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

굴 속의 시간 2010. 3. 22. 00:36

종강

토요일 남영동의 10주 강의를 어제로 모두 마쳤다. 기분이 이상해. 마지막 강의시간에는 가방에서 살짝 사진기를 꺼내 강의실 사진이라도 한 번 찍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야 늘 맨 뒷자리를 도맡아 혼자 앉곤 하니 그런다 해도 공부에 방해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 거의 고정석처럼 맨 뒷자리에만 앉는다는 걸 써나가다 보니 그런 것도 생각난다. 열 시에 시작하는 강의에 어떤 분들은 여덟 시 반부터 나오기도 한다던가,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그렇게 일찍 나오기도 하더라는.나 같은 경우는맨 뒷자리에 누가 먼저 앉아 있을까봐 조바심이 들곤하는데 ㅠㅠ 암튼 그런 얘기에 깜짝 놀라가도 했다. 마지막 시간 강의까지 마쳤고, 몇 가지 공지사항에 강의평가서라는 것까지 쓰고는 빈 강의실을 두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쉬는시간마다 좁은 계단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얼굴을 익힌 분들이 앞으로 공부할 이야기를 같이 하자며 불러주었다. 사람 사귈 줄을 어려워하는 나는 일곱 주 동안이나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지 못해 점심시간마다 혼자 먹곤 했는데, 밥 같이 먹자고 끼워준 분들도 그 분들이었다. 알고보니 그 분들도 다 이 강의실에 나와 처음 만난 사이들이라는데, 멀리서 내가 보기에는 원래 알던 분들인가 보다 싶었는데 말이다. 고맙게도 그 분들이 불러주었다. 앞으로 시험이 있을 때까지 매주 만나며 함께 스터디를 갖자고.일곱 분 가운데 두 분은고건축 설계사로 일을 하고 있는 분들, 또 한 분은고건축 대학원에서 석탑으로 논문을 썼다는 분, 또 한 분은 건축 쪽 일을 하면서 몇 해 째 이 시험을 준비해오고계신 분, 건축과 대학생, 그리고 이미 단청기술자 자격 시험에 합격을 하고 보수기술자까지준비하고 있는분이었다.나야 뭐 아무런 밑천이 없으니 그 자리에 껴서도 그저 듣고 있거나 추임새나 넣을 뿐 공부 계획 같은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구조정리는 어떻게, 문제풀이 연습은 어떻게, 공통 객관식 과목들준비는 어떻게……. 말그대로 정말 나도 끼워준 것이 고마워 함께 앉아 있었고, 가능하면 스터디 모임에도 나가고 싶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어렵다.

곧 집을 지으러 가게 되어 앞으로 두어 달은 꼼짝없이 공백을 가져야 할 텐데, 사실 그 때문에 걱정이 많다. 게다가 이제야 한참 공부하는 데에 물이 올랐는데 하필이면 딱 이 때 공백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각으로는 일을 하면서도, 일 마치고 난 뒤에 시간이 나는대로 공부를 놓지 않아야겠다 싶기도 하지만 과연 친구들과 함께 현장 일에 숙소 생활까지 하면서 그리 할 수 있을는지 모를 뿐이다. 그것도 다른 이들과 하는 일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집을 지으면서, 그것도 사잇골 식구의 집을 지으면서 과연 그게 되겠는지. 혹 일을 마치고 난 뒤 숙소 한 구석에서 저 혼자 공부하겠다고 책을 보고 있게 되면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은 되지 않겠는지, 꼴사나워 보이지는 않겠는지…… 이런저런 소심한 걱정들도 없지 않다. 일을 마치고 나서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지 쉬는 것 이상으로 함께 일하는 이들 사이에 팀웤을 맞추고, 공감을 형성하고, 문제에 대해 조정해나가는 그러한 시간이 되어야 할 테니 그걸 마냥 등한시해서도아니될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해나갈 수 있겠는지. 한 가지 양해는 구한 것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일을 빠지고 서울에 강의를 들으러 다녀오겠다는 것. 냉정히 말한다면 어차피 일당치기로 품값을 계산하기로 했으니 일을 더 하면 그만큼 품값이 더 되는 것이고, 일을 빠지면 까이는 것이니 문제될 것 없게 보이지만, 일이라는 건 그렇지가 않다. 전체로 함께 움직이고, 전체로 함께 흐름을 가지며, 전체로 함께 맞춰 해야 하는 일에서 한 번씩 빠지게 되면 그만큼 흐름이 깨지게 되는 것. 그래서 벌써 두어 달 전에 같이 일을 할 친구들과 집을 짓는 밥풀 엉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주말에 한 번씩은 수업받으러 다녀오겠다고……. 그마저도 못한다면 그대로 두어 달의 공백을 보내며 다시 백짓장으로 돌아갈 것만 같아 어렵게 결정한 최소한의 선택이었다. 그렇게나마 이 긴장과 리듬을 최소한만큼이라도 이어가야 할 것 같은.

아무튼 그러한 사정으로 하여 나는 당장 스터디 모임에는 함께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뒤라도 그 자리에 끼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로서는 고맙기만 한 일이다. 아마 그 분들이 먼저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누구에게라도 먼저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을 일. 나도 끼워달라고 혹은 같이 공부하자고……. 말그대로 이 공부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나에게는 아무런 밑천이 없으니 그렇게나마 자극을 받고, 긴장을 얻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라도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두 달이 지난 뒤 그 분들은 이미 훌쩍 앞서 가 있을 텐데 그 속에서 어리둥절 못알아듣기만 하지 않을는지, 하는 걱정이 한 편으로 드는 것이다. 내 모습만 보더라도 10주 전과 10주가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단계를 넘어서게 되었는가.

종강을 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 긴장이 된다. 물론 앞으로가져야만 하는 공백기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이것으로 벌써 시험범위라 할 만한 과정을 모두 마쳤다니, 나는 아직도 멀고 멀기만 한데……. 이제는 다들 문제풀이로 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훈련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 말은 더 이상 더 많은 내용을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채우고 다져온 것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응용하고, 효과적으로 말해내는가 하는 훈련이라는 것이다.그러니 어찌 걱정이 아닐 수가 있겠는지. 나는 아직도중간중간 사전을 찾아봐야만 알아듣는 말이 있고, 구경도 못한 도면이며 보고서며 논문들이 허다한데……. 이제 필요한것은 배짱이다.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언제까지나 이처럼 불안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시간을 꽉 차게 이빨을 깔 수 있다는 배짱, 그리고 자신감. 나는 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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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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