥을 세운 모습이며, 대부분의 벽면을 판벽으로 처리한것 들을 보면서 그러한 인상을 받았다.

이 사진 또한 요사채들로 이어지던 건물 가운데 하나를 찍은 것이다. 대청마루와 온돌방 사이에 불을 때는 공간을 두고 있는 거나, 그 공간 위로 다락과 같은 공간을 두고 있는 구성이 재미있어 찍어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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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하루종일을 매달려 겨우 이만큼이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영산전과 명부전을 둘러보았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났다. 극락교를 지나면서 이제는 제대로 중심 건물들을 보려나 했더니 종루와 요사채들을 둘러보면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아마 이래서 이 마곡사 답사 정리를 자꾸 미루기만 했나 보다. 하기도 전에 지레 나자빠져서는. 어쨌든 이제는 이 요사채를 나가면 구층석탑이 나오고 대광보전이 바로 앞에 있다. 그리고 온칸물림 중층건물의 대표적 사례였던 대웅보전으로.정작보려 했던 것은 마곡사 오층석탑과마곡사 대웅보전이었다. 그런데거기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나 멀다니…. "다음부터는 답사 가면 꼭 봐야지 해서 가게 된 그 건물만보고 올거야!"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나 모르겠다. 물론 그게 잘 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루종일 걸려 이제 겨우 마곡사의 요사채까지 지나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공 격인 그 세 건축물에 대한 것은 한 잠 자고 일어나 다시 봐야겠다.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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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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